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여행

보르게세 미술관의 카라바조

울프팩 2016. 8. 27. 17:00

보르게세 공원은 로마의 센트럴파크 같은 곳이다.

로마인들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즐겨 찾는 곳으로 꽤 큰 개방 공원이다.

 

17세기초 중세 이탈리아의 유력 집안인 보르게세 가문에서 사들인 부지 위에 시피오네 보르게세 추기경이 공원을 조성했다.

공원 한 복판에 가문에서 지은 건물이 있는데, 이 곳이 바로 요즘 미술관으로 쓰이는 보르게세 미술관(Galleria Borghese)이다.

 

[보르게세 공원 한 복판에 위치한 보르게세 미술관. 과거 보르게세 가문이 배출한 추기경의 별장이었다.]

 

1615년 네델란드 건축가 산텐이 보르게세 추기경의 별장으로 세운 이 건물은 1891년 가문의 파산으로 문을 닫게 됐다.

그러나 정부에서 여기 보관됐던 예술품과 함께 이 건물을 사들여 1901년 미술관으로 바꿔 일반에 공개했다.
 
건물은 그리 크지 않지만 600점의 예술품을 보관하고 있다.

여기에 바로 카라바조를 비롯해 보티첼리, 베르니니, 티치아노 등 대단한 예술가들의 작품이 들어 있다.

 

[미술관의 내부 장식 등이 아주 호화롭다.]

 

특이한 것은 매일 입장객 숫자를 제한하는 점이다.

사전 예약을 통해 2시간 동안 300명만 입장시킨다.

 

따라서 멋모르고 갔다가 허탕치고 돌아서지 않으려면 인터넷이나 전화를 통해 미리 예약하고 가는 게 좋다.

이 곳은 그림도 그림이지만 조각품들이 아주 뛰어나다.

 

말로만 듣던 안토니오 카노바, 베르니니 등의 걸작들이 모두 이 곳에 소장돼 있다.

더불어 카라바조의 그림도 여러 점 걸려 있으니 그의 작품을 좋아한다면 놓치지 힘든 곳이다.

 

[안토니오 카노바의 걸작 조각품 '파올리나 보르게세'. 보르게세 가문으로 시집 간 나폴레옹의 조카를 비너스처럼 묘사했다. 당장 흘러내릴듯 부드럽게 묘사된 천의 주름 등을 보면 대리석이라는게 믿기지 않는다.]

 

그 중에서 눈여겨 볼 만한 것이 베르니니의 명작 조각품 '아폴로와 다프네'이다.

이 작품은 에로스와 아폴로, 요정 다프네가 얽힌 로마 신화를 다뤘다.

 

사랑의 신 에로스가 활 실력을 놀린 아폴로에게 화가 나 처음 본 여자에게 사랑에 빠지도록 만드는 금화살을 쏜다.

반대로 요정 다프네에게는 상대를 미워하게 만드는 납 화살을 쏴서 아폴로와 다프네가 쫓고 쫓기게 만든다.

 

아폴로에게 잡힌 다프네는 아버지인 강의 신 페네오스에게 아폴로에게서 벗어날 수 있도록 아름다움을 거두어 달라고 요청한다.

이에 페네오스는 아폴로가 딸을 잡는 순간 월계수로 만들어 버린다.

 

조각은 이 절정의 순간을 절묘하게 묘사했다.

특히 조각의 옆으로 돌아가보면 아폴로의 손에 살짝 눌린 다프네의 피부까지 그대로 재현해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를 보는 것 같다.

[베르니니의 명작 '아폴로와 다프네'. 하얗게 빛을 반사하는 대리석의 매끄러운 표면과 다프네의 섬세한 곡선이 잘 어울린다.]

 

베르니니의 또다른 조각 작품 중에 '플루토와 페르세포네'를 빼놓을 수 없다.

제우스의 형제인 플루토는 지하세계인 지옥을 다스리는 하데스의 다른 이름이다.

 

플루토늄의 유래이기도 한 그는 아폴로처럼 에로스의 화살을 맞고 한 눈에 반한 페르세포네를 납치해 지옥으로 사라졌다.

페르세포네는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의 딸이다.

 

[베르니니의 걸작 조각품 '플루토와 페르세포네'. 플루토의 강한 손가락이 파고든 페르세포네의 허벅지와 옆구리까지 살아 있는 것처럼 묘사했다. 그 아래 지옥의 파수꾼인 머리 셋 달린 개 케르베로스가 앉아 있다.]

