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울프팩 2009. 2. 21. 21:33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최고의 순간은 맨 앞에 오고 최악의 순간은 마지막에 온다"는 말을 남겼다.
살면서 언제나 뒤를 돌아보며 그때가 좋았다며 아쉬움과 후회를 하고, 앞으로 무슨 일이 닥칠지 몰라 늘 걱정하는 사람들의 삶을 통렬하게 꼬집은 말이다.
그래서 우리네 인생이 늘 빈한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 피츠제랄드도 마크 트웨인의 말을 듣고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단편 소설을 썼다.
소설 속의 벤자민 버튼은 영화와 달리 어른만큼 커다란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말을 한다.
덕분에 부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명문대를 나와 순탄한 삶을 산다.

소설의 주인공은 실리적이다.
살면서 다른 애인도 만나고, 손자까지 본다.
그렇다보니 그의 삶에서 최고와 최악의 순간을 딱히 집어내기 힘들다.

데이빗 핀처 감독의 영화는 그렇지 않다.
기괴한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나 버림받은 벤자민 버튼(브레드 피트)은 남과 달리 힘든 삶을 산다.

살면서 점점 젊어지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다.
사랑하는 여인(케이트 블란쳇)의 늙어가는 모습을 봐야 하고 남과 같이 아빠 노릇을 하기 힘들다.
그렇게 두 사람의 사랑과 인생이 엇갈리는 순간 남은 것은 불행 뿐이다.

원작은 단편이지만 영화는 유장하다.
3시간 가까운 상영 시간 동안 벤자민 버튼이 거꾸로 살아간 세월이, 바람이, 거리와 하늘이 천천히 흘러간다.

그렇게 영화를 따라가다보면 마지막 15분, 기구한 인생의 안타까운 사랑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더불어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늙어가는 삶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깨닫게 해준다는 점에서 그 마지막 15분은 3시간의 기다림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는다.

'세븐' '에이리언3' 등 언제나 사람들을 우울한 시선으로 바라본 데이빗 핀처답게 이 작품에서도 세상을 산다는 것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의 우울한 진지함이, 원작을 뛰어넘는 훌륭한 영화로 빛을 발했다.
추천할 만한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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