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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DVD / 블루레이

부초 (블루레이)

울프팩 2018. 2. 2. 18:26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부초'(浮草, 1959년)는 떠돌이 유랑극단 사람들을 통해 보편적 삶을 관조하는 영화다.

오즈 감독의 두 번째 컬러 영화이기도 한 이 작품은 1934년에 감독 자신이 만든 흑백 무성영화를 리메이크했다.


공교롭게 소설가 한수산의 '부초'와 제목 및 소재가 같은 이 작품은 제목 또한 동일하게 떠돌이 유랑극단 배우들을 암시한다.

좁은 의미로는 떠돌이 배우이지만 큰 틀에서 보면 세파에 휘둘리는 인생이라고 볼 수 있다.


내용은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 유랑극단이 찾아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유랑극단 단장이 사람도 많지 않은 외딴 마을을 찾아든 이유는 숨겨 놓은 애인이 있기 때문.


심지어 애인과 사이에 아들도 있다.

이를 알게 된 단장의 정부가 질투를 하며 젊은 여배우를 시켜 단장의 숨겨 놓은 아들을 유혹하게 한다.


급기야 사랑싸움에 유랑 극단은 표류하게 되고, 단장은 사이가 좋았던 아들하고도 갈등을 빚게 된다.

이제 단장은 극단과 아들, 애인을 위해 새로운 결정을 해야 한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영화들이 그렇듯 이 영화도 사람들의 쓸쓸한 인생살이에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 그런지 유난히도 사람들의 뒷모습이 많이 나온다.


마치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유랑 극단 단원들의 쓸쓸한 사랑처럼 돌아앉은 사람들의 등허리로 더 할 수없는 외로움이 흐른다.

그러나 절대 감정 과잉으로 흐르지 않는 것이 오즈 영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조용하게, 때로는 무심하게 언제나 그렇듯 일상의 한 조각들을 비추는 영상을 통해 쓸쓸함의 깊이를 더하고 이를 통해 보는 사람은 각자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저 스쳐가듯 보여주는 화분, 밥상, 빈 복도 등 정물화에 가까운 이런 장면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은유이면서 다양한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빈 잔과 빈 병은 관계의 끝을 암시하는 듯하며 등대와 비슷한 모양의 맥주병을 함께 잡은 장면 등에서는 나름 오즈 특유의 무심한 유머가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파안대소하는 폭소가 아닌 삶을 비꼬는 듯한 페이소스가 묻어 있다.


그런 점에서 어느 장면 하나 허투루 버릴 게 없다.

아무것도 아닌 장면들 조차도 나름 은유와 비유의 의미를 지니며 결코 인생살이에 무의미한 것들이란 없다는 점을 암시하는 듯하다.


그만큼 사람들의 삶을 담담하게 관조하는 오즈 야스지로 감독 특유의 깊이가 묻어나는 훌륭한 작품이다.

과거 1930년대 무성 영화와 다른 점은 색과 선을 잘 살렸다는 점이다.


오즈 특유의 감각적인 색감과 문양의 배치가 뛰어나 선과 색의 예술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1080p 풀 HD의 4 대 3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평범한 화질이다.


잡티와 스크래치는 없지만 지글거림이 두드러진다.

어찌 보면 1950년대라는 제작연도를 감안했을 때 이보다 더 좋은 화질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다.


화질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엉성한 한글자막이다.

여러 군데 보이는 오자는 둘째 치고, 번역 자체가 매끄럽지 못한다.


모자지간에 대화가 반말과 존댓말이 마구 뒤섞여 있고, "세계의 그렇죠"처럼 말도 안 되는 비문까지 있다.

번역가가 아닌 인터넷 번역기를 돌린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만큼 번역이 엉망이다.


음향은 LPCM 2.0 채널을 지원하며 부록은 없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닮은 꼴 모양의 등대와 맥주병. 어찌 보면 이런 것들이 오즈 야스지로 특유의 담담한 유머이기도 하다.

한 여름날의 나른한 더위와 끈끈함이 절로 묻어나는 영상. 코닥 필름을 이용해 촬영.

촬영은 미조구치 겐지 감독과 여러 편의 영화를 찍은 미야가와 카즈오가 담당. 미야가와 카즈오는 '라쇼몽'을 찍어 유명하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은 1934년에 만든 흑백 무성영화 '부초 이야기'를 색채 영화로 다시 만들었다.

선과 색의 확실한 사용을 통해 과거 작품과 차별화를 꾀했다.

단장의 정부를 연기한 교 마치코.

단장과 정부가 빗 속에서 사랑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압권이다. 두 사람 사이에 장벽처럼 쏟아지는 빗줄기는 두 사람의 회복될 수 없는 관계를 암시하는 듯하다. 그 옆에 버려진 우산은 모노톤에 가까운 영상에 화려한 색깔로 방점을 찍는다.

여러 장면에서 배우들은 카메라를 등지고 앉는다. 마치 각자 사연을 드러내기 싫은 사람들처럼 돌아앉은 그들의 등이 같이 있어도 한 없이 쓸쓸해 보인다.

오즈 야스지로 감독은 카메라를 많이 움직이지 않는다. 돌리나 트래킹, 팬, 심지어 줌도 없다. 카메라는 미동도 없이 고정됐지만 마치 원근법을 시험한 르네상스 시대 그림처럼 앞에서부터 차례로 배치된 소품과 엇갈린 인물들을 통해 영상에 깊이를 더한다.

아들을 연기한 가와구치 히로시와 아들을 유혹하는 젊은 여배우 역할의 와카오 아야코. 이 작품은 마주 앉은 인물들이 서로 엇갈리게 앉아 있는 배치가 많다.

비어버린 빈 잔과 빈 병 등 정물화 같은 풍경들은 보는 사람들에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유랑극단 단장을 연기한 나카무라 간지로와 그의 애인을 연기한 스기무라 하루코.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다른 영화들에서 낯익은 얼굴들이다. 오즈 감독은 작업했던 배우와 제작진들하고 되풀이해서 영화를 만들었다.

미국의 유명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이 작품을 가장 좋아하는 10편의 영화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부초 이야기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부초 : 블루레이
예스24 | 애드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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