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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로마의 광장들

울프팩 2016. 8. 9. 22:36

로마는 유독 광장과 분수가 많다.

광장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조금만 걷다 보면 크든 작든 쉽게 광장을 볼 수 있고, 날씨가 덥다 보니 식수로도 사용하며 더위를 식힐 수 있는 분수들을 만날 수 있다.

광장과 분수만 쫓아 다녀도 로마의 유명한 곳들을 대부분 볼 수 있을 정도다.

 

바르베리니 광장 piazza barberini

 

숙소 근처에 있던 바르베리니 광장은 바르베리니 지하철 역에서 나오면 바로 앞에 있다.

차들이 광장을 돌아 회전하는 곳에 마치 교차로 중심처럼 작은 광장이 위치하고 있다.

 

광장 복판에 분수 하나가 덜렁 설치된 이 곳은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다.

워낙 로마에 광장이 많다 보니 이 곳이 허름해 보일 수 있는데, 이 곳 또한 유명한 작품이 설치된 이름있는 장소다.

 

[중앙에 트리토네 분수가 설치된 바르베리니 광장. 광장 근처에 베르니니의 또다른 유명한 작품인 꿀벌 분수(fontana delle api)도 있다. 역시 우르바누스 8세의 의뢰로 1644년에 제작됐다. 조개와 함께 바르베리니 가문의 상징인 꿀벌이 조각돼 이런 이름이 붙었다.]

 

광장에 설치된 작은 분수인 트리토네 분수(fontana del tritone)는 바로 로마의 바로크 시대를 연 3명의 미술가 겸 건축가 중 한 사람인 로렌조 베르니니의 작품이다.

그가 16세기에 만든 이 분수는 해신이 고동을 불고 있는 모습이다.

 

광장 이름은 베르니니를 후원한 바르베리니 가문의 이름에서 따왔다.

바르베리니 가문에서 배출한 교황 우르바누스 8세는 베르니니에게 트리토네 분수를 비롯해 여러 작품을 의뢰했고, 바티칸의 태피스트리 방에 걸린 숱한 태피스트리들과 성 베드로 대성당의 발다키노 또한 그가 주문했다.

 

지하철 역에서 나와 뒤쪽으로 조금만 가면 바르베리니 궁전이 있다.

이 궁전은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연기한 극 중 공주가 머물던 곳으로 등장한다.

 

공화국 광장 piazza delle repubblica

 

[모세 분수와 분수를 마주보고 섰을 때 왼편에 산타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 측면이 보인다.]

 

바르베리니 광장에서 분수를 등지고 오른쪽 길로 비스듬히 올라가면 영화 '달콤한 인생'을 찍은 베네토 거리이고, 반대편 왼쪽의 완만한 경사로를 오르면 공화국 광장으로 향하는 길이다.

공화국 광장까지 걸어서 15~20분 정도 걸리는데 경사로 끝에 유명한 성당과 분수가 있다.

 

바로 베르니니의 조각상 '성 테레사의 환희'가 있는 산타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chiesa santa maria della vittoria)과 모세 분수다.

모세 분수는 교황 식스투스 5세가 로마에 물 공급을 늘린 것을 기념해 만들었다.

 

산 피에트로 인 비콜리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작품 모세상을 참고해서 제작됐다.

분수 하단에 사자상들은 이집트 정복 후 가져온 것들이다.

 

[나이아디분수와 반원형 건물이 위치한 공화국 광장. 건물에 호텔, 쇼핑센터 등이 있다.]

 

성당을 뒤로 하고 이번에는 완만한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가다보면 오른편에 유명한 대형서점 펠트리아니(la Feltrinelli Librerie)가 보인다.

펠트리아니는 외국 서적을 파는 국제점과 이탈리아 서적 및 음반, DVD 등을 파는 서점이 서로 나뉘어 있는데 거의 나란히 붙어 있으며, 출입문만 다르다.

 

서점을 지나서 내려가면 커다란 광장이 나오는데 바로 공화국 광장이다.

이탈리아의 통일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광장으로, 중앙에 나이아디 분수가 있다.

