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여행

로마의 카라바조 - 도리아 팜필리 궁전,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

울프팩 2016. 8. 15. 23:04

이탈리아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베르니니 등 워낙 유명한 화가들이 많이 활동한 곳이지만 그 중에서도 꼭 작품을 보고 싶은 화가가 있다.

바로 카라바조(Michelangelo da Caravaggio)다.

 

그의 그림은 사람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목을 자르는 장면처럼 과격한 소재도 인상적이지만 빛과 어둠을 적절하게 사용해 극적인 순간을 강하게 부각시킨 그림들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도리아 팜필리 궁전에 전시된 카라바조의 그림 '이집트 피난길의 휴식'.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와 천사 앞에 악보를 받쳐든 남편 요셉 등 성 가족을 그린 그림인데 이전 그림들과 달리 맨발에 쭈글쭈글한 얼굴 등 지극히 서민적인 모습이어서 논란이 됐다.]

 

본명이 미켈란젤로 메리시인 그는 미켈란젤로와 혼동을 피하기 위해 그의 고향인 마을 이름을 따서 카라바조로 통한다.

1573년 밀라노의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5세때 흑사병을 피해 부모의 고향인 카라바조로 떠났다.

 

어려서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모두 잃은 탓에 힘들게 살았던 그는 성정이 난폭해서 숱한 사고를 쳤다.

경비원을 폭행하고 경찰에게 욕설을 퍼붓거나 화가와 식당 종업원을 모욕해 6년 동안 무려 15회나 경찰 조사를 받았고 7차례에 걸쳐 투옥됐다.

 

[도리아 팜필리 궁전에 걸려 있는 카바라조의 그림 '막달라 마리아의 참회'. 어깨에 걸려 있던 옷이 옆으로 흘러 내리는 모습 등은 지극히 사실적이지만 역시 단정치 못하다는 비난을 들었다.]

 

그때마다 그를 구해준 것은 뛰어난 그림 실력에 반한 귀족 등 실력자들이었다.

하지만 1606년 테니스게임에 돈을 걸었더가 사이가 나쁜 라누치오 토마소니와 다투다가 패싸움을 벌여 갖고 있던 칼로 토마소니를 찔러 죽게 만들었다.

 

살인자가 된 그는 달아나서 몰타, 시칠리아, 나폴리 등을 떠돌게 된다.

하지만 도피처마다 그의 그림 실력을 높이 산 사람들이 도와줘 힘들지 않게 살았다.

 

[도리아 팜필리 궁전에는 카라바조의 그림으로 알려진 '세례 요한' 그림이 두 점이다. 얼핏보면 구분이 가지 않을 만큼 똑같은 그림을 왜 두 점씩 그렸을까. 여기에는 비밀이 있다.]

 

그는 몰타에 머물 때 몰타기사단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으나 1608년 동료 기사와 싸움을 벌여 투옥됐다.

거기서 탈옥한 그는 시칠리아로 달아났고 기사단에서 제명됐다.

 

오랜 도망 생활에 지친 그는 1610년 사면을 받기 위해 보르게세 추기경에게 받칠 그림 세 편을 들고 로마행 배를 탔다.

그러나 중간에 들린 팔로에서 경비대장이 그를 다른 사람으로 잘못 알고 체포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카라바조는 보석금을 내고 풀려 났으나 그림은 배에 실린 채 로마로 사라졌다.

그는 그림을 찾기 위해 다음 항구인 포르토 에르콜레로 서둘러 떠났으나 그림을 찾지 못하자 그곳에서 심신이 쇠약해져 말라리아에 걸려 객사했다.

 

그의 나이 서른아홉이었다.

하지만 혹자는 누군가에 칼려 찔려 길위에서 죽었다고 하고 누구는 해변에서 시체로 발견됐다고 하는 등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견이 분분하다.

 

어쨌든 정상적인 죽음은 아니다.

결코 길지 않은 삶을 살았던 카라바조는 죽기 직전 교황 바오로 5세로부터 사면을 받았으나 이를 모른 채 죽었고, 교황 바오로 5세도 그가 죽은 줄 모르고 사면했다.

