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추천 DVD / 블루레이

대탈주 (블루레이)

울프팩 2013. 7. 3. 21:57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던 1944년 3월 24일, 독일 자간에 있던 연합군 포로수용소에서 무려 76명의 포로들이 집단 탈출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를 위해 슈탈라크 루프트3, 즉 독일 공군이 관리하는 제3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던 연합군 공군 포로들은 1년이 넘게 땅굴을 팠다.

사건을 보고 받은 아돌프 히틀러는 대단히 분노해 독일군 및 비밀경찰인 게슈타포까지 총동원해 전국을 이 잡듯 뒤졌다.
결국 일주일 동안 도망 다니던 포로들은 대부분 잡혔고, 단 3명만 자유를 찾는 데 성공했다.

비극은 그 뒤에 일어났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히틀러는 다시 잡은 포로들의 절반 이상을 죽이라고 지시했고, 게슈타포들은 2,3명씩 나눠 이송하던 중 50명을 몰래 사살했다.

포로들이 탈출 당시 군복을 개조해 만든 민간인 복장을 하고 있어서 명목상 군인이 아닌 스파이 혐의를 적용한 것이다.
당시 수용소에서 땅굴 작업에 참여했던 호주 출신 작가 폴 브릭힐은 이 사건을 1950년 소설로 펴냈다.

바로 '대탈주'다.
마침 존 스터지스(John Sturges) 감독이 이 작품을 읽고 작가를 설득해 같은 제목의 영화(The Great Escape, 1963년)로 만들었다.

예전 학창 시절 TV에서 본 이 작품은 감동이었다.
실화가 주는 장중한 울림도 컸지만, 당시 워낙 좋아했던 스티브 맥퀸(Steve McQueen)을 비롯해 찰스 브론슨(Charles Bronson), 제임스 코번(James Coburn), 제임스 가너(James Garner) 등 총출동한 스타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특히 제작진은 수용소 막사부터 땅굴 등 세세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재현했다.
이를 위해 스터지스 감독은 수용소 시절 땅굴왕으로 통하던 캐나다 공군 출신 윌리 플로디 등 실존 인물들을 기술 자문으로 초빙해 갖가지 에피소드와 장비 등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살렸다.

덕분에 3시간의 상영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고 언제 흘러갔는지 모를 만큼 재미있다.
여기에 엘머 번스타인이 작곡한 경쾌한 음악은 귀에 쏙 들어오는 친숙한 멜로디로 아주 유명하다.

이 작품은 존 스터지스 감독의 스타일이 제대로 작용해 흥행에서도 크게 성공했다.
그의 전작인 '황야의 7인' 'OK 목장의 결투' 등 일련의 작품들을 보면 유명 스타들이 대거 출연하는 점이 특징이다.

이 작품도 마치 스타 백화점처럼 유명 스타들이 여럿 등장한다.
이 중 스티브 맥퀸, 찰스 브론슨, 제임스 코번 등은 전작인 '황야의 7인'에서 인연을 맺은 배우들이다.

스터지스 감독은 인물의 배경을 알 수 있는 이야기를 풍성하게 살리는 드라마에 강하다.
이 작품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도 단순 탈출 과정에만 집중한 게 아니라 인물들을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소재를 집어넣어 이야기를 윤택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다시 볼 때마다 가슴이 짠하다.
비극적 실화여서 그런 점도 있지만 출연 배우 중 여럿이 이제는 고인이 됐기 때문이다.

특히 1980년 스티브 맥퀸의 죽음을 알리던 라디오 방송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 작품에서 추격하는 독일군을 피해 오토바이로 드넓은 초원을 질주하며 펄펄 날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1080p 풀 HD의 2.35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평범하다.
4K 리마스터링을 거쳐서 DVD 타이틀보다는 월등 좋아졌지만, 일부 야외 장면이 뿌옇게 보이고 지글거림이 두드러지는 등 필름에 남아 있는 세월의 흔적은 어쩔 수 없다.

