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인태 감독의 '백발마녀전'(白髮魔女傳, 1993년)은 과거 홍콩 영화가 국내에서 한창 인기 있을 때 비디오테이프로 빌려보고 반했던 작품이다.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당시 홍콩 영화라면 의례히 떠올리는 누아르나 무협, 황당한 코미디가 아닌 판타지 영화다.
굳이 따지자면 무협 판타지라고 할 수 있겠지만 무협보다는 안타깝고 슬픈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무술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화려하거나 요란하지 않고 로맨스를 거들기 위한 양념에 가깝다.
우인태 감독도 이 영화는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비극적 사랑이야기라고 강조했다.
내용은 명나라 말기에 유명 무술 일파인 무당파의 후계자 탁일항(장국영)이 밀교에서 암살자처럼 키운 연예상(임청하)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두 사람은 서로 배신하지 않고 믿어주기로 사랑의 약속을 하지만 간교한 밀교 우두머리의 계략에 속은 탁일항은 막판 연예상을 대학살의 배후로 의심하며 흔들린다.
굳게 믿었던 사랑이 흔들리는 순간 연예상은 배신과 분노로 순식간에 백발이 돼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악당이 된다.
그제야 탁일항은 뒤늦은 후회를 하며 백발의 저주에 걸린 연예상을 고치기 위해 수십 년 만에 한 번 핀다는 전설의 꽃을 가지러 설산으로 들어간다.
원작은 1950년대 인기 무협작가였던 양우생의 동명소설이다.
이를 우인태 감독이 미술과 조명을 잘 살린 극적인 영상으로 잘 살려냈다.
우 감독은 어두컴컴한 세트에서 대부분 촬영을 하면서 인물을 환한 조명보다는 한 곳에서 흘러 들어온 빛에 의지해 명암대비를 살리는 렘브란트식 조명으로 찍었다.
그래서 영화 속 인물들은 우수에 젖은 영화 분위기처럼 그늘진 모습으로 등장한다.
더불어 무술 장면은 왕가위 감독이 '열혈남아'에서 선보인 스텝 프린팅 기법을 이용해 촬영했다.
스텝 프린팅은 쉽게 말해 끊어 찍기다.
물 흐르듯 연속된 장면을 찍는 게 아니라 일부러 일부 동작을 건너뛰듯 촬영한 뒤 편집에서 이어 붙여 액션의 거친 느낌을 살렸다.
그래서 액션이 화려하거나 정교하지 않지만 대신 적은 동작으로도 임팩트가 극대화된다.
당시 이 영화의 액션 장면에 반했던 사람들도 바로 이런 우 감독 특유의 영상에 빠져들었다.
더불어 장국영이 직접 작곡하고 부른 주제가 '홍안백발(紅顔白髮)'도 좋았다.
아련하면서도 슬픈 멜로디가 영화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지금은 고인이 된 장국영도 연기를 잘했지만 임청하의 연기는 단연 발군이었다.
특히 그의 싸늘한 눈빛과 귀기 어린 표정이 압권이다.
사실상 임청하의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표정 연기 자체가 호러다.
서양에서 이 작품을 공포물로 분류하는데 그의 연기가 크게 일조했다.
우 감독은 이 작품이 흥행에 성공하면서 할리우드에 진출해 '처키의 신부' '프레디 대 제이슨' 등 공포물을 찍었다.
1990년대 비디오 키드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작품이다.
1080p 풀 HD의 2.3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그저 그렇다.
잡티와 스크래치는 없지만 디테일이 떨어진다.
특히 암부가 많이 묻히고 지글거림이 두드러진다.
그래도 애너모픽도 아닌 과거 DVD 타이틀에 비하면 월등 개선된 화질이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대사가 작게 들린다.
서라운드 효과도 미약한 편.
부록으로 우 감독의 음성해설, 감독 인터뷰, 제작과정, 예고편 등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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