 

[도리아 팜필리 궁전의 안뜰. 가운데 오렌지 나무가 보인다.]

 

카라바조는 파란만장한 생애와 달리 미술사적으로 아주 커다란 족적을 남긴 위대한 화가다.

미술계에서는 그를 바로크 시대를 연 대표적인 화가로 꼽는다.

 

빛과 어둠의 대비를 극명하게 표현한 그는 이를 통해 극적인 순간을 강하게 부각시켰고, 사실적인 인물 묘사로 이전 그림들과 확연하게 다른 점을 보여줬다.

특히 신화나 성서 속 소재를 다룬 그림들에서 이런 차이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이전 화가들은 신화나 성서 속 인물들을 아름답고 선하게만 그렸으나 카라바조는 달랐다.

빈민가 노인과 농부, 창녀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들을 신화나 성서 속 주인공으로 탈바꿈시켰다.

 

후대에는 이런 그의 그림을 보고 사실적인 화풍으로 높이 평가했지만 교황의 권위가 기세등등하던 당시에는 신성모독이라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카라바조는 이 같은 비판을 의식해서인 지 죽기 직전에 사면을 받으려고 그린 '골리앗의 목을 벤 다윗' 같은 그림에서 잘린 목에 자기 얼굴을 그려 넣는 식으로 교단에 속죄하기도 했다.

 

카라바조가 보여준 빛과 어둠의 대조는 테네브리즘으로 불린다.

어둠이라는 뜻의 라틴어 테네브레(tenebrae)에서 따온 테네브리즘은 일반적인 명암대비를 넘어선 주변 풍경을 완전히 집어 삼키는 어둠을 그려 넣어 인물들을 강하게 부각시켰다.

 

특히 그는 그림 속 빛과 어둠이 실제 전시 공간과 연결되도록 그려 넣어 작품 속 세계가 실제 세계로 확장된 듯한 신비한 느낌을 불러 일으켰는데, 이런 여러가지 기법들이 17세기 유럽 화단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추종하는 렘브란트 같은 숱한 화가들, 즉 카라바지스티(caravaggisti)들이 등장하게 만들었다.

 

도리아 팜필리 궁전 Palazzo Doria Pamphilj

 

[도리아 팜필리 궁전 입구.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을 등지고 코르소 거리를 따라 내려가다보면 왼편에 있다.]

 

카라바조는 생전에 60~80편의 그림을 그린 것으로 알려졌는데 비교적 로마에 많은 그림이 남아 있다.

그 중에서 한꺼번에 몇 점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도리아 팜필리 궁전이다.

 

도리아 팜필리 궁전은 이름만 보고 베르사이유 궁전 같은 곳을 연상하면 곤란하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을 등지고 코르소 거리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나타나는 이 곳은 주변 상가건물들과 똑같아 지나치기 십상이다.

 

[도리아 팜필리 궁전은 어진간한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양의 회화와 조각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이 곳은 16세기 도리아 팜필리 가문이 수집한 그림과 조각들을 소장한 곳이다.

이 건물 한 켠에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이 있는데 이 곳에 카라바조 그림들이 여러 점 걸려 있다.

 

1996년부터 일반에 공개된 미술관은 카라바조 뿐 아니라 '교황 인노첸시오 10세의 초상'으로 유명한 벨라스케스를 비롯해 라파엘로, 티치아노 등 유명 화가들의 작품 400여점을 보관하고 있다.

 

[도리아 팜필리 궁전의 무도실. 한 켠에 연주자들의 모습을 만들어 놓은 인형이 있다. 입구에서 나눠주는 오디오 가이드기기를 들고 이 앞에서 누르면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그림 속 주인공인 교황 인노첸시오 10세를 배출하는 등 중세 로마의 유력 세력이었던 팜필리 가문은 중세 시대 숱한 화제를 뿌린 결혼식 때문에 지금의 미술관 건물을 지었다.