 

마리오 루텔리가 1901년에 만든 이 분수는 물의 요정 4명이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다.

분수 너머로 대로를 사이에 두고 잘라 놓은 듯한 반원형 건물이 인상적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대형 목욕탕 유적을 그대로 이용해 설립한 산타마리아 델리 안젤리 에 데이 마르티리 성당 외관.]

 

이 광장 또한 역사적 장소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건설한 대규모 공중 목욕탕이 이 곳에 있었다.

 

306년에 디오클레티아누스가 3,000명이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대형 목욕탕을 지었다.

단순 목욕탕이 아니라 수영장과 요즘으로 치면 피트니스센터에 해당하는 체력단련장, 독서와 회합을 할 수 있는 거대한 회랑인 에세드라(esedra)까지 설치했다.

 

반원형 건물은 바로 이 에세드라 자리에 과거 형태를 살려서 건축됐다.

목욕탕, 그 중에서도 열탕과 냉탕 등이 있던 자리에 거대한 성당인 산타마리아 델리 안젤리 에 데이 마르티리(basilica di santa maria degli angeli)라는 긴 이름의 성당이 설립됐다.

 

[성당 정면에 해당하는 반원형 벽에 두 개의 커다란 청동문이 달려 있다.]

 

이 성당을 만든 인물은 위대한 조각가 겸 화가이자 건축가였던 미켈란젤로다.

그는 1563~66년 목욕탕의 벽면 일부를 그대로 이용해 성당을 지었으며, 1749년 건축가 반비텔리가 일부를 개조했다.

 

제 2차 세계대전 패망과 함께 사라진 이탈리아 왕국의 공식 국가성당이었던 이 곳에 교황 비오 4세 등 유명 인사들의 무덤도 있다.

2006년 폴란드 출신 조각가 이고르 미토라이가 거대한 청동 문과 세례 요한 동상 등을 설치했다.

 

[성당 내부의 거대한 고대 목욕탕 유적을 보면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내부에는 이 곳을 유명하게 만든 또하나의 명물인 갈릴레이의 자오선이 있다.

해가 이동하는 위치를 관측해 점으로 찍어 표시한 자오선은 성당 바닥을 비스듬히 지나간다.

 

갈릴레이는 직선이 아니라 휘어서 움직이는 해의 궤적을 보고 지구가 공전과 자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를 기념해 성당 옆문으로 나가보면 갈릴레이의 동상이 서 있다.

 

[성당 바닥을 지나가는 갈릴레이의 자오선.]

[성당 내부 측면에 파이프 오르간이 보인다.]

 

캄피돌리오 광장 Piazza del Campidoglio

 

로마인들은 고대 로마의 발상지인 7개 언덕 가운데 중심인 캄피돌리오 언덕을 세계의 머리, 즉 카푸트 문디(caput mundi)라고 불렀다.

그만큼 이 곳은 로마인들의 자부심이자 상징같은 곳이다.

 

로마 왕정시대인 기원전 575년 이 곳에 제우스 신을 위한 대규모 신전을 세우기 위한 공사를 하다가 정체불명의 유골을 발견했다.

로마 왕은 이를 전설 속 영웅인 아울루스의 머리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아울루스(aulus)의 머리에서 유래한 카푸트올리라는 지명이 생겼고, 이를 라틴어로 카피톨리움(caput mundi)으로 명명했다.

여기서 미국의 국회의사당을 뜻하는 영어 캐피톨(capitol)이 유래했다.

 

[광장 설계자인 미켈란젤로는 정면 시청사의 양쪽 계단이 완공된 것만 보고 죽었다. 광장의 복잡한 문양은 땅에서는 형태가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높은 곳에서 보면 꽃 모양이다. 이는 곧 미켈란젤로가 이 광장을 하늘의 신에게 바쳤다는 뜻이다.]

 

이 곳은 고대 로마 군단이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면 개선행렬이 마지막에 이르는 기착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제국이 망한 후 돌보는 사람이 없어 잡초가 무성해지면서 양떼를 풀어 기르는 폐허가 됐다.

 

이를 본 교황 파울루스 3세가 미켈란젤로를 불러 광장을 조성하라고 지시했다.

