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극장은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가는 곳이었다.
어쩌다 아버지가 초대권을 얻어 오시면 어머니나 할머니 손을 잡고 동네 동시상영관을 찾았다.
그렇게 '로보트 태권V'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 '전자인간 337' '황금날개 1 2 3'를 봤다.
영화를 보고 나면 학교 친구들을 만나 침을 튀기며 이야기를 했고, 그마저도 볼 수 없었던 아이들은 아무말 없이 부러운 눈빛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벌써 그것이 얼추 40년 전 일이 돼가니 빛바랠 때도 됐는데, 영상이나 아이들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나 그 기억이 비롯됐던 동네 동시 상영관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아벤고 공수군단'의 정윤희를 만나고 나면 잠시 후 '맹룡과강'의 이소룡을 볼 수 있었던 곳이었다.
그 곳에서 '벤허'의 찰튼 헤스톤과 '드라큐라'의 크리스토퍼 리도 처음 만났다.
그렇게 한꺼번에 두 편의 영화를 틀어주던 동시 상영관은 이제 흔적조차 없고, 그 곳에 높다란 건물이 들어섰다.
시대의 흐름이 그러니 어쩔 수 없지만 사라져가는 추억에 가슴이 아련하다.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시네마천국'(Cinema Paradiso, 1988년)은 그렇게 사라진 동시 상영관 같은 영화다.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영화는 1950년대 마을 사람들과 애환을 함께 했던 극장이 TV에 밀려 사라진 이야기다.
작품 속 극장은 단순히 TV에 밀려 사라진 구시대의 유물이 아니라 옛 시절의 추억이다.
그 곳에 사랑이 있었고, 친구가 있었으며 그들에 얽힌 사연과 주인공의 꿈이 있었다.
감독은 이를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따뜻하면서도 가슴 아프게 조곤 조곤 풀어낸다.
비슷한 기억 때문인 지 보는 내내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처럼 감정이입이 됐다.
그래서 막판 주인공인 살바토레(자크 페렝)가 알프레도(필립 느와레)의 선물을 받고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며 보는 장면에서는 절로 가슴이 먹먹해졌다.
유년기의 기억을 따뜻한 씨줄 날줄로 촘촘하게 떠낸 감독의 연출력과 너무나도 유명한 아름다운 선율을 보탠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 그리고 끈끈한 배우들의 연기가 조화를 이뤄 빛을 발한 명작이다.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고 가슴이 아련하면서도 따뜻해지는 작품이다.
이번에 국내 출시된 블루레이는 155분짜리 최초 극장판이 아닌 1989년 2시간 4분으로 줄어든 판본이어서 좀 아쉽다.
1080p 풀HD의 1.66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영상은 해상도가 높은 편이 아니며 장면에 따라 화질 편차가 있다.
전체적으로 약간 뿌옇고 샤프니스가 높지 않아 윤곽선이 명료하지 않다.
그래도 DVD 타이틀 보다는 월등 좋다.
음향은 DTS-HD 2.0 채널을 지원하며 부록으로 제작진 인터뷰와 키스 시퀀스 등이 한글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나중에라도 155분짜리 오리지널판이 블루레이로 출시됐으면 좋겠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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