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프라노'라는 극찬을 들었던 세계적 성악가 마리아 칼라스는 생전에 영화에 주연 배우로 출연한 적이 있다.
그 작품이 바로 거장이자 문제작을 많이 만들어 유명한 파올로 파졸리니 감독의 '메데아'(Medea, 1970년)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비극의 주인공 메데아는 악녀 또는 마녀로 통한다.
콜키스왕국의 공주였던 메데아는 나라의 보물인 황금양털을 가지러 온 이아손에게 반해서 황금양털을 내어준 것도 모자라, 이아손과 달아나면서 동생을 죽여 시신을 찢은 뒤 조각조각 길에 버린다.
추격에 나선 아버지인 왕이 시신을 수습하느라 늦어지게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아손은 메데아와 두 아들을 낳고도, 권력에 눈이 멀어 왕좌를 노리고 코린트왕의 딸과 결혼을 약속한다.
이에 격분한 메데아는 마법의 주문을 건 옷을 공주에게 선물해 왕과 함께 태워죽이고, 이아손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자기가 낳은 두 아들마저 죽여버린다.
이후 메데아는 아테네왕 아이게우스와 결혼했고, 숨겨진 아들 테세우스가 아버지를 찾아오자 독살하려다가 실패한 뒤 아들인 메도스와 함께 달아난다.
워낙 강렬한 내용인 만큼 이 작품은 이탈리아 작곡가인 케루비니가 1797년에 오페라로 만들었다.
당시에는 인기가 있었으나 이후 완전히 묻혀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이 오페라를 다시 되살린 주인공이 바로 마리아 칼라스였다.
칼라스는 1950년대 레너드 번슈타인 지휘로 공연한 초연에서 분노와 광기에 사로잡힌 메데아 역을 처절하게 연기해 호평을 받았고, 이후 툴리오 세라핀 지휘로 연주한 공연에서도 완벽한 연기와 노래로 극찬을 받았다.
그 바람에 메데아는 곧 마리아 칼라스로 인식됐다.
여기에는 메데아처럼 강하고 불 같은 칼라스의 실제 성격도 한 몫했다.
실제로 칼라스의 생애도 메데아 못지 않게 드라마틱하다.
그리스계였던 칼라스는 그리스의 거부 메네기니와 결혼했으나 돈만 밝히던 메네기니에게 정을 붙이지 못하고, 우연히 파티에서 만난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에게 홀딱 빠져 버렸다.
결국 오나시스와 사랑에 빠지지만 정작 바람둥이였던 오나시스는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미망인인 재클린 케네디와 결혼을 했다.
두 사람의 만남을 전혀 몰랐던 칼라스는 아기도 유산하고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세상사에 염증을 느낀 칼라스는 1965년 오페라 '토스카' 공연을 끝으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감독과 잉크병을 던지고 욕을 할 정도로 대판 싸운 뒤 42세의 한창 나이에 돌연 은퇴를 하고 은둔 생활에 들어갔다.
그런 그를 세상에 끌어낸 것이 바로 파졸리니 감독이다.
오페라에서 완벽한 메데아를 선보인 칼라스는 영화에서도 광기와 분노에 사로잡힌 메데아를 온 몸으로 연기한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그의 눈빛과 표정은 메데아의 재래를 보는 것 같다.
영화는 대사가 거의 없고 황량한 그리스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달한다.
신화와 고전에 집착했던 파졸리니는 이 작품에서 최대한 절제된 대사와 특유의 충격적이고 잔혹한 영상으로 비극미를 재현했다.
대사가 거의 없는 만큼 메데아 이야기를 모른다면 내용 이해가 어려울 수도 있다.
파졸리니 감독의 유명세나 스토리, 영상보다 배우가 된 전설의 칼라스를 볼 수 있는 점이 반가운 작품이다.
국내 출시된 DVD 타이틀은 16 대 9 와이드 스크린이다.
화질은 비디오테이프를 복제한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만큼 조악하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2.0 채널을 지원하며 부록은 전혀 없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이아손은 반인반마인 켄타우로스 족의 현자 케이론이 양육한다.
메데아를 연기한 마리아 칼라스. 그는 이 작품 출연 이후 줄리어드 음대에서 마스터 클래스를 지도했고, 1973년과 74년 유럽 및 아시아 순회 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면 장애와 우울증으로 고생하다가 1977년 돌연 사망했다. 사인은 심장마비로 발표됐으나 의사들은 약물 과다복용에 따른 폐색전증을 의심했다. 향년 54세.
메데아의 마법 의식을 보여주는 장면은 사람을 죽인 뒤 시체를 토막내 작물에 피를 뿌리는 등 잔혹하다.
그리스 신화에서 이아손이 훔치는 황금양털. 전혀 고귀해 보이지 않는다.
메데아는 동생을 죽여 시체를 조각 내 흩뿌린다. 아버지가 이를 수습하는 동안 달아나기 위해서다.
메데아가 마법의 옷을 선물해 왕과 딸을 죽이는 장소인 코린트 왕국.
칼라스는 1951년까지 체중이 95kg에 이를 만큼 비대해 자신감을 많이 잃었는데 혹독한 다이어트와 촌충을 제거하고 1954년 날씬한 몸매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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