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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DVD / 블루레이

태양은 가득히 (블루레이)

울프팩 2013. 5. 29. 07:56
르네 클레망 감독의 명작 '태양은 가득히'(Plein Soleil, 1960년)는 음악으로 먼저 알았다.
애조띤 트럼펫 선율이 인상적인 니노 로타의 주제곡은 1970, 80년대 FM 라디오의 영화음악 시간에 곧잘 흘러 나왔다.

당시 '영화음악 모음집' 카세트테이프를 사서 열심히 들었는데, 나중에 TV명화극장 시간에 이 작품을 보고 오래도록 가슴이 설레었던 기억이 난다.
무엇보다 영화 음악과 잘 어울리는 우수에 찬 알랑 들롱의 눈빛이 마음에 들었고, 좋아했던 샹송 가수인 마리 라포레(http://wolfpack.tistory.com/entry/애절한-샹송-2곡-마리-라포레-Vivre-a-Deux-샤를르-아즈나부르-Isabelle)의 한창 때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영화는 탐욕과 도전에 대한 이야기다.
부잣집 친구(모리스 로네)를 둔 청년 리플리(알랑 들롱)가 친구를 죽이고 재산을 가로채는 내용이다.

무려 50여년 전 작품인데도 리플리의 사기 행각이 놀라울 정도로 치밀하다.
그만큼 여류 소설가 파트리샤 하이스미스가 쓴 원작 소설 '리플리'의 구성이 훌륭했다.

하이스미스는 1955년부터 무려 36년에 걸쳐 '리플리'를 5부작으로 완성했다.
그 중 1권에 해당하는 작품이 이 영화의 원작이 됐다.

국내에도 처음으로 5권 완역을 목표로 지난해 책이 출간됐는데, 현재 4권까지만 나와 있는 상태다.
영화는 미남 스타 알랑 들롱의 열연과 멋진 지중해 풍경, 니노 로타의 멜로디, 그리고 르네 클레망의 훌륭한 연출이 결합돼 유럽은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크게 성공했다.

이 영화는 주인공 리플리 뿐 아니라 제작진들에게도 도전이었다.
명작 '금지된 장난'(http://wolfpack.tistory.com/entry/금지된-장난) 등으로 거장의 반열에 든 클레망 감독은 1954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명성을 잃었다.

당시 유명 평론가였고, 나중에 누벨바그의 기수가 된 영화감독 프랑소와 트뤼포가 앙드레 바쟁이 창간한 영화잡지 '카이에 드 시네마'에서 르네 클레망을 혹독하게 비판했기 때문이다.
트뤼포는 클레망 감독에게 "예술가가 아니다"라고 독설을 날렸다.

클레망 감독은 자신을 공격한 누벨바그 세대들에게 제대로 된 영화의 깊이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누벨바그 진영의 시나리오 작가 폴 제고프와 촬영감독 앙리 데카에를 영입해 만든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클레망 감독은 이 작품으로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성공하며 다시 명성을 되찾았다.
그만큼 이 작품은 '금지된 장난'과 더불어 그의 대표작이 됐다.

리플리를 열연한 알랑 들롱도 마찬가지.
당시 그는 영화의 주연을 하긴 했지만 거의 무명이나 다름없는 신인이었다.

이 작품에서도 원래 부잣집 청년 역할로 캐스팅 됐으나 첫 제작회의 때 주연을 맡겠다고 해 제작진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들롱의 도전은 성공적이었고, 클레망 감독을 비롯해 원작자인 하이스미스도 그의 연기에 찬사를 보냈다.

클레망 감독과 들롱의 열정이 녹아 있는 이 작품은 1999년에 앤소니 밍겔라 감독에 의해 '리플리'라는 제목으로 다시 태어났다.
재즈 선율과 맷 데이먼, 주드 로의 열연이 어우러진 리메이크작도 훌륭하다.

1080p 풀HD의 1.66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최신작만큼 화질이 좋지는 않다.
윤곽선의 예리한 맛도 떨어지고 어두운 장면에서 지글거림이 두드러지지만 무려 50여년 전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보면 복원이 아주 잘 된 편이다.