인노첸시오 10세가 아끼던 조카 카밀로 팜필라 추기경은 교황 클레멘트 8세의 조카딸게 한 눈에 반해 1647년 성직을 떠나 결혼했다.

 

당시 로마에 엄청난 스캔들을 뿌리며 결혼한 두 사람은 부인이 유복한 상속녀인 덕분에 1654년 지금의 미술관 건물을 새로 지어 이 곳에 살았다.

팜필리 가문의 후손들은 지금도 이 건물에 살고 있다.

 

[팜필리 궁전 복도 양 옆으로 빽빽히 걸려 있는 그림들. 높다란 천장에 그려진 아름다운 장식부터 모든 것이 입이 딱 벌어지게 만든다.]

 

이 곳에는 '이집트 피난길의 휴식' '막달라 마리아의 참회' '세례 요한' 등 여러 편의 카라바조 그림들이 걸려 있다.

'이집트 피난길의 휴식'은 카라바조가 가장 행복했던 시기에 그린 그림이다.

 

그는 프란체스코 마리아 델 몬테 추기경의 도움으로 그림을 팔아 유명해지면서 빈곤에서 벗어나게 됐는데 이때받은 가정의 안락함을 그림속 성모 마리아와 남편 요셉, 아기 예수 등 성 가족을 통해 표현했다.

 

[도리아 팜필리 궁전의 조각과 장식이 아름다운 복도. 이 복도와 방들을 지나며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막달라 마리아의 참회'도 어깨에서 살짝 흘러 내리는 옷, 부른 듯한 배를 감싸안듯 포갠 손 등 사실적인 묘사들 때문에 당시 논란이 된 작품이다.

 

도리아 팜필리 궁전에만 두 점이 있는 카라바조의 '세례 요한'은 사연이 많은 그림이다.

1952년 세계 최고의 카라바조 전문가로 꼽히는 영국의 데니스 마혼이 캄피돌리오 광장의 로마 시청사 시장실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카라바조의 그림 '세례 요한'을 발견했다.

 

당시 팜필리 궁전에 같은 그림이 걸려 있어서 마혼이 발견한 그림은 복사본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마혼은 끝까지 진품이라고 주장했으나 진위 여부를 가리지 못했다.

 

그로부터 30여년 뒤인 1989년, 적외선 촬영기와 가스크로마토그래프 등의 첨단 기술을 이용한 결과 놀랍게도 마혼의 그림이 진품으로 확인됐다.

결과적으로 팜필리 궁전의 그림은 복사본이었다.

 

[도리아 팜필리 궁전의 미술관 안쪽 방. 복도는 모두 에어컨이 꺼져 있어 더운데 이 곳은 천장이 높고 선풍기를 틀어 놓아 그나마 시원하다. 소녀들의 눈길이 머무는 곳에 바로 카라바조의 '막달라 마리아의 참회'가 걸려 있다.]

 

도리아 팜필리 궁전의 입장료는 11유로이며, 입장시 묵직한 오디오 가이드 기기를 준다.

이 기기는 해당 그림 앞에 서서 번호를 누르면 영어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아쉽게도 우리말 설명은 들어 있지 않다.

참고로 미술 교과서 등에 소개된 벨라스케스의 '교황 인노센치오 10세'는 벨라스케스의 그림만 따로 모아 놓은 '벨라스케스 방'에서 볼 수 있다.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Chiesa di San Luigi dei Francesi)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은 나보나 광장에서 가깝다.]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은 제 7차 십자군 원정을 이끈 프랑스의 왕 루이 9세를 기념해 건립됐다.

이 성당이 유명한 이유는 카라바조가 남긴 3편의 그림 '성 마태오 연작' 때문이다.

 

성당 안쪽의 제단을 향해 다가가서 왼편을 보면 성 마태오를 소재로 그린 카라바조의 그림 3점이 나란히 걸려 있다.

성 마태오는 성경의 마태복음을 쓴 성인으로, 예수의 제자가 되기 전 이름이 레위였다.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 내부. 중앙 제단을 바라보고 섰을 때 왼편에 카라바조의 ' 성 마태오' 연작이 있다.]