미켈란젤로는 1536년 광장의 설계를 마쳤으나 공사 시작은 그로부터 10년 뒤였고 여기에 재정난이 겹쳐 자꾸 늦어지면서 결국 완공을 보지 못하고 1564년 타계했다.

 

그의 뒤를 이어 건축가 델라 포르타가 미켈란젤로의 설계를 살려 미켈란젤로 사후 40여년이 지난 1605년에 광장과 주변 건물을 완공했다.

그만큼 미켈란젤로의 천재적인 건축 솜씨가 배어있는 이 광장은 르네상스 시대의 광장 설계의 표본을 보여 준다.

 

[광장을 향한 돌계단인 코르도나타. 맨 위에 디오스쿠리 형제의 석상이 서 있다.]

 

광장을 둘러싸듯 벌려선 3채의 건물은 정확히 직각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양 날개의 해당하는 건물이 바깥쪽을 향해 비스듬히 벌어진 독특한 구도다.

미켈란젤로가 이렇게 만든 이유는 원근법을 살리기 위해서다.

 

즉 멀리서부터 건물을 바라보며 다가올 때 약간 벌려 서 있어야 원근법 때문에 정확한 대칭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즉 완벽 도시를 꿈꾸는 르네상스 시대의 철학이 광장 설계에 그대로 배어 있다.

 

광장에 도달하려면 코르도나타(cordonata)라고 부르는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계단은 폭이 넓어 오르는 데 힘들지 않다.

 

계단 폭을 넓게 한 이유는 당시 이곳을 방문하려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인 카를 5세가 말을 타고 오를 수 있도록 설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완공이 늦어져 카를 5세는 언덕을 빙 돌아 뒤편으로 올랐다고 한다.

 

계단 꼭대기에는 나란히 선 벌거숭이 남자의 석상 2개가 있는데 제우스 신의 아들인 디오스쿠리 형제다.

로마인들이 카스토르와 폴룩스로 부른 이 형제들은 인간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갑자기 나타나 구원해 준 반가운 존재들로 알려져 있다.

 

 

[광장 가운데 위치한 시청사 하단에 분수와 로마의 여신상이 있다.]

 

광장에 들어서면 커다란 청동상이 가운데 서 있다.

로마의 현명한 황제로 알려진 '명상록'의 저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기마상이다.

 

기독교인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기마상을 교황이 조성한 광장 한복판에 세운 것은 당시 로마인들의 착각 때문이었다.

원래 이 청동상은 로마의 남쪽 라테라노 지역의 산 조반니 성당 앞에 서 있었는데 이를 당시 사람들이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로 착각해 광장 한 복판으로 옮겨왔다.

 

처음에는 금박이 있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닳았다.

청동상도 대기오염으로 부식이 심해지는 바람에 1980년 광장 좌측의 캄피돌리오 박물관 안으로 옮겼다.

 

지금 광장에 서 있는 것은 모조품이다.

청동상의 받침대는 미켈란젤로가 포로 로마노에 있는 디오스쿠리 신전에서 가져온 돌로 만들었다.

 

[세계를 상징하는 구를 움켜쥐고 있는 여신상. 이 곳이 곧 세계의 중심이라는 상징이다. 그런데 그 위에 하필 비둘기가 앉아있다.]

 

광장을 에워싼 3채의 건물은 청동상을 마주보고 섰을 때 왼편에 콘세르바토리 궁전, 가운데 시청사, 오른편에 세계 최초로 일반에게 공개된 박물관인 된 카피톨리노 궁전이 있다.

콘세르바토리 궁전은 고대 로마와 교회 문화재를 보관하고 있으며, 시청사는 1143년 시민들이 교황에 반대해 폭동을 일으킨 뒤 선출된 원로원 의원들의 집무를 보던 곳이다.

 

광장은 고대 로마의 유적을 밟고 서 있는 셈이다.

원래 터 위에 기원전 509년 카피톨리누스 신전이 있었으며, 콘세르바토리 궁전 자리에 제우스 신전, 터였으며 시청사 자리는 고대 로마의 국가문서보관소였던 타불라리움이 있었다.

