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호 감독의 두 번째 작품 '봄날은 간다'(2001년)를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대사가 있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앞뒤 맥락없이 이 말 한마디만 놓고 보면 다소 낯간지러울 수 있지만 영화 속에서는 사실상 주제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대사다.
꼭 영화가 아니더라도 살면서 사랑에 설레이거나 가슴 아파한 사람들에게는 꽤나 큰 울림으로 다가올 수 있는 말이다.
영화는 한때 화사한 봄날처럼 아름답고 눈부셨던 사랑도 세월과 함께 속절없이 바래져가는 현실을 담담하게 담았다.
그 속에서 사랑에 아파하는 남자의 마음이 때로는 무겁게 때로는 아리게 다가온다.
아무래도 허 감독이 남자이다보니 남자 쪽 시선에서 사랑의 아픔을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만큼 유지태와 얄미운 여자 역을 제대로 해낸 이영애의 연기가 좋았다.
더불어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이다.
강원도 산골마을의 대나무밭과 산사, 그리고 드넓게 출렁이던 보리밭 등 한국에 이런 풍광이 있었던 가 싶을 만큼 우리네 산수를 그림처럼 잘 잡았다.
특히 이 영화는 소리가 보인다.
바람이 대밭을 가만히 흔들고 지나가는 소리, 조용히 눈 내리는 산사에 울리는 풍경 소리, 보리밭을 훑는 바람 소리 등 모든 것이 소리와 어우러진 영상으로 표현된다.
그만큼 공감각적 표현이 탁월한 작품이다.
허 감독이 데뷔작인 '8월의 크리스마스' 이후 3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지만 깊은 내공을 여지없이 보여준 수작이다.
1080p 풀HD의 1.85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괜찮은 편이다.
일부 장면에서 필름 잡티가 보이고, 콘트라스트를 높여 화이트피크가 올라가며 색이 약간 날른 느낌이다.
DTS-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리어에서 대숲을 지나는 바람 소리가 들리는 등 섬세하게 잘 살렸다.
부록으로 감독과 김영진 평론가의 해설, 제작과정, 인터뷰, 뮤직비디오 등이 수록됐다.
이 가운데 음성해설은 블루레이를 위해 새로 녹음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 play 버튼이 붙은 사진은 버튼을 누르시면 예고편 등 동영상이 재생됩니다. *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지금도 유지태가 시니컬한 표정으로 자조하듯 내뱉던 그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대사가 돼버린 저 말은 숱한 패러디를 낳았다. 유지태의 집으로 나온 곳은 서울 부암동의 실제 주민이 사는 집이다. 원래 거주자에게 세를 얻어 주고 빌려서 촬영. 정선 버스터미널 장면은 원래 바깥에서 만나는 장면인데, 안으로 옮겨 찍었다. 당시 이영애가 영화 '선물' 촬영을 하고 와서 피곤한 상태에서 의자에 앉아있던 모습을 허 감독이 보고 연기로 살렸다. 바람이 대밭을 흔드는 장면은 삼척 노곡면 양리마을에서 촬영. 편안하면서도 섬세한 촬영은 김형구 촬영감독의 솜씨다. 허 감독은 음성해설에서 기억해내지 못했지만, 눈 내리는 새벽 풍경소리를 녹음하는 산사 장면은 삼척 노곡면 신흥사에서 찍었다. 이 영화는 김윤아가 번안해 부른 주제가 '봄날은 간다'도 참 좋았다. 이 곡은 마츠토야 유미가 작곡한 일본노래다. 허 감독은 소소한 일상의 풍경을 따뜻하게 담았다. 홍상수 식의 어색하거나 당황스럽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다. 할머니 역의 여배우 백선희는 약 60년 만의 영화출연이었다고 한다. 촬영 당시 고모로 나온 신신애가 부른 '세상은 요지경'이란 노래가 인기였다. 허리가 휘청 꺾일 만큼 격한 포옹이 인상적이다. 