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가 '지구 상에서 낙원을 보려거든 찾아가라'고 한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를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보석처럼 반짝이는 바다였다.
거기에 주단을 펼쳐 놓은 듯 붉게 빛나는 중세시대 마을의 지붕들.
비단 화가가 아니어도 절로 그림을 그리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두 편을 통해 거듭났다.
마을 풍경이 온전히 나오는 '마녀 배달부 키키'와 남성들을 위한 낭만적인 작품 '붉은 돼지'(紅の豚, 1992년)다.
이 작품은 제1 차 세계대전 후 아름다운 아드리아해를 배경으로 하늘의 사나이들이 비행 실력을 겨루는 내용이다.
아드리아해는 이탈리아와 크로아티아 사이에 펼쳐진 바다로, 여기 점점이 떠있는 섬들이 작품 속 여인 지나가 머무는 호텔 아드리아노의 배경이 됐다.
이 작품이 매력적인 것은 우선 감성을 자극하는 서정적인 그림들이다.
아드리아해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푸른 하늘과 뭉게뭉게 피어나는 흰 구름들, 여기를 가르는 붉은 비행기 등 색감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그만큼 판타지에 가까운 영화는 낭만적이다.
주인공은 파시즘에 혐오를 느껴 스스로 마법을 걸어 돼지가 돼 버렸고, 그런 그를 한결같이 사랑하는 아름다운 여인이 있다.
그들이 보여주는 사랑은 뜨겁게 끓어오르거나 격정적이지 않다.
알 듯 모를 듯 내색하지 않고 은은하며 서로의 눈빛으로만 전달할 뿐이다.
세월이 흘러 펼쳐 든 앨범처럼 그들의 사랑은 지긋한 세월의 무게가 얹힌 농익은 감정이 돼버렸다.
그래서 하야오 감독은 이 작품을 젊은 시절을 흘려보낸 중년들을 위한 작품이라고 칭했다.
여기에는 제작 당시 나이 지긋한 중년이 돼버린 하야오 감독의 개인적인 꿈도 녹아 있다.
어려서 비행기 조종사를 동경했던 그의 꿈과 자라면서 군국주의에 반대하게 된 그의 정서와 생각이 녹아 있기 때문.
실제로 인간 세상에 혐오를 느껴 돼지가 돼버린 주인공은 "파시즘보다 돼지가 낫다"며 군국주의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더불어 악당 조차도 미워할 수 없는 악동처럼 그려 인간에 대한 강한 애착과 연민을 나타냈다.
아름다운 그림과 낭만적인 이야기, 서정적인 음악이 잘 어우러진 이 작품을 보면 두브로브니크의 파란 하늘과 붉은 지붕이 떠올라 가슴이 뛴다.
지나가 오래 간직한 사진 속 사랑처럼 가슴을 설레게 하는 명작이다.
일본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출시한 블루레이는 다행히 본편에 우리말 녹음과 한글 자막이 들어 있다.
1080p 풀 HD의 16 대 9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좋다.
무엇보다 아드리아해의 찬란한 풍경을 또렷한 색감으로 잘 살렸다.
음향은 DTS-HD 2.0 채널이지만 기총 소리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을 박력 있게 재현한다.
부록으로 짧은 인터뷰 영상이 들어 있으나 한글 자막을 지원하지 않는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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