DTS-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거의 없다.
부록은 감독 음성해설과 다수의 다큐멘터리 등이 들어 있으나 DVD에 수록된 '존스 이야기'와 '뒷이야기'만 한글 자막을 지원한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독일 공군이 만든 포로수용소는 독일 뮌헨 인근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바바리아 스튜디오에 고증을 살려 재현했다. 실제 포로수용소는 베를린에서 떨어진 자간에 있었다. 지금은 같은 지명의 폴란드 영토가 됐다. 이곳에 갇혔던 포로들은 1945년 4월 레지스탕스와 패튼 장군이 이끄는 미군이 진주하며 풀려났다.
소매치기 등 물자조달 전문가를 연기한 제임스 가너. 그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포로생활을 한 배우들이 여럿 등장한다. 노란색 바탕의 공군 계급장과 독수리 모양의 공군 휘장을 착용한 수용소장 루거 중령을 연기한 한스 메셈머는 독일군으로 참전했다가 동부전선에서 포로가 돼 구 소련의 포로수용소에 갇혀있었다. 그의 목에 걸려 있는 훈장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8기 이상 적기를 격추한 에이스에게 수여하는 블루맥스 훈장이다. 나치는 이를 기사 십자장으로 바꿨다.
블루레이 부록을 보면 당시 포로생활을 한 생존자들의 경험이 나오는데 트럭 짐칸에 숨어 탈출을 시도한 에피소드들이 나온다. 영화는 이를 꼼꼼하게 살렸다. 짐칸에서 얼굴을 내민 존 레이톤은 1960년대 영국에서 인기를 끈 가수 출신이다.
대탈주는 단순히 살기 위한 탈출이 아니라 전선 후방의 독일군을 최대한 교란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이 작전을 입안한 인물은 33세 영국 공군 소령 로저&nbsp; 부셀이었다. 남아공 출신인 그는 스피트파이어 전투기로 구성된 제92편대장이었고, 포로수용소에서 영화처럼 암호명 '빅 엑스'로 통했다. 영국 대배우 리처드 아텐보로 경이 그를 연기했다.
포로들은 종전 때까지 수용소에서 4개의 땅굴을 팠다. 대탈주 사건을 위해 톰, 딕, 해리 등 3개의 땅굴을 팠고 사건 이후 4번째 땅굴 조지를 팠다. 그러나 조지는 탈출에 쓰인 것이 아니라 독일군이 포로들을 죽일 때 대피하기 위한 용도였다. 터널은 엄선된 전문가 20~25명이 팠다.
땅굴에서 파낸 흙을 운동장에 섞어 버리려고 만든 양말 같은 도구는 당시 실제 개발한 장치다. 이를 설명하는 역할을 데이비드 맥칼럼이 연기. 그의 아내 질 아일랜드는 이 작품 제작 중 찰스 브론슨과 눈이 맞아 1967년 맥칼럼과 이혼하고 브론슨과 결혼했다.
땅굴 전문가를 연기한 찰스 브론슨이 폐쇄공포증을 느끼는 장면은 탄광 광부로 일했던 그의 경험을 반영한 것이다. 당시 수용소 땅이 부드러운 모래흙이어서 영화처럼 땅굴이 잘 무너져 침대와 막사 벽 등을 뜯어 버팀목으로 사용했다.
톰이라는 땅굴이 발각되는 장면은 영화처럼 물을 엎지른 것이 아니라 독일 감시병 중 하나가 탭댄스를 추듯 독특하게 걷는 발걸음 때문에 바닥이 울려 발견했다. 땅굴을 발견한 독일군은 막사를 폭파시켰다. 이후 탈출용 땅굴이 해리로 변경됐다. 당시 독일군의 헤르만 글렘니츠 소령은 사태를 파악하고 이 영화의 기술 고문을 맡은 윌리 플로디와 함께 미군 땅굴 전문가들을 모두 다른 수용소로 이송시켰다. 그 바람에 영화와 달리 미군들은 1명도 탈주하지 못했다.
호주 공군으로 참전한 원작자 폴 브릭힐은 1943년 3월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스피트파이어 전투기를 몰던 중 격추돼 영화의 무대가 된 포로수용소에서 종전을 맞았다. 당시 그는 땅굴 작업에 참여했으나 탈주하지 않았다.
