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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DVD / 블루레이

올림피아

울프팩 2013. 7. 16. 20:55

독일의 위대한 여류 감독 레니 리펜슈탈은 나치에 부역한 죄로 '히틀러의 핀업 걸'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유는 영화사에 길이 남는 그의 최고 걸작 2편이 모두 나치 시절에 나왔기 때문이다.

한 편은 1934년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 전당대회를 기록한 '의지의 승리'(http://wolfpack.tistory.com/entry/의지의-승리) 이고, 다른 한 편이 바로 1936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제 11 회 올림픽을 담은 '올림피아'(Olympia, 1938년)다.
둘 다 모두 기록물의 교과서로 꼽히는 다큐멘터리들이다.

올림피아는 1부 '민족의 제전'과 2부 '미의 제전' 등 총 200분이 넘는 분량으로 구성됐다.
주된 내용은 올림픽의 주요 경기장면을 담은 기록물이지만 독일 아리안 민족의 우수성을 신화와 결합해 강조한 정치 선전물적인 색채도 들어 있다.

나치정권이 리펜슈탈에게 전적으로 이 작품의 제작을 맡긴 것도 정치적으로 충분히 활용할 가치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리펜슈탈 역시 올림픽 정신의 테두리 안에서 정치적 선전수단, 즉 프로파간다의 요소를 최대한 끌어 올렸다.

그래서 간간히 히틀러와 나치 수뇌부들 모습이 보이고 파시스트 경례를 붙이는 선수와 관중들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미국 독일 일본 이탈리아 등 사실상 제국주의 성격이 강한 국가 선수들의 경기 장면을 중점적으로 다룬 영상을 보면 리펜슈탈 역시 정치적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점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정치적 색채를 떠나서 보면 갖가지 영상 기법들이 오늘날 스포츠 기록물의 시조가 됐기 때문이다.
바닥에 트랙을 깔고 움직이는 선수들을 쫓아서 촬영하는 기법, 고속 촬영 후 선수들의 모습을 무용처럼 우아하게 슬로 모션으로 다시 보여주는 방법, 크레인을 만들어 내려다보고 전체의 경기 장면을 찍는 부감샷 등을 모두 리펜슈탈이 개발했다.

이를 위해 리펜슈탈은 연출 기획 구성 음악선택은 물론이고 갖가지 촬영방법부터 1년 6개월 이상 걸린 편집까지 혼자서 도맡아 했다.
그만큼 창의적이고 탁월한 감각을 지닌 천재 영상 예술가였다.

더불어 이 작품이 반가운 것은 지금은 고인이 된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 역주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손기정 선수는 이 대회에서 남승룡 선수와 함께 나란히 금메달, 동메달을 받았다.

비록 일제강점기여서 일본기를 달고 뛰었지만 어쨌든 우리 선수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 수상이어서 안타까우면서도 반갑다.
리펜슈탈도 처음에 독일과 같은 길을 걷는 파쇼 국가인 일본 선수로 생각했다가 식민지 청년이라는 점을 알고 관심이 커져 전체 상영시간의 10여분을 손기정 선수에게 할애하는 애착을 보였다.

손 선수와 더불어 이 대회에서 주목을 받은 선수는 미국의 육상 영웅 제시 오언스다.
그는 100미터, 200미터 남자달리기와 400미터 남자계주, 멀리뛰기 등 무려 4개 종목에서 우승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가 세운 올림픽 육상 4관왕 기록은 1984년 LA 올림픽에서 칼 루이스가 같은 기록을 세울 때까지 48년 동안 독보적인 대기록이었다.
하지만 올림픽의 영웅이었던 그는 미국으로 돌아간 뒤 흑인이라는 이유로 철저하게 차별을 받았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물론이고 후임인 해리 트루먼 대통령까지 그에 대한 칭찬이나 백악관 초청을 하지 않았다.
여전히 백인전용 호텔과 식당, 화장실 출입을 금지당했다.

오죽했으면 오언스는 "나를 차별한 것은 히틀러가 아니라 루스벨트'라는 말을 남겼다.
결국 그는 스웨덴 초청대회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미국 육상연맹에서 제명돼 말이나 오토바이와 시합을 벌이는 일종의 서커스 행사에 출연해 연명했다.

이처럼 다양한 인물들과 이야기, 불거리를 2부작에 녹여낸 이 작품은 리펜슈탈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는 걸작이자, 스포츠 다큐멘터리의 효시로서 의미가 큰 영상물이다.
그동안 본 스포츠 영상물들이 모두 이 작품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새삼 시대를 앞서간 그의 천재성에 절로 감탄하게 된다.

