첸 카이거 감독의 '무극'(The Promise, 2005년)은 참으로 망극지통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동양식 판타지를 표방한 이 작품은 시대를 알 수 없는 미지의 국가에서 운명으로 얽힌 4남녀의 엇갈린 사랑과 대결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야기는 경극에 나올법한 중국식 갑옷과 중국어를 사용한다는 것 외에 시대와 역사성, 지역성을 상실한 채 표류한다.
볼거리도 마찬가지다.
황당한 만화 수준의 컴퓨터 그래픽은 실사 촬영과 이질감이 확연하게 드러날 정도로 어색하고 치졸하다.
액션 또한 '와호장룡'의 시원한 와이어 액션, '영웅'과 '연인'에서 본 호쾌한 결투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성에 차지 않을 정도로 단조롭다.
오히려 3류 무협영화만도 못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장동건, 장백지, 사나다 히로유키 등 한, 중, 일 3국의 스타들이 참여했다는 캐스팅과 감독의 유명세 또한 빛을 잃는다.
정말 이 작품이 '패왕별희' '현위의 인생' 등으로 인간관계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준 첸 카이거 감독의 작품이 맞는지 반문하고 싶을 정도다.
DVD 화질과 구성 또한 영화에 걸맞게 기대이하의 수준이다.
2.3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영상은 다소 거칠다.
특히 중경과 원경의 세밀함이 떨어져서 100인치 프로젝터 영상으로 봐도 원경 속 인물의 눈, 코, 입이 또렷하지 않다.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좋다.
여신의 목소리, 소떼의 질주 장면 등을 들어보면 소리의 이동성과 방향감이 좋고 저음 또한 묵직하게 울린다.
부록은 3분가량의 장동건 인터뷰와 5분 가량의 제작과정, 예고편, 갤러리가 전부다.
어쩌면 이런 작품은 부록을 쓸데없이 많이 넣어놓는게 민폐일 수도 있겠다.
그만큼 기대할 게 없기 때문이다.
<파워 DVD 캡처 샷>
영화는 신화처럼 시작한다. 만화같은 영상들을 보면 첸 카이거 감독은 시대와 국적, 정체성을 망각한 장르가 판타지라고 생각하는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사나다 히로유키는 야망에 불타는 대장군으로, 장동건은 그의 노예로 출연.
처음에는 이 여인이 장백지가 맞는 지 의심이 들 정도로 사람이 달라보였다. 진한 눈썹을 밀고 연하게 화장을 하는 등 전반적으로 다른 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했단다.
동양적인 요소라고는 울긋불긋한 중국 특유의 원색이 가득한 색감과 중국어 뿐이다.
사람을 연처럼 매달아 끌고 달리는 장면은 실소를 금치 않을 수 없다.
장동건이 사나다 히로유키를 업고 바람을 일으키며 들판을 달리는 장면과 소떼 질주 장면 등을 보면 컴퓨터 그래픽의 이질감이 확연히 드러난다. 무술도 단조롭기 그지없다. 특히 장동건의 액션연기를 기대했다면 실망하기 십상이다.
이 작품은 개봉 후 자연을 훼손한 작품이라는 뜻하지 않은 비난에 휩쓸렸다.
중국의 절경으로 꼽히는 윈난성 샹그릴라 산상 호수에서 일부 장면을 촬영했는데, 세트용 콘크리트와 철골 구조물 등의 쓰레기를 그냥 방치했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중국 환경보호총국이 조사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