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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변화-판테온 &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

울프팩 2016. 7. 31. 23:27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과 판테온은 로마 제국 시대와 확연하게 달라진 로마의 모습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판테온이 제국 시대의 황혼이라면 비토리아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은 새로운 이탈리아의 출발이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Monumento di Vittorio Emmanuele)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은 이탈리아 통일에 관련된 자료를 보관하고 있다.]

 

포로 로마노를 둘러보고 빠져 나오면 온통 하얀색의 거대한 건물을 보게 된다.

바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이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는 이탈리아를 처음으로 통일한 왕이다.

1849년부터 1861년까지 피에몬테, 사보이아, 사르데냐 왕국을 다르셨던 그는 당시 거대 제국이었던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벌여 이탈리아 통일의 기틀을 마련했다.

 

1849년 그의 아버지인 카를로 알베르토가 오스트리아에 패해 물러난 뒤 사르데냐왕이 된 그는 아버지가 도입한 입헌 군주제를 유지하며 통일을 위한 준비를 했다.

카부르를 재상으로 등용해 선정을 베풀고 프랑스, 영국 등과 외교 협상을 벌여 오스트리아에 대항했다.

 

[기념관 앞에 우뚝 선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청동 기마상.]

 

그가 북쪽을 하나로 만드는 동안 남쪽에서는 유명한 가리발디가 의용군을 조직해 남쪽을 하나로 합쳤다.

가리발디는 나폴리와 시칠리아를 점령했으나 사르데냐의 도움없이 마지막 카푸아와 가에타 요새를 함락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에 에마누엘레 2세는 가리발디와 협상을 벌여 남부의 통치권까지 아우른다.

가리발디는 이탈리아의 통일을 에마누엘레 2세에게 맡기고 카프레라 섬으로 물러갔다.

 

에마누엘레 2세는 나폴리 정복을 계기로 베네치아를 제외한 이탈리아 전역을 통일하며 1861년 초대 이탈리아 왕이 됐다.

이후 그는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벌여 오스트리아 영토였던 베네치아 마저 함락시키며 완전 통일을 이룬 뒤 1871년 로마를 통일 이탈리아의 수도로 선포했다.

 

[기념관을 오르는 정면 계단 중간쯤에 위치한 조국의 제단. 앞쪽에 꺼지지 않는 불이 있고 두 명의 병사가 보초를 서고 있다.]

 

1878년 에마누엘레 2세가 죽은 뒤 이탈리아 정부는 그의 업적을 기려 기념관을 짓기로 했다.

이후 공모전을 거쳐 당선된 젊은 건축가 주세페 사코니(Giuseppe Sacconi)의 설계를 토대로 1885년 공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사코니는 완공을 보지 못하고 1905년 눈을 감았고 사후 1911년 건물이 완공됐다.

건물을 장식한 조각상들까지 완료된 시점은 1935년으로, 40년 이상 공사를 한 셈이다.

 

이탈리아인들이 비토리아노(vittoriano)라고 부르는 이 건물의 계단을 오르면 두 명의 보초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을 지키는 조국의 제단이 나온다.

제 1차 세계대전때 전사한 무명용사들을 위한 이 곳은 참전 용사들의 건의로 1921년 설치됐는데, 이탈리아 사람들이 경건하게 여기는 곳인 만큼 담배를 피고 음식을 먹거나 계단에 주저 앉으면 안된다.

 

[건물 꼭대기에 4마리 말이 끄는 개선마차를 탄 빅토리아 여신상이 서 있다.]

 

건물 꼭대기에는 양 끝에 4마리 말이 끄는 개선마차를 탄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 상이 있다.

각 상 아래 쪽에 조국의 통일(patriae unitati), 시민들의 자유(civium libertati)라는 글이 각각 새겨져 있다.

 

건물 앞에 서 있는 거대한 청동 기마상의 주인공이 바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다.

꽤 거대한 청동상으로, 완공 후 말의 배 속에서 조각가와 주물공들이 기념 식사를 할 정도로 크다.

 

[거대한 청동 기마상은 아래 서 있는 사람과 비교해 보면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완공 후 이탈리아 내에서는 이 건물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셌다.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직사각형의 거대한 흰색 건물 모양 때문에 웨딩케이크라고 조롱을 받았으며 미국인들마저 1944년 타자기를 닮았다고 타이프라이터라는 별명을 붙였다.

 

이 건물이 하얀 이유는 북부 이탈리아의 브레샤에서 나온 하얀 돌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마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주변 티볼리에서 나오는 트라베르티노(travertine)라는 누런 돌을 사용했다.

 

그렇다 보니 황갈색이 주를 이루는 로마의 기본 색조와 어울리지 않고 이질감을 준다.

여기에 거대한 기념관이 캄피돌리오 언덕을 완전히 가려 비판을 받았다.

 

캄피돌리오 언덕은 3000년간 로마의 구심점 역할을 한 역사적인 곳이다.

고대 로마시절 승리한 장군들이 개선식을 할 때 향했던 곳이 바로 캄피돌리오 언덕이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도 통일 후 로마의 북쪽에서 캄피돌리오 언덕을 향해 입성했다.

