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속 5센티미터 (블루레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초속 5센티미터'(2007년)는 시간과 사랑에 대한 애니메이션이다.
시간이 흘러가면 사랑이 변할 수 밖에 없다.

묽어질 수도 있고 진해질 수도 있다.
유지태는 '봄날은 간다'에서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란 대사를 던졌지만, 사랑은 결코 불변이 아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달라질 수 밖에 없는 사랑에 현미경을 들이댔다.
초속 5cm라는 제목처럼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변해가는 사랑을, 시간에 천착하는 구도자처럼 서정적인 그림으로 풀어냈다.

바람에 벚꽃이 흩날리는 속도를 의미하는 제목은 결국 사랑의 변화를 의미한다.
피치못할 사정으로 전학을 가는 남녀는 가슴속에 사랑을 간직하지만 세월이 흘러가면서 그들은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이 된다.

마음과 달리 그렇게 멀어진 그들의 사랑이야기는 그런 점에서 현실적이고 진솔하다.
이를 너무나 사실적인 그림과 서정적인 음악으로 한 편의 시처럼 풀어냈다.

마치 마음의 속도를 보여주듯, 3편의 단편을 옴니버스로 엮어 메타포적인 영상으로만 보여주다보니 별다른 줄거리가 없는 것 처럼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심심하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행간을 읽게 되면 이 작품은 줄마다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더할 수 없이 고운 시가 된다.

이 작품의 블루레이 타이틀을 받아보고 DVD프라임에서 자체 제작하는 블루레이 작업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꾸준히 참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1080p 풀HD의 1.78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우수하다.

섬세한 손그림의 아련한 느낌을 맑은 색감과 우수한 샤프니스로 잘 살려 냈다.
음향은 리니어PCM 4.0을 지원하는데, 잔잔한 음악과 대사 전달 위주여서 충분하다.

부록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인터뷰와 흑백 단편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가 한글자막과 함께 들어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한 편의 수채화처럼 맑고 아름다운 그림을 깨끗한 블루레이 영상으로 만나는 것은 그 자체가 감동이다.

감독은 이 작품을 "여러가지 속도에 관한 영화"라고 이야기했다. 전철과 기차를 타고 연인을 만나러 가는 속도이자, 마음이 전해지고 멀어지는 속도를 그렸다. 이는 곧 두 사람의 마음의 거리를 의미한다.

1970년대 국민학교를 다닐 때 봤던 일본식 책가방을 보니 가슴이 뭉클하다. 유난히 딱딱했던 덮개식 가방은 당시 국민학생들이 많이 메고 다녔다.

폭설로 길이 막혀 오지 않는 애인을 밤새도록 역사에서 기다리는 여인의 그림을 보며,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로 시작하는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라는 시가 떠올랐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 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극중 무대가 된 일본 다네가시마섬의 고교생들은 버스가 잘 다니지 않아 실제로 학교에서 지정해 준 스쿠터를 타고 통학한다. 그만큼 이 영화는 극사실적이다.

감독과 제작진은 신주쿠, 이와후네, 다네가시마 등 작품 속 배경이 된 장소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어 실제처럼 그렸다.

인물은 작화감독인 니시무라 다카요가 그렸고, 섬세한 배경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그렸다. 이 작품에는 유일한 한국인인 문현희씨가 참여했다. 그는 작화를 보조하며 원화를 그렸다.

배경과 인물채색은 포토샵으로 작업했다.

일본 규슈 지방에 위치한 다네가시마섬에는 일본이 우주개발을 위해 1966년 건설한 로켓발사센터가 있다. 1975년 이곳에서 일본 최초의 인공위성인 기쿠가 발사됐다.

이 작품은 빛과 그림자를 기막히게 잘 살렸다. 어른어른 나뭇잎새를 뚫고 들어오는 빛이 만들어내는 무늬를 어찌나 잘 살렸는 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야마자키 마사요시가 부른 주제가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가 어우러진 엔딩은 한 편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