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의 피아니스트였던 세레시 레죄(Seress Rezső)는 평생을 불우하게 살았다.
유대인으로 태어나 평생을 부다페스트의 가난한 유대인 거주지역인 제7구역을 벗어나지 못했다.
집안이 어려워 제대로 음악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그는 식당과 카페에서 피아노 연주로 근근히 벌어 월세방에서 작곡을 했다.
아이도 없이 부인 헤르니와 함께 살았던 그는 여러 곡을 작곡했지만 유일하게 인기를 끈 곡이 1933년 발표한 연주곡 '세상의 끝'이라는 뜻의 '비게 아 빌라그나크'(Vége a világnak)다.
죽음을 부르는 곡의 전설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멜로디가 인기를 끌자 1935년 헝가리 시인 야보르 라슬로가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하는 내용의 가사를 붙인 뒤 노래 제목을 '우울한 일요일'이라는 뜻의 '소모르 바사르나프'(Szomorú Vasárnap)로 고쳤다.
이 곡을 헝가리 가수 칼마르 팔이 불러 인기를 끌면서 슬픈 전설이 시작됐다.
이 노래를 들은 사람들이 숱하게 자살을 했다는 전설이다.
이후 1941년 빌리 할리데이(Billie Holiday)가 영어로 바꿔 불러 전세계에 널리 알려지면서 자살을 부르는 노래라는 전설이 세계로 확산됐다.
실제로 미국 워싱턴에서는 이 노래의 방송과 연주를 금지했고 영국 BBC도 라디오 방송 금지곡으로 지정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공산화가 된 헝가리 역시 1959년 정부에서 이 곡의 공개 연주를 금지했다.
작곡가인 세레시 레죄는 전세계적 인기에도 불구하고 이 곡을 연주할 수 없어 그가 활동했던 부다페스트의 '작은 연통 스토브'라는 뜻의 작은 식당 키스피파 벤데글로에서 늦은 밤 몰래 연주했다.
헝가리에서는 무려 25년 동안 이 곡이 금지곡으로 묶였다.
그 사이 레죄는 병에 걸려 손가락이 점점 마비돼 두 손가락으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렸고 나중에는 악보도 읽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그토록 두려워한 암에 걸린 뒤 1968년 12월 1일 고소공포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부다페스트의 높은 건물에 올라가 투신 자살했다.
그 바람에 이 곡은 작곡가조차 잡아먹은 곡이라는 비극적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더욱 화제가 됐다.
그 바람에 전세계 수 많은 가수들이 이 곡을 다시 불렀으며 자우림의 김윤아, 이소라 등 국내 가수들도 리메이크했다.
사랑과 복수의 드라마로 바뀐 영화
곡에 얽힌 사연을 알게 된 독일 시사주간지 '슈테른'의 기자로 일했던 니크 바르코프가 1988년 '슬픈 일요일에 대한 노래'라는 소설을 썼다.
국내에도 '글루미 선데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이 책은 레죄의 곡을 토대로 제2차 세계대전 때 헝가리의 유대인 탄압 문제를 다뤘다.
이 책을 읽은 롤프 슈벨(Rolf Schubel) 감독이 공동 각본을 쓰고 연출한 영화가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 1999년)다.
그렇지만 영화는 책과 내용이 다르다.
책이 유대인 탄압 문제를 중심으로 다뤘다면 영화는 한 여자를 둘러싼 세 남자의 사랑 이야기로 변했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인 1933년 아름다운 헝가리 여인 일로나(에리카 마로잔 Erika Marozsan)는 부다페스트에서 고급 식당을 경영하는 유대인 자보(요아힘 크롤 Joachim Krol)와 식당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안드라스(스테파노 디오니시 Stefano Dionisi)를 동시에 사랑한다.
우리 정서에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자보와 안드라스 역시 일로나와 삼각관계를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간다.
자보는 일로나와 결혼했는데도 불구하고 "당신을 잃느니 차라리 반쪽이라도 갖고 싶다"며 안드라스를 향한 일로나의 사랑을 인정한다.
여기에 식당을 찾은 독일인 사업가 한스(벤 벡커 Ben Becker)도 일로나에게 반해 연정을 고백한다.
하지만 일로나에게 거절당한 한스는 헝가리를 떠났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친위대 장교가 돼 나치 독일의 동맹국인 헝가리로 다시 돌아온다.
한스가 부다페스트의 절대 권력자로 복귀하면서 유대인 자보를 둘러싼 이야기는 급박하게 위기로 치닫는다.
영화의 묘미는 이어지는 반전에 있다.
긴장의 중요 축인 한스를 둘러싼 이야기는 여러 번 뒤집히며 급물살을 탄다.
쓸쓸히 사라졌던 한스는 무서운 친위대 장교가 돼서 돌아와 상황을 뒤집은 뒤 자신을 거부한 여인에 대한 복수와 욕망, 유대인 남편 자보에 대한 질투가 끓어 올라 위기 속으로 몰고 간다.
그렇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비극적 결말을 향한 내용 뒤에는 스릴러 같은 반전의 복수극이 숨어 있다.
이 과정에서 '우울한 일요일'이라는 레죄와 곡과 나치 독일의 학살극이 자극적인 양념처럼 쓰였다.
즉 헝가리의 유대인 학살 방조를 정면으로 다룬 소설과 달리 영화에서는 역사적 비극이 긴장을 높이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이 과정에서 나치 독일 못지 않게 유대인 및 집시 학살에 동조한 헝가리 정부의 죄과는 개인의 일탈과 복수극에 묻혀 버렸다.
레죄의 곡 또한 서로 다른 길을 가는 등장인물들의 공통된 추억을 연결하는 끈일 뿐 직접적 서사와 관련이 없다.
심지어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안드라스의 이야기로 둔갑한 레죄의 사연도 사실과 다르게 묘사됐다.
결국 이 작품은 아쉬움이 남는 내용보다 음악의 유명세를 탄 영화다.
윤심덕의 '사의 찬미' 같은 비극적 분위기를 풍기는 우울한 노래가 영화의 분위기를 절대적으로 좌우했다.
여기에 에리카 마로잔, 요아힘 크롤, 스테파노 디오니시 등 슬픈 표정을 지닌 배우들의 연기가 얹히면서 퇴폐적 서사를 지닌 사랑과 복수의 드라마가 마무리됐다.
극 중 흘러 나오는 우울하면서도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는 헝가리 피아니스트 죄르지 셀메치의 솜씨다.
참고로 엔딩에 흐르는 주제가는 가수 헤더 노바(Heather Nova)가 불렀다.
국내 출시된 블루레이 타이틀은 1080p 풀 HD의 1.85 대 화면비를 지원한다.
화질은 평범하다.
지글거림이 두드러지고 샤프니스도 그렇게 높지 않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웅장한 소리를 들려준다.
마치 공연장처럼 연주음이 공간에 넓게 확산된다.
부록으로 배우들과 감독 인터뷰, 촬영감독 에드워드 클로진스키 인터뷰, 제작과정과 뮤직비디오, 곡에 얽힌 역사적 사연 등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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