감히 듣도 보도 못한 제작사들이 찍어낸 DVD 타이틀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색감 등이 훌륭하다.
음향은 LPCM 모노를 지원하며, 부록으로 감독에 대한 설명과 알랑 들롱 및 원작자인 하이스미스 인터뷰가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그만큼 타이틀을 공들여 제작했다.
국내에 이 작품이 블루레이 타이틀로 출시돼 더 할 수 없이 반갑고 고맙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이 장면 때문에 1960년대 숱한 여성들이 알랑 들롱에게 반했다. 당시 최고 꽃미남으로 등극한 그의 나이 25세였다.
1913년생인 르네 클레망 감독은 10대 때부터 아마추어 영화를 찍었고, 30대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이름을 알렸다. 여러 편의 다큐에서 직접 촬영과 편집까지 한 그는 장 콕토 감독의 '미녀와 야수'에서 기술 고문을 맡았고, '철 격자의 저편'과 '금지된 장난'으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
부잣집 청년 필립의 애인 마지를 연기한 여배우가 바로 유명한 샹송 가수 마리 라포레이다. 그는 이 작품이 데뷔작이다.
이 작품은 제작자인 레이몬드와 로버트 하킴 형제가 클레망 감독에게 원작을 권하면서 영화로 제작됐다.
부잣집 청년 필립을 연기한 모리스 로네. 그는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로스트 코맨드' '파리는 안개에 젖어' 등에 출연했다. 그의 부인은 전설적인 영화인 찰리 채플린의 딸 조세핀 채플린이다. 두 편의 영화를 감독하기도 했던 그는 1983년 암으로 사망했다.
마리 라포레는 루이 말 감독이 발견한 무명의 아마추어 배우였다. 그는 원래 루이 말의 영화로 데뷔할 예정이었으나 제작이 늦어지면서 이 작품으로 데뷔했다. 클레망 감독은 마지 역할로 신인을 원해 그를 뽑았다.
클레망 감독은 바다에서 리플리가 요트를 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과 마지를 유혹하는 장면 등 원작에 없는 내용의 상당 부분을 직접 썼다.
제작자인 하킴 형제는 리플리 역할로 자크 샤리에를 추천했다. 브리짓드 바르도의 두 번째 남편이었던 샤리에는 당시 유명 스타였다.
거센 파도에 리플리가 악전고투하는 장면은 연출이 아닌 실제 상황이다. 촬영 중 거센 바람이 불고 파도가 몰아치자 클레망 감독은 즉석에서 대본을 고쳐 이를 촬영했다. 특히 바람에 흔들린 활대에 머리를 맞고 바다에 빠지는 부분은 연기가 아닌 실제 상황이었고, 이 때문에 들롱은 죽을 뻔 했다.
당시 유명 에이전트였던 올가 오스티크가 알랑 들롱을 감독에게 추천했다. 클레망 감독은 들롱이 주연한 첫 영화 '아가씨 손길을 부드럽게'를 봤으나 신통치 않은 작품이어서 필립 역을 맡기려고 했다.
그런데 감독의 집에서 열린 첫 제작회의 때 들롱이 주연을 하겠다고 당돌한 주장을 폈다. 그를 눈여겨 봤던 클레망 감독의 부인 벨라가 이를 지지하면서 들롱은 주연을 따냈다.
리플리가 수산시장을 돌아보는 장면은 그의 번민을 나타낸다. 생선들은 희생자들을 의미하고 생선가게의 저울은 정의의 심판과 양심의 괴로움을 상징한다.
필립의 친구 프레디는 원작 소설에서 리플리가 휘두른 재떨이에 맞아 쓰러진다. 클레망 감독은 이를 작은 불상으로 바꿨다. 오히려 사람을 살리려는 신에 의해 죽는 역설적 상황을 풍자하고 싶었기 때문.
사선으로 살린 회화적 구도. 흩어진 채소들과 닭은 희생자를 의미한다.
프레디 역할은 리메이크 작인 '리플리'의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연기를 더 잘했다.
필립을 연기한 모리스 로네는 감독이 좋아한 배우여서 직접 연락해 섭외했다.
원작자인 하이스미스는 평생 죄책감을 주제로 소설을 썼다. 그는 1952년 이탈리아 포지타노의 해변에서 본 화난 청년을 보고 '리플리'를 구상했다.
알랑 들롱은 조각같은 외모 덕에 배우가 됐다. 무위도식하는 것을 좋아한 그는 연기를 할 생각이 없었으나 이브 알레그로 감독의 설득으로 첫 영화를 찍은 뒤 촬영 2주만에 연기에 푹 빠졌다. 잘 생긴 외모 덕에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고, 1968년 경호원 중 하나가 그의 집 쓰레기장에서 시체로 발견되며 의문에 사건에 휘말리기도 했다. 한때 양성애자라는 사실을 고백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는 원작 소설과 결말이 다르다. 소설에서 리플리는 유유히 달아나 그 뒤로 4편의 소설을 통해 7건의 살인을 더 저지른다. 그러나 클레망 감독은 범죄자의 도주를 용인할 수 없어 그의 체포를 암시하는 장면을 집어 넣었다. 오히려 영화의 결말이 더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다. 그러나 원작자인 하이스미스는 "공공의 도덕성을 위해 끔찍한 양보를 했다"며 영화의 결말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꽃이 있는 식탁
고은경 저
리플리 1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저/홍성영 역
태양은 가득히 : 블루레이
Rene Clement 감독/알랑 들롱 출연/Christopher Lambert 출연
예스24 | 애드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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