4 대 3 풀스크린의 흑백 영상인 DVD 타이틀은 무려 75년 전 작품인 만큼 화질이 좋지 않다.
화소가 뭉개지며, 이중 윤곽선에 필름 손상 흔적이 역력하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2.0 채널을 지원하며, 2번째 디스크에 삭제 영상이 부록으로 들어 있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초반 그리스 신과 영웅들의 조각상이 자연스럽게 독일 청년으로 변화하는 영상을 통해 영웅과 아리안민족을 동일시한다.
파시스트식 경례를 하며 입장하는 독일과 이탈리아 선수들. 팔을 쭉 뻗는 파시스트식 경례는 결벽증이 심했던 무솔리니가 악수를 꺼려해 만들었다.
개회를 선언하는 히틀러. 레니 리펜슈탈은 1902년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무용가의 길을 걸었으나 1924년 프라하 공연 중 무릎 부상을 당해 배우로 전향했다.
베를린 올림픽 영웅인 미국 육상선수 제시 오언스. 100, 200미터 및 400미터 계주와 멀리뛰기 등에서 우승해 4관왕이 됐다. 100미터에서 10.3초 기록으로 우승한 그는 단연 치고 나오는 스피드가 압권이다.
나치 독일의 하켄크로이츠, 즉 갈고리십자기가 걸린 유일무이한 올림픽. 독일은 이 대회에서 금 33, 은 26, 동 30 등 총 89개의 메달을 따서 금 24개 등 56개 메달을 획득한 미국을 누르고 1위를 했다.
이 작품은 선수들의 경기 장면과 관중들의 반응을 함께 배치해 당시 현장 분위기를 잘 살렸다. 레니 리펜슈탈은 배우가 된 뒤 명성을 얻어 직접 영화사를 설립했다. 틈틈히 익혔던 연출로 감독 주연 편집을 한 첫 영화 '푸른 빛'이 흥행에 성공하며 호평을 받았고, 덕분에 아돌프 히틀러의 눈에 들었다.
아아 손기정. 그는 56명이 참가한 마라톤 종목에서 남승룡과 더불어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두 선수의 강력한 라이벌은 전 대회인 LA 올림픽 우승자 지바라였다. 그러나 지바라는 줄곧 선두로 달리다가 초반 너무 무리해 결승선 3.5km 앞에서 넘어지면서 손 선수가 치고 나와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영국의 하퍼 선수가 은메달, 남승룡 선수가 동메달을 차지했다.
히틀러와 나란히 앉아서 경기를 지켜보는 독일 국가원수 괴링. 올림픽조직위는 나치가 영상기록물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것을 우려해 정치적 독립을 요구했다. 이에 리펜슈탈은 오빠 하인즈와 함께 이 작품 제작을 위한 올림피아필름 영화사를 설립했다. 하지만 회사의 자금은 모두 나치에게서 나왔고 당연히 판권도 나치 독일 정부가 소유했다.
히틀러의 입 노릇을 한 선전상 괴벨스가 히틀러와 함께 앉아 있다. 이 작품은 올림픽이 끝난 뒤 히틀러의 49세 생일이었던 1938년 4월20일에 개봉해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성공했다. 올림픽위원회는 제 2 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작품성을 인정해 리펜슈탈에게 금메달을 수여했다..
안전장치 없이 야외 잔디밭에서 열리는 기계체조 경기. 이 작품은 100% 리얼 다큐는 아니다. 리펜슈탈은 좋은 영상을 위해 일부 장면에서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에게 극적인 장면을 재현토록 하고 다시 찍었다.
그림자를 이용해 찍은 펜싱 경기 장면이나 물에 비친 모습을 촬영해 마치 바닥에서 솟아올라 하늘로 뛰어드는 듯한 장면 등을 보면 절로 감탄이 나올 만큼 창의성이 놀랍다.
아마추어시합이지만 헤드기어 없어 치르는 권투 시합. 3라운드제는 동일하다.
눈에 띄는 것은 군복차림의 선수들. 승마 사격 등은 현역 군인들이 대거 출전해 제복을 그대로 입고 나왔다. 독일 공군 장교가 사격에 출전해 총을 쏘는 모습.
리펜슈탈은 메인 스타디움 촬영을 위해 비행선까지 동원해 웅장한 부감샷을 찍었다. 또 레일을 깔아 카메라가 선수들을 따라 함께 움직이는 트래킹 촬영을 최초로 시도했고, 거대한 크레인 탑을 세우고 부감 촬영을 했다. 수영 장면에서는 수중 촬영까지 감행했다.
그러나 이 작품의 백미는 슬로 모션이다. 여러 경기의 주요 장면을 마치 무용을 보는 듯한 슬로 모션으로 처리해 강건한 육체들이 뿜어내는 아름다움을 다시 발견하게 했다. 이 작품 덕에 스포츠 영상물에 슬로 모션이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소위 귀족 경기인 폴로도 당시 올림픽 종목이었다. 당시 일본은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 금메달을 포함해 남자 3단 뛰기에서 세계 신기록, 남자 수영 평형 200m에서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는 등 6개의 금메달과 은 4, 동 8개를 획득해 8위가 됐다.
뉘른베르그 전당대회에서 선보여 유명한 소위 '빛의 궁전'을 폐막식에서 재현. 일제히 대공 서치라이트를 하늘로 쏘아올리며 거대한 빛의 기둥을 만드는 장관을 연출했다. 리펜슈탈은 제 2 차 세계대전 종전 후 남편과 이혼한 뒤 힘들게 살았다. 1960년대에는 사진 작가로, 70년대에는 수중 촬영으로 유명해졌고, 101세까지 장수한 뒤 2003년 독일에서 영면했다.
올림피아 1 - 민족의 제전
레니 리펜슈탈 감독
올림피아 2 - 미의 제전
레니 리펜슈탈 감독
레니 리펜슈탈 감독 컬렉션 박스세트[올림피아1,2 푸른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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