그만큼 반가움의 깊이가 묻어난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자주 가는 수색역은 허 감독이 어린 시절 근처에 살아 많이 갔던 곳이란다. 유지태가 "라면 먹고가라"는 이영애의 꼬임에 넘어가 이영애의 집에 들린 뒤 느닷없이 "자고가라"는 유혹을 받는다. 이 장면은 상황도 어색하고 대사도 난망하다. 그럴 수 밖에 없던 것이, 허 감독이 대본없이 "둘이 아무 대사나 해보라"고 던져놓고 찍은 장면이어서 그렇다. 개울물 소리를 녹음하는 장면은 정선 아우라지에서 촬영. 바닷가 장면은 동해 덕산면 맹방해수욕장에서 촬영. 소리하는 노인네를 취재하는 장면은 정선에서 1시간 가량 들어간 한치마을에서 촬영. 허 감독은 사랑의 온도를 두 사람의 거리로 표현했다. 둘이 정말 좋을 때에는 아주 가깝고, 식을 때에는 이영애가 유지태와 멀리 떨어져 있다. 이 앵글이 자주 나온다. 창문 너머 두 사람의 모습을 사선에서 내려다 본 앵글이 이채롭다. 강릉 KBS앞에서 촬영. 허 감독이 강원도를 배경으로 삼은 이유는 두 사람의 영화 속 업무상 소리를 녹음할 만한 곳이 많았기 때문. 얄미운 은수(이영애) 때문에 상우(유지태)의 치졸한 복수가 이해가 간다. 자동차에 난 스크래치 만큼이나 남자의 마음에도 상처가 패인다. 친숙한 사람이 등을 보이는 것처럼 당혹스런 순간이 없다. 그만큼 타자와의 거리감을 만들기 때문. 등을 보이고 집을 나서던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집을 돌아보던 순간은 수구초심이 느껴져 가슴이 뭉클하다. 창문가에 잠깐 얼굴이 보이는 여인은 MBC 기상캐스터 출신 안혜경이다. 기상캐스터가 되기 전 이 작품에 엑스트라처럼 잠깐 출연했다. 창문너머 벚꽃이 눈처럼 피어 있는 풍광이 인상적인 이 곳은 홍대 근처 카페다. 두 사람의 사랑이 꽃잎처럼 지던 이 장면은 참으로 안타까웠다. 원래 허 감독은 이영애가 서 있고 유지태가 떠나는 장면 등 2가지 버전을 찍었으나 영화에는 이영애의 뒷모습을 담았다. 막판 보리밭 장면은 전남 강진만 가우도 인근에서 찍었다. 바람에 일렁이는 보리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앞뒤 맥락없이 이 말 한마디만 놓고 보면 다소 낯간지러울 수 있지만 영화 속에서는 사실상 주제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대사다.
꼭 영화가 아니더라도 살면서 사랑에 설레이거나 가슴 아파한 사람들에게는 꽤나 큰 울림으로 다가올 수 있는 말이다.
영화는 한때 화사한 봄날처럼 아름답고 눈부셨던 사랑도 세월과 함께 속절없이 바래져가는 현실을 담담하게 담았다.
그 속에서 사랑에 아파하는 남자의 마음이 때로는 무겁게 때로는 아리게 다가온다.
아무래도 허 감독이 남자이다보니 남자 쪽 시선에서 사랑의 아픔을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만큼 유지태와 얄미운 여자 역을 제대로 해낸 이영애의 연기가 좋았다.
더불어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이다.
강원도 산골마을의 대나무밭과 산사, 그리고 드넓게 출렁이던 보리밭 등 한국에 이런 풍광이 있었던 가 싶을 만큼 우리네 산수를 그림처럼 잘 잡았다.
특히 이 영화는 소리가 보인다.
바람이 대밭을 가만히 흔들고 지나가는 소리, 조용히 눈 내리는 산사에 울리는 풍경 소리, 보리밭을 훑는 바람 소리 등 모든 것이 소리와 어우러진 영상으로 표현된다.
그만큼 공감각적 표현이 탁월한 작품이다.
허 감독이 데뷔작인 '8월의 크리스마스' 이후 3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지만 깊은 내공을 여지없이 보여준 수작이다.
1080p 풀HD의 1.85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괜찮은 편이다.
일부 장면에서 필름 잡티가 보이고, 콘트라스트를 높여 화이트피크가 올라가며 색이 약간 날른 느낌이다.
DTS-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리어에서 대숲을 지나는 바람 소리가 들리는 등 섬세하게 잘 살렸다.
부록으로 감독과 김영진 평론가의 해설, 제작과정, 인터뷰, 뮤직비디오 등이 수록됐다.
