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즈 와이드 셧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감독의 유작으로 유명한 '아이즈 와이드 셧'(Eyes Wide Shut, 1999년)이 무삭제, 무암전 DVD 타이틀로 국내 출시됐다.
톰 크루즈(Tom Cruise)와 니컬 키드먼(Nicole Kidman)이 부부일 때 출연해 누드 연기를 펼쳐 화제가 된 작품.

그러나 사람들이 기대하는 만큼 두 사람의 전라 누드가 나오는 것은 아니고 키드먼의 뒷모습과 톰 크루즈의 상체가 잠깐 나온다.
오히려 주변 인물들의 헤어 누드와 강도 높은 정사 장면이 여러 군데 나오는데 국내 개봉 시 문제의 장면들은 모자이크 처리됐다.

큐브릭 감독은 이 작품 역시 '배리 린든' '샤이닝' '시계태엽 오렌지' '풀 메탈 자켓' 등 전작들처럼 인간의 광기와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부부 사이에 우연히 시작된 대화를 통해 드러난 성에 대한 욕망이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번지며 결국 두 사람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내용.

전작들이 내러티브에 의존해 직선적 방식으로 주제를 보여줬다면 이번 작품은 등장인물의 미묘한 심리묘사에 초점을 맞춰 주제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차이가 있다.
원작이나 마찬가지인 '트라움노벨'을 쓴 아르투르 슈니츨러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영향을 받은 의사였다.

실제로 이야기는 등장인물의 심리상태를 따라 물 흐르듯 흘러간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큐브릭 감독은 특유의 몽환적 영상을 만들었다.

마치 부유하는 먼지에 싸인 듯 뽀얀 영상은 꿈을 꾸는 것처럼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4 대 3 풀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의 화질은 좋지 않다.

큐브릭 감독의 독특한 영상을 감안하더라도 선명도가 떨어진다.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는 별로 없지만 배경 음악의 울림이 좋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모음곡 중 '왈츠 2'가 흐르는 가운데 키드먼의 뒷모습으로 시작된다. 이 곡은 리카드로 샤이 지휘로 로열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가 연주했다.

성에 대한 욕망을 유리컵 하나로 묘사한 명장면. 키드먼이 마시다 놓은 샴페인잔을 바람둥이 중년 남자가 일부러 집어 들며 두 사람의 손끝이 스친다.

4 대 3 화면비의 묘미는 높이에 있다. 와이드 스크린처럼 넓게 펼쳐지는 맛은 없지만 대신 천장이 높은 장소의 공간감을 살리는 데는 그만이다.

부유층 빅터를 연기한 인물은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만든 시드니 폴락 감독. 원래 하비 키틀이었으나 재촬영하며 폴락으로 바뀌었다.

톰 크루즈는 훗날 신혼 때 이 작품을 찍었으면 위기를 겪었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를 했다. 어쨌든 톰과 니컬 키드먼은 이혼했다.

성 관념에 대한 니컬의 고백을 들은 후 톰은 부인이 불륜을 저지르는 상상에 시달린다.

톰의 상상은 광기 어린 비교집단에 몰래 참여하는 일탈로 이어진다.

스테디캠을 사용한 카메라 움직임은 마치 왈츠를 추듯 부드럽게 움직인다. 왈츠 스텝을 밟듯 유려하게 움직이는 영상은 꿈을 꾸는 것처럼 환상적이다.

영화는 끝내 비교집단과 모임의 정체에 대해 밝히지 않는다. 다만 알면 놀랄만한 힘 있는 자들의 모임이란 암시만 넌지시 던진다. 어쨌든 남자의 욕망과 호기심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남는다. 남자가 울며 털어놓는 고백을 힘겹게 들은 니컬 키드먼의 대답 역시 고백만큼이나 당황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