 

시청사 아래에 나일강과 테베레강의 신이 걸터앉은 분수가 있고 가운데 동그란 구를 손에 든 로마여신상이 있다.

세계를 뜻하는 구를 든 로마여신상을 통해 이 곳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스페인광장 Piazza di Spagna

 

[스페인 계단은 공교롭게 보수 공사 중이어서 올라갈 수가 없다. 계단 위쪽에 삼위일체 성당이 보인다.]

 

스페인 광장은 로마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장소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그레고리 펙과 걸어 내려온 명소인 스페인 계단이 있고, 그 앞으로 난 콘도티 거리 양편에 세계적 명품 브랜드들이 낸 상점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이 곳이 스페인 광장으로 불리는 이유는 17세기에 강대국이었던 스페인 대사관이 있었기 때문.

1722년 완성된 스페인 계단은 프랑스 외교관의 유산으로 만들었으나 프랑스를 견제했던 교황이 스페인 계단으로 명명했다.

 

[바르카차 분수 앞쪽에 뚫린 콘도티 거리는 양편에 명품숍들이 즐비해 쇼핑객들이 많이 찾는다.]

 

계단 설계는 현상 공모를 통해 뽑힌 프란체스코 데 상티가 맡았다.

137개의 계단을 오르면 꼭대기에 삼위일체 성당이 있다.

 

돈을 댄 프랑스인들은 원래 계단 위 언덕에 루이 14세의 기마상을 세울 예정이었다.

그러나 여기 반대한 교황 인노켄티우스 13세가 공사를 중단시키자 결국 성당을 지었다.

 

[작은 배 모양을 닮은 바르카차 분수. 분수 너머로 보이는 주황색 건물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어들면 스페인광장 지하철역 입구가 나온다.]

 

계단 앞에 배 모양의 바르카차 분수(fontana della barcaccia)가 있다.

테베레강에서 와인을 실어 나르던 낡은 배인 바르카차를 흉내낸 이 분수는 유명한 로렌초 베르니니의 아버지 피에트로 베르니니가 만들었다.

 

그는 이 분수를 로마에 큰 물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남아 있던 작은 배를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분수에서 나오는 물은 식수로도 쓰인다.

 

[바르카차 분수에서 바라본 스페인광장 입구쪽에 커다란 원주가 보인다. 트레비 분수가 이 곳에서 가깝다.]

 

분수 앞 콘도티 거리에 카페 그레코(caffe greco)라는 유명한 카페가 있다.

옛 그리스 카페라는 뜻의 안티코 카페 그리코(the antico caffe greco)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이 곳은 그리스 출신의 니콜라 델라 맛다레나가 1760년에 개점했다.

 

즉 250년이 넘었다는 얘기.

그동안 괴테, 바이런, 스탕달, 리스트, 키이츠, 입센, 안데르센, 멘델스존, 바그너, 카사노바, 보들레르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과 인디언 추장들과 함께 유럽에서 순회 쇼를 했던 미국의 버펄로 빌 등 유명 인사들이 이 곳을 찾았다.

 

[카페 그레코 입구. 워낙 유명한 곳이어서 늘 사람들로 붐빈다.]

 

이탈리아 정부는 그만큼 유서깊은 이 곳을 문화재로 지정했다.

들어가보면 테이블 배치가 좀 독특하다.

 

양쪽 벽면에 지하철처럼 기다란 의자가 쭉 붙어 있고 그 앞에 테이블이 놓여있다.

좌석 위에는 실제 그 자리에 자주 앉았던 유명인들의 사진이나 초상, 조각 등이 붙어 있어서 이를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커피 가격은 바에서 마시면 1.3유로, 좌석에 앉아서 마시면 자리값으로 8,9유로 정도 받는다. 

단순히 커피 맛만 볼 생각이라면 굳이 테이블을 차지할 필요는 없다.

 

[카페 그레코 내부. 양쪽 벽면에 지하철 의자처럼 기다란 의자가 붙어 있고 벽을 등진채 커피를 마신다. 벽에 붙어 있는 부조는 그 자리에 앉았던 유명 인사들이다.]