위조 전문가를 연기한 도날드 플레젠스도 영국 공군 장교 출신으로, 제2차 세계대전 때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격추당해 독일군에 포로로 잡혀 고문을 받고 수용소에서 갇혔었다.
영화처럼 측량을 잘못해 땅굴 입구가 숲에서 몇 미터 모자라면서 당초 200여 명이 탈주하려던 계획이 중간에 발각돼 76명 탈주에 그쳤다.
스티브 맥퀸이 탄 오토바이는 그가 좋아한 영국제 트라이엄프 트로피 TR6를 개조한 모델이다. 트라이엄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나온 브랜드여서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는다. 오토바이 추격전은 알프스의 오스트리아 국경 근처 퓨센에서 촬영.
독일 비행기를 빼앗아 타고 탈주하는 부분은 실제 일어나지 않은 허구다. 영화 속 독일 비행장에 나오는 비행기들은 미국 AT-6 텍산 훈련기이고, 탈주용 비행기는 독일 벅커사의 BU-181 베스트만이다.
대탈주는 600명 이상이 1년이상 준비했다. 실제 탈주를 벌인 1944년 3월 24일은 영화와 달리 땅에 눈이 살짝 덮일 정도로 추워 탈주에 애를 먹었다. 결국 추운 날씨 때문에 포로들은 산이나 숲에서 버티지 못하고 대부분 잡혔다.
스피드광이었던 스티브 맥퀸은 오토바이를 모는 조건으로 출연했고 실제 오토바이 질주 장면을 직접 연기했다. 울타리를 뛰어넘는 장면은 맥퀸이 시도했다가 실패해 그의 친구 겸 LA 오토바이 숍 주인 버드 에킨스가 대신 성공시켰다.
스티브 맥퀸이 연기한 힐츠 대위는 이 작품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다. 힐츠의 모델은 제2 차 세계대전 당시 도쿄 공습에 나선 둘리틀 비행대 조종사였던 데이브 존스 소령이다. 존스 소령은 B-25 폭격기 조종사로 도쿄 공습 이후 북아프리카 전선에 배속됐다가 격추돼 포로가 됐다. 그는 영화의 무대가 된 자간 포로수용소에 갇혔을 때 울타리 전선을 자르고 5,6회 탈주했다가 잡혀 격리 수용됐다. 종전 후 존스는 나토 유럽기지 사령관을 지내고 NASA에서 아폴로 11호 개발계획에도 참여한 뒤 공군 소장으로 퇴역했다.
검문하던 독일군이 툭 던진 "Good Luck"에 영어로 대답했다가 체포된 내용은 실화다. 당시 독일군이 흔히 쓰던 수법이었다. 리처드 아텐보로는 제2 &nbsp;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공군에서 폭격기 후미 기총 사수로 3년 복무했다. 아텐보로가 연기한 역할의 실제 모델인 부셀 소령은 프랑스 국경이 1시간 거리인 자브로큰 마을에서 체포됐다.
탈주한 76명 중 배를 타고 스웨덴으로 달아난 노르웨이인 2명과 레지스탕스 도움을 받아 스페인으로 달아난 네덜란드인 등 3명만 자유를 찾았다.
체포한 탈주 포로 50명을 사살한 게슈타포 16명은 종전 후 영국 군사법정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영화를 만든 MGM의 존 메이어는 처음에 이야기가 복잡하고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든다며 거절했으나 스터지스 감독의 '황야의 7인'이 성공하자 제작을 허락했다.

 

'추천 DVD / 블루레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올림피아  (2) 2013.07.16
리플리 (블루레이)  (4) 2013.07.06
4월 이야기 (블루레이)  (6) 2013.06.23
태양은 가득히 (블루레이)  (6) 2013.05.29
라이프 오브 파이 (블루레이)  (6) 2013.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