 

딸을 잃은 데메테르는 비탄의 잠겨 헤메다니다가 플루토와 타협해 딸을 되찾았다.

그 타협안이란 1년의 절반을 데메테르와 보내고 나머지 절반을 플루토와 지내는 것이다.

 

이는 곧 씨앗의 발아를 의미하기도 한다.

땅 속에 묻혀 있다가 봄을 맞아 대지를 뚫고 땅 위로 움트는 씨앗의 은유다.

 

[베르니니의 작품 '아이네이아스'. 아프로디테 여신과 안키세스의 아들인 아이네이아스는 트로이의 용사로, 프리아모스왕의 딸 크레우사와 결혼해 아들 아스카니우스를 낳았다. 트로이 멸망 때 용감히 싸웠으나 패전의 위기에 몰리자 유민들을 데리고 탈출했다. 이 조각은 신상을 손에 든 아버지 안키세스를 어깨에 얹고 아들 아스카니우스를 뒤에 걸린 채 탈출하는 장면을 묘사했다. 아이네이아스는 유민들을 데리고 지중해를 떠돌다가 이탈리아 라티움 지방에 정착해 로마의 시원이 되는 국가를 세웠다.]

 

베르니니 조각과 함께 보르게세 미술관을 빛내는 작품은 바로 카라바조의 그림들이다.

이 곳에는 카라바조가 그린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성 모자와 안나' '성 세례 요한' '글을 쓰는 성 히에로니무스' 등 여러 작품이 걸려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작품은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이다.

다윗이 돌팔매로 쓰러진 골리앗의 머리를 잘라 들고 있는 이 그림은 배경을 어둠 속에 파 묻고 두 주인공만 환한 빛 속에 노출시켜 강렬한 인상을 준다.

 

[보르게세 미술관에서 가장 유명한 카라바조의 그림 '골리앗의 잘린 머리를 든 다윗'. 다윗과 골리앗의 얼굴이 묘하게 닮았는데, 모두 카라바조 자신의 얼굴을 바탕으로 그렸다. 다윗은 젊은 시절, 골리앗은 그림을 그릴 당시 얼굴이다.]

 

'성 모자와 성 안나'는 카라바조의 명성을 드높이면서 동시에 논란을 불러 일으킨 작품이다.

당시 교황 바오로 5세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 걸만한 그림을 카라바조에게 의뢰해 이 작품을 받았다.

 

그러나 카라바조가 심혈을 기울여 그린 이 그림은 베드로 대성당에 걸자마자 성직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아 철거됐다.

그림 속 성모 마리아, 아기 예수, 성 안나를 너무 평범한 여인네와 아이로 그려 신성을 모독했다는 이유였다.

 

[카라바조의 명성을 드높이면서 논란을 불러 일으킨 작품 '성 모자와 성 안나'.]

 

결국 베드로 대성당에서 철거된 이 그림은 카라바조의 옹호자이자 교황의 친척이었던 보르게세 추기경이 가져갔다.

성직자들이 신성 모독이라고 느낀 것들은 젖가슴의 윗부분을 거의 드러내다시피한 성모 마리아의 모습과 당시 로마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파처럼 그린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인 성 안나, 사타구니를 그대로 드러내고 머리 위에 후광도 없는 아기 예수 등이다.

 

그러나 이 그림은 당시 개신교의 거센 공격을 받던 천주교를 옹호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성모 마리아의 도움을 받아 사악한 뱀을 물리치는 아기 예수를 통해 천주교에서 중요하게 부각하는 성모의 존재를 강조했다.

 

[카라바조의 '성 히에로니무스'.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에 걸린 '마테오와 천사' 속 노인과 비슷하다.]

 

'성 히에로니무스'는 카라바조 그림 가운데 얌전한 편에 속한다.

칠흙같은 어둠 속에 고독하게 앉아 성서를 번역하는 히에로니무스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렸다.

 

히에로니무스는 암브로시우스, 그레고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와 함께 4대 교부로 꼽히는 인물이다.

영어로 제롬이라고 부르는 그는 달마티아, 즉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 일대에서 태어났다.

 

교황 다마소 1세의 비서로 있다가 교황 사후 베들레헴으로 가서 학문에 정진해 많은 저서를 집필했다.

특히 70인역성서를 그리스어로 옮겼고 라틴어 번역본인 불가타 성서를 처음 개정해 유명하다.

 

[젊은 시절의 세례 요한을 그린 카라바조의 '성 세례 요한'.]

카라바조
질 랑베르 저/문경자 역
로마 걷기여행
존 포트,레이첼 피어시 공저/정현진 역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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