[스페인 광장에서 가까운 유명한 디저트 전문점 폼피. 티라미슈를 처음 만든 곳으로, 국내에도 들어와 있다. 특히 딸기를 얹은 티라미슈가 인기 메뉴다.]

[얼마나 한국 사람들이 많이 다녀가는 지, 폼피에서 일하는 저 청년은 간단한 우리 말도 몇 마디 했다.]

 

포폴로 광장 Piazza del Popolo

 

민중의 광장이란 뜻의 포폴로 광장은 로마의 관문 같은 곳이다.

포폴로 문을 통해 광장에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로마에 발을 들여 놓게 된다.

 

포폴로 문은 교황 피우스 4세가 16세기에 건설한 것으로 1655년 베르니니가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을 환영하는 뜻으로 내부 장식을 만들었다.

크리스티나 여왕은 30년 전쟁이 끝난 뒤 스웨덴의 문화를 융성하게 만들었으나 왕위를 버리고 카톨릭으로 개종해 로마에 와서 살았다.

 

[포폴로 광장의 오벨리스크 뒤로 포폴로 문, 그 옆에 산타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이 보인다.]

 

교황 식스투스 5세가 1589년에 광장 조성 계획을 마련했으며 19세기 주세페 발라디에르가 완성했다.

포폴로 문을 지나면 광장 복판에 오벨리스크가 우뚝 서 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이집트 정복 후 가져온 것이다.

기원전 3세기때 물건으로 추정되는데 로마에 있는 오벨리스크 가운데 두 번째로 오래됐다.

 

[쌍둥이 성당인 산타 마리아 데이 미라콜리와 산타 마리아 데이 몬테산토. 산타 마리아 데이 몬테산토는 외관을 보수 중이었다.]

 

오벨리스크 뒤로 같은 모양의 쌍둥이 성당인 산타마리아 데이 미라콜리(Santa Maria dei Miracoli)와 산타마리아 인 몬테산토(Santa Maria dei Montesanto)가 나란히 서 있다.

교황 알렉산드르 7세가 세운 이 쌍둥이 성당은 돔 모양이 미세하게 다르기는 하지만 언뜻봐서 구별이 가지 않는다.

 

산타마리아 데이 미라콜리 성당은 원형 평면에 8각형 둥근 지붕과 종탑이 특징이다.

이스라엘의 카르멜산에서 유래한 성스러운 산을 의미하는 산타마리아 인 몬테산토 성당은 타원형 평면에 12각형 지붕과 종탑이 있다.

 

산타마리아 인 몬테산토는 카를로 라이날디가 설계한 것을 로렌조 베르니니가 수정했고 카를로 폰타나가 완성했다.

포폴로 문 옆에 보면 유명한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Santa Maria del Popolo) 성당이 있다.

 

[핀치오 언덕에서 내려다 본 광장. 멀리 성 베드로 성당의 돔이 보인다.]

 

교황 파스칼리스 2세가 1099년 광장에 네로 황제의 악령이 출현한다는 소문이 돌자 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건설한 성당이다.

성당 이름은 '민중의 성모 마리아'란 뜻이다.

 

이 성당이 유명한 것은 베르니니, 카라바조 등 훌륭한 대가들의 작품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성당을 나와 경사진 옆길을 오르면 핀치오(pincio) 언덕에 닿을 수 있다.

 

언덕 꼭대기에 이르면 멀리 성 베드로 성당의 첨탑을 포함해 광장을 내려다 볼 수 있는 테라스가 있다.

1810년 발라디에르가 설계한 이 테라스에서 내려다 보는 풍경도 볼 만 하다.

 

[포폴로 광장에서 가 볼 만한 맛집은 쌍둥이 성당 중 하나인 미라콜리 옆쪽에 위치한 카노바(canova)가 있다. 피자, 스파게티, 봉골레 등을 파는데 여행안내서에 곧잘 소개되는 집이다.]

 

나보나 광장 Piazza Navona

 

나보나 광장은 스페인 광장과 더불어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곳이다.

