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영화 171

더 테러 라이브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김병우 감독의 '더 테러 라이브'(2013)는 만화에 가까운 영화다. 라디오 생방송 중 걸려 온 한 통의 전화가 실제 마포대교를 동강내는 폭탄 테러로 이어지면서 범인과 방송기자가 생방송으로 벌이는 긴박한 대결을 다룬 내용이다. 군더더기 없이 초반부터 바로 전화가 걸려 오며 위기로 몰아가는 상황은 긴박하게 전개돼 긴장감을 끌어 올린다. 하지만 이 같은 긴장감은 리얼리티를 상실하며 후반에 급속도로 꺾어진다. 이 작품의 경우 중요한 것은 실감이다. 공상과학영화나 판타지가 아닌 드라마를 지향한 이상 얼마나 사실적이냐에 따라 몰입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텐데, 이 작품은 최대 핵심인 리얼리티를 놓쳤다. 흥미 위주로만 흐르다 보니 실제 방송 보도나 폭탄 테러의 사실성은 모두 오락성 아래 묻혀 버..

영화 2013.08.10

설국열차

봉준호 감독에 대한 기대가 컸는 지, 반대로 그가 느낀 부담이 좋지 않게 작용했는 지 모르겠지만 이번에 봉 감독이 새로 내놓은 영화 '설국열차'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살인의 추억'을 필두로 '괴물' '마더' 등 일련의 작품들이 나름 기대를 충족시켰기에 이 작품 역시 기대가 컸는데, 기대치를 너무 높였던 모양이다. 내용은 지구에 한파가 몰아쳐 빙하기를 맞은 뒤 무한궤도를 달리는 열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다. 재산 규모에 따라 앞 칸은 돈 많은 사람들이 차지해 쾌적한 생활을 하고, 소위 꼬리로 불리는 뒷 칸은 가난한 사람들의 전쟁터다. 결국 빈자들은 열악한 생활을 견디다 못해 앞 칸으로 쳐들어가려는 반란을 모의한다. 그때부터 열차는 고지를 향해 달려가는 병사를 실은 전투열차가 돼버린다. 달리는 열..

영화 2013.08.04

레드 : 더 레전드

* play 표시가 있는 사진은 play 버튼을 누르면 관련 동영상이 나옵니다.* 재료가 좋다고 요리가 맛있는 것은 아니다. 딘 패리소트 감독의 '레드 : 더 레전드'(RED 2, 2013년)가 그런 영화다. 출연진을 보면 화려하다. 브루스 윌리스, 존 말코비치, 헬렌 미렌, 메리 루이스 파커에 안소니 홉킨스와 캐서린 제타 존스, 여기의 우리 배우 이병헌까지 스타 백화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유명 배우들이 대거 출동했다. 하지만 영화의 구성과 전개는 결코 배우들의 이름값을 따라가지 못한다. 게임처럼 액션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이야기의 개연성이 부족해 설득력이 떨어진다. 악당의 지나치게 관용적인 행동이나 주요 정보를 키스 한 방에 넘어가 술술 불고, 폭탄을 아무도 모르게 감쪽같이 설치하는 장면 등..

영화 2013.07.20

고령화 가족

송해성 감독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걸작 '파이란'이다.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는 명장면인 최민식이 바닷가에 주저 앉아 오열하던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영화를 보는 동안 가슴 속에 서서히 슬픔과 감동이 차오르던 '파이란'의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는데, 이는 곧 송 감독의 인물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깊이있는 탐구가 읽히기 때문이다. 마치 시간이 지날 수록 서서히 상대를 알아가는 과정같다. 그가 이번에 내놓은 영화 '고령화가족'(2013년)도 그런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그만의 세계에 빠져 사람들이 몰라준다고 안타까워하던 '역도산'의 자아도취를 버리고 다시 원점인 '파이란'으로 돌아갔다. 이 작품은 가족의 해체를 통해 가족의 의미를 되새김질한다. 늙은 홀어머니 밑에 모인 말썽꾸러기 삼남매가 서로의..

영화 2013.05.18

지슬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만장일치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오멸 감독의 '지슬'(2013년)은 숨이 막힐 정도로 강렬한 영상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그것도 현란한 색들이 난무하고 입체영상이 스크린을 뚫는 시대에 아득한 시절 세상을 주름잡은 공룡같은 흑백 영상으로 승부를 걸었다. 오 감독이 제주 4.3 사건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룬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흑백 영상은 참으로 아름답다. 흰 하늘을 배경으로 검은 가지를 뻗친 나무와 오롯이 흰 눈을 이고 선 집들을 보면 여백의 미를 살린 동양화 같다. 여백의 미는 생각을 정리할 틈을 준다. 시퀀스가 끝날 때마다 하얗게 또는 온통 검게 변하는 화면은 보는 이의 감정으로 서서히 차오른다. 특히 온통 어둠 뿐인 지하 동굴에 숨은 사람들이 부유하듯 화면을 떠다니며 두런 두런..

영화 2013.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