이 가운데 음성해설은 블루레이를 위해 새로 녹음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 play 버튼이 붙은 사진은 버튼을 누르시면 예고편 등 동영상이 재생됩니다. *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지금도 유지태가 시니컬한 표정으로 자조하듯 내뱉던 그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대사가 돼버린 저 말은 숱한 패러디를 낳았다. 유지태의 집으로 나온 곳은 서울 부암동의 실제 주민이 사는 집이다. 원래 거주자에게 세를 얻어 주고 빌려서 촬영. 정선 버스터미널 장면은 원래 바깥에서 만나는 장면인데, 안으로 옮겨 찍었다. 당시 이영애가 영화 '선물' 촬영을 하고 와서 피곤한 상태에서 의자에 앉아있던 모습을 허 감독이 보고 연기로 살렸다. 바람이 대밭을 흔드는 장면은 삼척 노곡면 양리마을에서 촬영. 편안하면서도 섬세한 촬영은 김형구 촬영감독의 솜씨다. 허 감독은 음성해설에서 기억해내지 못했지만, 눈 내리는 새벽 풍경소리를 녹음하는 산사 장면은 삼척 노곡면 신흥사에서 찍었다. 이 영화는 김윤아가 번안해 부른 주제가 '봄날은 간다'도 참 좋았다. 이 곡은 마츠토야 유미가 작곡한 일본노래다. 허 감독은 소소한 일상의 풍경을 따뜻하게 담았다. 홍상수 식의 어색하거나 당황스럽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다. 할머니 역의 여배우 백선희는 약 60년 만의 영화출연이었다고 한다. 촬영 당시 고모로 나온 신신애가 부른 '세상은 요지경'이란 노래가 인기였다. 허리가 휘청 꺾일 만큼 격한 포옹이 인상적이다. 그만큼 반가움의 깊이가 묻어난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자주 가는 수색역은 허 감독이 어린 시절 근처에 살아 많이 갔던 곳이란다. 유지태가 "라면 먹고가라"는 이영애의 꼬임에 넘어가 이영애의 집에 들린 뒤 느닷없이 "자고가라"는 유혹을 받는다. 이 장면은 상황도 어색하고 대사도 난망하다. 그럴 수 밖에 없던 것이, 허 감독이 대본없이 "둘이 아무 대사나 해보라"고 던져놓고 찍은 장면이어서 그렇다. 개울물 소리를 녹음하는 장면은 정선 아우라지에서 촬영. 바닷가 장면은 동해 덕산면 맹방해수욕장에서 촬영. 소리하는 노인네를 취재하는 장면은 정선에서 1시간 가량 들어간 한치마을에서 촬영. 허 감독은 사랑의 온도를 두 사람의 거리로 표현했다. 둘이 정말 좋을 때에는 아주 가깝고, 식을 때에는 이영애가 유지태와 멀리 떨어져 있다. 이 앵글이 자주 나온다. 창문 너머 두 사람의 모습을 사선에서 내려다 본 앵글이 이채롭다. 강릉 KBS앞에서 촬영. 허 감독이 강원도를 배경으로 삼은 이유는 두 사람의 영화 속 업무상 소리를 녹음할 만한 곳이 많았기 때문. 얄미운 은수(이영애) 때문에 상우(유지태)의 치졸한 복수가 이해가 간다. 자동차에 난 스크래치 만큼이나 남자의 마음에도 상처가 패인다. 친숙한 사람이 등을 보이는 것처럼 당혹스런 순간이 없다. 그만큼 타자와의 거리감을 만들기 때문. 등을 보이고 집을 나서던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집을 돌아보던 순간은 수구초심이 느껴져 가슴이 뭉클하다. 창문가에 잠깐 얼굴이 보이는 여인은 MBC 기상캐스터 출신 안혜경이다. 기상캐스터가 되기 전 이 작품에 엑스트라처럼 잠깐 출연했다. 창문너머 벚꽃이 눈처럼 피어 있는 풍광이 인상적인 이 곳은 홍대 근처 카페다. 두 사람의 사랑이 꽃잎처럼 지던 이 장면은 참으로 안타까웠다. 원래 허 감독은 이영애가 서 있고 유지태가 떠나는 장면 등 2가지 버전을 찍었으나 영화에는 이영애의 뒷모습을 담았다. 막판 보리밭 장면은 전남 강진만 가우도 인근에서 찍었다. 바람에 일렁이는 보리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추천 DVD / 블루레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은교 (블루레이) (2) | 2012.09.16 |
---|---|
코쿠리코 언덕에서 (2) | 2012.09.12 |
벤허 (블루레이) (3) | 2012.08.18 |
일루셔니스트 (블루레이) (0) | 2012.08.04 |
페드라 (2) | 2012.08.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