이 광장은 서기 86년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세운 경기장 터를 그대로 활용해 조성됐다.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서민들을 위해 경기장을 건설한 곳은 테베레 강변의 저지대인 캄포 마르지오(campo marzio) 지역이다.

지역명칭은 라틴어로 캄푸스 마르티우스(campus martius), 즉 군신 마르스의 들이라는 뜻으로 병사들이 훈련을 하던 곳이다.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이 곳에 길이 276미터의 트랙을 깔고 3만명이 들어갈 수 있는 경기장을 지었다.

강이 가깝다 보니 물을 끌어와 모의 해전도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오벨리스크가 우뚝 솟아 있는 4대강의 분수와 성 아네제 인 아고네 성당이 위치한 나보나 광장.]

 

팜필리 가문의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는 경기장 터를 살려서 광장을 조성했다.

기름한 모양의 광장은 경기장의 트랙을 따라 만들었고 이를 내려다보듯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은 관중석 터를 살려서 건설됐다.

 

이 곳에서 유명한 것은 피우미 분수, 넵튠 분수, 모로 분수 등 3개의 분수다.

그 중에서 4대강의 분수로 알려진 피우미 분수(Fontana dei Fiumi)가 가장 유명하다.

 

이 분수는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조각가 베르니니의 작품이다.

1651년에 완성된 분수 아랫 부분을 4대륙의 강을 상징하는 거인들이 받치고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각 거인들은 유럽 대륙의 다뉴브강, 아시아의 갠지스강, 아프리카의 나일강, 미주의 플라타나 강을 상징한다.

분수 위에는 17미터의 오벨리스크가 서 있다.

 

[베르니니 작품인 4대강의 분수.]

 

분수 뒤로 상트 아네제 인 아고네 성당(Sant' Agnese in Agone)이 있다.

이 성당은 베르니니와 앙숙이었던 보로미니의 작품이다.

 

성당 이름 끝에 붙는 아고네(agone)는 경기장을 의미해 '경기장의 성녀 아네제'라는 뜻이다.

성녀 아네제는 로마 제국 시절인 304년에 기독교를 버리고 이교도인과 결혼하라는 지시를 거부한 채 경기장 바닥에서 알몸으로 순교한 13세 소녀다.

 

순교 당시 머리카락이 길게 자라 알몸을 덮었다고 한다.

이태리식 이름이 낯설지만 영어로 하면 아그네스라는 익숙한 이름이다.

 

원래 이 성당은 로마의 유명 건축가였던 라이날디 부자가 설계를 맡았다.

그러나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는 이들의 설계가 마음에 들지 않아 보로미니에게 재차 맡겼다.

 

보로미니는 공사를 하고 있던 내부는 놓아두고 외부를 바꾸는 데 집중했다.

그래서 성당 중앙에 둥근 돔을 설치하고 좌우에 종합으로 대칭을 이루도록 했다.

 

[4대강의 분수 뒤로 성 아네제 인 아고네 성당이 보인다.]

 

이 같은 보로미니의 외관 설계는 향후 유럽의 성당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성당을 건설한 보로미니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성격이 고약해 화를 잘 냈다.

 

그 바람에 사람들이 기피해 실력이 뛰어난데도 일을 맡지 못해 괴로워하다가 자살했다.

원래 4대강 분수도 보로미니가 맡기로 돼 있었다.

 

그는 설계안을 교황에게 제출한 뒤 공사를 준비했다.

그런데 이를 알게 된 베르니니가 교묘한 방법으로 가로챘다.

 

베르니니는 4대강 분수 모형을 만든 뒤 교황 측근을 통해 교황의 눈에 잘 띄는 탁자 위에 올려 놓도록 했다.

이 모형을 본 교황은 크게 감탄해 보로미니 대신 베르니니를 불러 분수를 맡겼다.

 

이 광장에서는 낮에는 화가들이 나와 그림을 그려 팔고, 밤에는 연주자들과 각종 길거리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흥겨운 공연을 펼친다.

그만큼 늘 사람들로 북적댄다.

달콤한 인생(1disc)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 감독;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배우
로마 걷기여행
존 포트,레이첼 피어시 공저/정현진 역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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