 

3점의 그림은 맨 왼쪽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원래 성 마태오는 로마를 위해 세금을 걷던 관리였다.

 

유난히 재물욕이 강했던 그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금을 걷어 악명이 높았다.

그림 속에서 그는 화려한 복장을 한 채 돈을 세고 있는데, 왠 남자가 들어와 따라오라며 지목한다.

 

바로 손을 뻗어 "나를 따르라"며 마태오를 가리킨 인물이 예수이며, 그를 가리고 선 사람은 제자 베드로다.

그림 속에서 마태오는 "나 말이냐"며 반문하듯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예수의 지목을 받는 장면을 그린 카라바조의 '성 마태오의 간택'. 위쪽 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온 빛이 자연스럽게 그림 속 빛의 방향과 일치해 마태오를 환하게 비춘다.]

 

이 작품도 카바라조 특유의 사실주의 표현이 강렬하게 살아 있다.

당시 그림들은 무조건 예수를 가운데 그리고 머리 위에 환하게 후광을 표시했는데, 카라바조는 그러지 않았다.

 

거리의 사람처럼 사실감있게 묘사된 예수는 중심이 아닌 어둠 속에 파묻혀 있으며 후광도 없다.

작품의 내용을 모르면 예수라고 짐작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존재감이 미미하다.

 

반면 그림의 중앙에 위치한 마태오는 빛을 강하게 받고 있다.

여기서도 어둠과 빛의 극명한 대조를 통해 그림의 주제를 부각시킨 카라바조의 테네브리즘이 또렷하게 살아 있다.

 

놀라운 것은 그림 속 빛의 방향을 따라가다 보면 성당의 창을 통해서 쏟아져 들어오는 빛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림 속 빛이 실제 공간의 빛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작품 속 공간의 확장이 일어나는 것이다.

 

어둠 속 존재나 마찬가지인 세리였던 마태오는 예수를 만나 진리의 빛 속으로 걸어 나오게 된다.

가운데 그림은 문맹이었던 마태오가 천사의 인도를 받아 복음서를 쓰는 장면이다.

 

 

[카라바조의 '성 마태오' 연작 가운데 중심인 '마태오와 천사'. 사람들이 없으면 그림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깜깜할 수 있는데, 이때 주변에 동전 넣는 통에 동전을 넣으면 불이 들어온다. 일부 성당들은 동전을 넣어야만 전등이 켜져 그림을 볼 수 있는 장치를 해놓은 곳이 있다.]

 

원래 카라바조는 이 그림을 쭈글쭈글하고 초라한 노인이 비스듬히 앉아 펜을 서툴게 잡고 글씨를 쓰는 식으로 그렸는데, 당시 교단이 마태오를 너무 볼품없게 그렸다며 거절해 지금처럼 다시 그렸다.

오른편 그림은 마태오의 최후를 담았다.

 

에티오피아에서 선교를 하던 마태오는 칼에 찔려 순교했다.

그림 속 마태오는 십자가 모양처럼 팔을 벌린 채 바닥에 쓰러져 있고 구름 위 천사가 순교를 의미하는 종려나무를 건네주고 있다.

 

그 뒤로 왼편 군중들 틈에 섞여 무서운 살인현장을 숨어서 지켜보는 수염 난 남자가 있는데, 바로 카라바조다.

유독 죽음의 순간에 집착했던 카라바조는 이 그림에서도 광기와 공포의 순간을 빛과 어둠을 통해 강렬하게 묘사했다.

 

[카라바조의 '성 마태오' 연작 가운데 마지막인 '성 마태오의 순교'. 칼로 내려칠 듯한 공포의 순간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성 마태오의 간택'과 마찬가지로 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온 빛이 마태오를 향한다.]

카라바조
질 랑베르 저/문경자 역
로마 걷기여행
존 포트,레이첼 피어시 공저/정현진 역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예스24 | 애드온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