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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만한 DVD / 블루레이

록키4 (블루레이)

울프팩 2012. 3. 6. 23:37

실베스터 스탤론이 극본을 쓰고 감독, 주연한 영화 '록키4'(Rocky 4, 1985년)는 권투에 반공과 냉전 논리를 끌어들인 황당한 작품이다.
2미터 가까운 무적의 구 소련 선수와 혈투를 벌이는 이야기는 흥미진진하지만 내재된 논리는 황당하고 유치하다.

하지만 이는 스탤론 한 사람만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당시 시대적 분위기가 그랬다.
이 영화가 미국서 개봉한 1985년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신 냉전논리가 최고에 이른 때였다.

1984년 미국 LA에서 열린 제 23회 올림픽은 미국이 보이콧한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 대한 보복으로 구 소련과 동구권, 북한 등 사회주의 국가들이 무더기로 불참하며 반쪽짜리 대회가 됐다.
이런 상황에서 레이건 행정부는 소위 '스타워즈'로 통하는 전략방위구상(SDI)을 밀어붙이며 소련과 우주에서 군사대결을 벌이게 된다.

여기에 미국은 세계의 경찰을 자임하며 각 지역 분쟁에 개입해 군사력으로 평화를 유지하려는 팍스 아메리카나를 추진한다.
그만큼 80년대 중반 미국은 강한 국가와 냉전 논리를 부추기는 애국주의가 팽배했다.

이런 상황에서 '람보2'나 '록키4' 같은 냉전 논리로 무장한 영화가 쏟아져 나온 것은 당연한 결과다.
그렇다보니 영화 속 소련 선수는 무조건 깨부셔야 할 냉혈한으로 묘사됐고, 성조기를 휘감은 채 환호하는 록키의 승리는 개인의 승리가 아닌 미국의 승리였다.

미국인들의 애국심에 편승한 덕에 미국서는 대박이 났다.
하지만 2년 늦은 1987년 7월 개봉한 국내에서는 흥행에 실패했다.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 또한 냉전 논리 때문이었다.
국내 수입배급사는 미국 개봉 이듬해인 1986년 이 작품의 수입을 추진했다.

그러나 극중 적성 국가인 소련 국가가 울려 퍼진다는 이유로 수입이 금지됐다.
당시 영화계는 강력 반발했으나 서슬퍼런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인지라 통하지가 않았다.

할 수 없이 소련 국가 장면을 삭제한 채 1987년 수입 심의를 재차 추진했고 그제사 겨우 통과됐다.
하지만 당시에는 불법 복제 비디오테이프가 돌던 시절인지라, 이미 개봉 전에 '록키4'는 비디오대여점을 통해 꽤나 많은 사람들이 봤고, 결국 흥행 실패로 이어지고 말았다.

그만큼 국내에서는 비운의 작품이지만 냉전 논리를 걷어내고보면 시리즈 사상 최고의 강적인 드라고(돌프 룬드그렌)와의 대결이 꽤 흥미로운 영화다.
지금은 영화 속 냉전논리가 오히려 코미디처럼 보이니, 격세지감이다.

블루레이 타이틀은 국내에는 아직 나오지 않았고, 한글 자막이 들어간 홍콩판이 출시됐다.
1080p 풀HD의 1.85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는 화질이 그저 그렇다.

입자가 거칠고 전체적으로 뿌연 편.
DTS-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요란하지는 않고 리어에서 적절한 배음이 나온다.

부록은 전무하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영화는 이전 시리즈처럼 전작의 엔딩 부분을 보여주며 이야기가 넘어간다.
상대가 강할 수록 주인공의 승리가 더 값지고 위대해 보인다. 무적의 소련 선수 이반 드라고로 나온 돌프 룬드그렌은 196cm 장신으로, 가라테 유단자다. 그는 나중에 '유니버셜 솔져' '익스펜더블' 등에 출연.
'소울의 신' 제임스 브라운도 극중 가수로 출연해 'Living in America'를 불렀다. 그는 2006년 폐렴으로 73세 나이에 타계했다.
성조기 트렁크를 입은 아폴로(칼 웨더스)가 링 위에서 드라고한테 맞아죽으면서 록키의 복수는 미국의 복수가 된다. 전작의 믹키, 이번 작품의 아폴로 등 록키의 친구들이 계속 죽어나간다.
드라고의 부인으로 출연한 182cm의 모델 겸 배우 브리짓 닐슨은 출연 당시 스탤론의 약혼녀였다. 지난해 밝혀진 황당한 사실은 촬영 당시 브리짓은 결혼을 앞둔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바람을 피운 뜨거운 사이였다. 브리짓은 아놀드에게 속았다고 했지만, 스탤론과 결혼 후에도 아놀드와 계속 만났고 이 바람에 1987년 결혼 2년 만에 스탤론과 이혼했다. 브리짓 닐슨은 5번 이혼하고 6번 결혼했으며 스탤론은 두 번째 남편이었다.
록키는 대결 장소로 모스크바를 지목해 적지에 들어가 혹독한 훈련으로 적을 깨부수는 오만을 부린다. 그만큼 미국인들에게는 후련했을지 모르지만 당시 소련 사람들에게는 불쾌한 일이 아닐까 싶다.
록키 시리즈의 공식 중 하나인 훈련 장면의 대비가 전작들처럼 이 작품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상대는 최신 기술과 장비를 동원해 훈련하고 록키는 열악한 상황에서 훈련을 한다.
이소룡의 윗몸 일으키기로 알려진 환상의 복근강화운동. 영화로는 이 작품에서 스탤론이 처음 선보인다. 나중에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권상우가 흉내낸다.
반면 드라고는 최신 장비와 기술을 동원해 훈련을 하고, 심지어 편법인 근육강화주사까지 맞는다. 그만큼 기저에는 소련 과학 기술에 대한 폄하가 깔려 있다.
삽입곡들이 좋다. 훈련 장면에 나오는 빈스 디콜라의 'Training Montage'와 로버트 텝퍼가 부른 'No Easy Way Out', 서바이버의 'Burning Heart' 등이 줄줄이 히트했다. 특히 조르지오 모로더 풍의 'Training Montage'는 영상과 최고의 조합을 보여줘 훈련 장면을 극적으로 돋보이게 만들었다.
록키의 모델이 척 웨프너라는 미국 권투선수라는 사실이 얼마전 처음 알려졌다. 1960~70년대 헤비급 선수였던 척은 당시 세계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와 붙어 15회까지 버티다가 마지막 19초전 KO패했다. 그는 코가 부러지고 얼굴이 피투성이가 됐는데도 끝까지 싸워 중계를 본 스탤론이 감동해 3일만에 '록키'의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시합전 구 소련 국가인 인터내셔널가가 우렁차게 울려 퍼진다. 나름 인상깊은 장면인데 1987년 국내 극장 개봉 당시 적성국가라는 이유로 삭제됐다.
록키의 혜안인지 모르겠지만, 2000년대 중반 세계 헤비급 챔피언은 이 작품처럼 거구의 구 소련 선수들이 독식했다.
이 작품 같은 일이 실제 일어났다. 유명 복서 에반더 홀리필드가 45세 나이로 2007년 WBO 헤비급 챔피언이던 러시아의 술탄 이브라히모프에게 도전장을 낸 것. 그러나 홀리필드는 32세였던 이브라히모프에게 판정패했다.
록키의 설원 훈련 장면 등은 소련이 아닌 캐나다 밴쿠버에서 촬영.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고르바초프와 닮은 배우가 등장해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극중 고르바초프가 일어나 록키에게 박수를 보내는 장면은 오버의 극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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