뿐만 아니라 기념관이 들어서기 위해 언덕 주변의 역사적 건물들을 철거했는데 이때 미켈란젤로가 살았던 집도 헐렸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에서 내려다 본 베네치아 광장. 오른편 황색 건물이 베네치아 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정부가 이 곳에 기념관을 세운 것은 첸트로 스토리코(centro storico)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첸트로 스토리코란 역사의 중심이란 뜻으로 성벽 안에 옛 건물과 시가지가 그대로 보존된 역사적인 곳이다.

 

그래서 무솔리니는 건물 앞 베네치아 궁의 발코니에서 베네치아 광장에 모인 군중들을 내려다보며 제 2차 세계대전 참전을 비롯한 각종 연설을 했다.

베네치아 궁은 과거 베네치아 공화국의 대표부 건물이었다.

 

판테온(Pantheon)

 

[판테온 광장. 판테온 앞 분수 위에 오벨리스크가 서 있다.]

 

작은 광장 앞에 우뚝 버티고 선 판테온은 모양부터가 기묘하다.

12.5미터 높이의 기둥이 떠받든 4각형의 현관을 지나면 로마제국시절부터 2,000년 이상 버텨온 육중한 청동 문을 만날 수 있다.

 

이 문 뒤에 거대한 돔이 뒤덮은 둥근 건물이 있다.

판테온은 그리스어로 신을 뜻하는 테오스(theos)와 모두라는 뜻의 판(pan), 건물이나 장소를 의미하는 (on)이 합쳐서 모든 신이 있는 곳, 즉 만신전을 의미한다.

 

[브루넬레스키는 판테온의 돔 건축 방식을 보고 피렌체 대성당의 돔을 설계했다.]

 

처음 건물을 만든 사람은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아들 마르쿠스 아그리파다.

그는 세 번째 집정관을 하던 때인 기원전 25년 쥬피터 신과 아우구스투스에게 바치기 위해 이 건물을 지었다.

 

당시 건물은 지금과 달리 육면체였고 율리아 가문의 수호신인 일곱행성의 신상들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수 차례 화재로 건물이 전소된 뒤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118~125년 사이에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세웠다.

 

[판테온 내부의 돔 천장. 로마 시대에는 격자마다 청동 별이 붙어 있었다.]

 

 

내부 높이 43미터, 벽의 두께가 6미터인 이 거대한 건물은 창이 없고 돔 천장에 뚫린 9미터 지름의 구멍을 통해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구조다.

내부에서 제사를 지낼 때 연기를 배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 구멍은 우주의 중심인 태양을 상징하며 눈이라는 뜻의 오쿨루스(oculus)라고 부른다.

 

둥그스름한 돔은 우주를 상징한다.

그래서 로마 시대에는 돔 내부를 장식한 각 격자마다 청동 별이 박혀 있었고 멀리서 보면 태양처럼 보이도록 돔 외부를 금박으로 뒤덮었다.

 

[지금은 성당으로 바뀐 판테온. 돔은 위로 갈수록 더 가벼운 재료를 사용했다. 돔이 밖으로 벌어지려는 힘을 외부의 두터운 원통형 벽체인 로툰다가 받치도록 설계됐다.]

 

그러나 로마제국 황제들을 위한 신전 겸 로마제국 1인자의 권력을 상징하는 장소였던 이 곳은 동로마제국 황제였던 포카스가 608년 교황 보나파치우스 4세에게 기증한 뒤 순교자들의 성모마리아 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ad Martyres)으로 바뀌었다.

특히 교황 우르바노 8세는 1624년 젊은 건축가 베르니니에게 베드로 대성당 건립을 맡기면서 베드로 무덤을 덮는 제단 발다카노를 만들기 위해 판테온의 청동문을 제외한 청동별과 청동 장식품을 모조리 떼어내 녹여 버렸다.

 

이때 금박도 모두 제거됐다고 한다.

더불어 이 곳은 유명 인사들의 무덤이기도 하다.

 

[판테온 한 켠에 위치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의 무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화가 라파엘로와 카라치가 묻혔고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와 그의 아들 움베르토 1세도 여기에 잠들었다.

지금도 판테온에서는 카톨릭 미사가 집전된다.

 

[판테온에서 나와서 오른편에 위치한 via degli orfani 골목으로 들어가면 로마의 3대 카페 중 하나로 꼽히는 유명한 타짜 도로(tazza d'oro)를 만날 수 있다. 1946년 마리오 피노게토가 개점한 이 곳은 아라비카 원두를 라 레지나 데이 카페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블렌딩해서 판매한다. 출입문 옆에 보이는 자판기는 독특하게도 원두 자판기다.]

[타짜 도로 건너편에 유명한 초콜릿 전문점 벤치(venchi)가 있다. 초콜릿과 각종 아이스크림을 판매한다. 로마는 많은 상점들이 에어컨을 세게 틀지 않는데 이 곳은 에어컨을 시원하게 틀어서 쉬어가기 좋다.]

[판테온 앞 오벨리스크가 있는 분수. 그 뒤편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타짜 도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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