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테판 츠바이크는 '광기와 우연의 역사'에서 "한 인간의 몰락만이 이길 수 없는 운명의 거대한 힘에 맞서 싸우도록 만든다"라고 썼다.
멜 깁슨이 각본을 쓰고 감독, 제작까지 한 '아포칼립토'(Apocalypto, 2006년)는 이 말에 딱 들어맞는 영화다.
마야 문명이 지배하던 중남미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던 어느 부족이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또 다른 부족의 습격을 받아 풍비박산 난다.
친구와 아버지의 죽음을 눈 앞에서 목도한 주인공은 천신만고 끝에 탈출해 아내와 자식을 지키기 위해 처절하고도 힘든 싸움을 벌인다.
그렇지만 피비린내나는 싸움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시각처럼 광기일지는 몰라도 결코 야만이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개 돼지처럼 땅바닥에 몸을 굴리는 부족이나 앞선 문명으로 거대한 피라미드를 쌓은 민족 모두 더 할 수 없이 잔혹하고 처절하게 맞부딪치기 때문이다.
결국 야만과 문명의 문제가 아닌 인간이 잔인할 뿐이다.
멜 깁슨은 냉정하고 지나칠 정도로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잔혹한 인간의 세계를 생생하게 영상에 담았다.
'브레이브 하트'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뒤를 잇는 그의 가학적인 영상이 이번 작품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
눈살을 찌푸릴만큼 잔혹한 폭력 장면 못지않게 인상적인 부분은 후반부에 등장하는 추격 장면.
근육질의 전사들이 마치 전차처럼 정글을 누비며 쫓고 쫓기는 장면은 자동차 경주를 보는 것처럼 흥분된다.
다만 유명 배우들이 나오지 않다보니 관객의 시선을 잡아끄는 흡입력이 모자르다.
그래도 역동적인 카메라 앵글과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들은 높이 살만하다.
1080p 풀 HD의 1.8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좋다.
아마존의 푸른 원시림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만큼 색상이 찬란하다.
비압축 방식의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소리의 이동성과 방향감이 좋아서 서라운드 효과가 제대로 살아난다.
새소리, 풀벌레 소리 등 각종 자연의 소리가 사방 스피커에서 쏟아진다.
부록으로 감독과 프로듀서의 음성해설, 삭제 장면, 마야 문명 설명 등이 한글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이 작품 역시 멜 깁슨의 잔혹 영상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초반 '맥'이라는 동물을 사냥하는 장면은 '라스트 모히컨'을 연상케 한다. 말과 돼지를 섞어놓은 듯한 맥은 멸종위기 동물이다. 당시 중미에는 말이 들어오기 전까지 맥이 가장 큰 동물이었다. 말은 유럽인들이 들여왔다. 맥을 죽이는 장면은 모형을 사용.
순박한 부족 전사를 연기한 조나단 브루어는 캐스팅되기 전까지 캐나다 인디언인 크리족 지역에서 교사로 일했다.
주인공을 연기한 루디 영블러드는 이 작품으로 데뷔한 신인배우다. 무용을 했고 크로스컨트리 선수 및 복서로 활동해 모든 스턴트를 직접 했다.
장엄한 광경은 코스타리카에서 촬영했다.
요란한 문신을 위해 배우들은 6시간씩 분장을 했다.
사로잡힌 다른 부족의 목을 긋는 데 사용된 칼은 흑요석으로 만들었다. 마야문명에는 금속 무기가 없어서 날카로운 유리 광물인 흑요석으로 칼을 만들었다.
처참하게 유린당한 마을은 세트다.
갈라진 상처를 병정개미가 깨물게 만든 뒤 머리를 잘라내 봉합하는 장면. 고대 이집트에서 곧잘 활용된 치료술이다. 그레이엄 핸콕이 '신의 지문'에서 지적했듯 피라미드와 이런 의술을 보면 마야 문명은 고대 이집트와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 참으로 불가사의다.
사로잡힌 부족민들은 제물이 되기 위해 대나무에 목이 묶인 채 줄줄이 끌려간다. 마야문명은 나무를 잘라 불을 때서 바위를 달군 뒤 부서뜨려 흰 가루로 만들었다. 이를 도시건축에 이용했다.
마야인들은 제물에 파란색 물감을 칠했다.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하기 위해서다. 마야인들의 도시는 멕시코의 베라크루즈에 세트를 짓고 촬영. 피라미드도 컴퓨터 그래픽이 아닌 실제로 만든 세트다.
마야인 전사의 우두머리를 연기를 라울 트루지로.
마야인들은 제물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마비시켜 심장 등 장기를 제거했다.
마야인들에게 사로잡힌 어느 부족의 왕은 산 채로 몇 년 동안 장기를 차례로 제거당했다고 한다. 마야인들은 상대에게 굴욕을 주기 위해 이 같은 방법을 사용했단다.
제물로 바치고 남은 부족민들은 풀어놓고 활쏘기나 다른 무기 투척 연습용으로 썼다.
촬영은 '늑대와 춤을'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딘 세믈러가 담당.
이 작품은 파나비전과 소니가 합작해서 만든 HD용 카메라 제네시스를 사용해 찍었다.
제물로 쓰인 희생자들을 버린 구덩이. 테크노 크레인을 사용해 촬영. 이 작품은 크레인 샷이 자주 등장한다.
검은 표범을 피해 달아나는 장면은 놀랍게도 실제로 표범과 일정 거리를 두고 달리며 촬영.
근사한 풍경은 모두 코스타리카에서 따로 촬영.
'라스트 모히컨'을 닮은 폭포 탈출 장면은 스파이더캠으로 촬영. 양 끝에 크레인을 설치한 뒤 와이어를 연결하고 카메라를 매달아 촬영한 장면이다.
추격 장면의 일부는 16미리 카메라를 이용해 핸드헬드로 촬영. 마야인은 부와 신뢰의 상징으로 옥을 많이 사용.
마치 야구의 슬라이딩 세이프를 연상케 하는 격투장면 역시 크레인 샷이다.
영화 속 범선들은 콜럼버스의 선단이다. 콜럼버스는 4차 원정 때인 1502년에 마야인들을 발견, 무역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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