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발톱을 감춘 채 숲에 누웠고, 여의주를 품은 용은 구름 속에 몸을 숨겼다.
그렇게 누운 호랑이(臥虎)와 숨은 룡(藏龍)이 만나 벌인 싸움은 처절하면서도 아름다웠다.
이안 감독의 수작 '와호장룡'(Crouching Tiger, Hidden Dragon, 2000년)은 참으로 아름다운 무술영화다.
원작은 왕두루의 동명 소설.
내용은 강호에 은거한 무술 고수와 속세에 잠복한 여걸의 싸움을 다룬 무협물이다.
그러나 단순 칼부림에 그치는 무협물이 아니라 남녀 간의 애닲은 사랑이 수놓인 드라마다.
특히 이안 감독 특유의 심미안이 액션에도 그대로 녹아나 주윤발과 장쯔이, 양자경이 허공을 가르며 벌이는 대결은 마치 한 편의 무용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다.
여기에 장엄하면서도 서정적인 탄둔의 음악이 물흐르듯 깔리며 영화의 무게를 더한다.
무엇보다 중국 특유의 선과 여백을 잘 살린 영상과 춤추듯 합이 어우러진 무술, 노장 사상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 대사들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구성 또한 도둑맞은 보검을 찾는 과정이 추리소설처럼 전개되다가 무술 고수들의 대결로 넘어가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그러면서 기저에는 어쩔 수 없는 사랑의 비극이 실타래처럼 풀어져 있다.
더불어 수려한 영상을 빼놓을 수 없다.
푸른 강물 같은 대나무밭의 결투와 중국식 서부극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사막의 비적 장면 등은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아름답고 인상적이다.
촬영은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촬영상을 받은 포덕희의 솜씨다.
그는 이 작품 이전에도 영상이 아름다운 '백발마녀전', 홍콩 누아르 '도신' 등을 찍었다.
이번에 나온 4K 타이틀은 4K와 일반 블루레이 등 2장의 디스크로 구성됐다.
2160p UHD의 2.40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4K 타이틀은 화질이 괜찮은 편이다.
중경과 원경의 디테일은 떨어지지만 클로즈업 영상은 섬세하다.
필름의 질감이 곱게 느껴지는 영상은 전체적으로 발색이 과하지 않고 자연스럽다.
돌비 애트모스를 지원하는 음향은 대사 음량이 약간 작은 편이다.
그만큼 서라운드 효과가 강조된 음향은 아니다.
리어 채널에서 북소리가 부드럽게 울리는 듯 전체적으로 소프트한 소리를 들려준다.
부록으로 감독과 작가의 음성해설, 촬영감독의 해설과 제작과정, 삭제 장면 등이 한글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이토록 아름다운 무술 영화가 있었던가. 녹색 바다처럼 펼쳐진 푸른 대숲 위를 날며 펼치는 대결이 압권이다. 그야말로 동양 미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베이징을 내려다본 모습은 샌프란시스코 메넥스의 특수효과팀이 제작했다.
지붕 위를 날고 성벽을 달리며 펼치는 대결은 빠른 고전무를 보는 듯 하다. 모두 와이어 액션을 이용한 촬영.
강호에 누운 호랑이를 연기한 주윤발. 무술 영화를 처음 찍는 그는 2개월 간 무술 연습을 했다.
강호를 노리는 숨은 용을 연기한 장쯔이.
말레이시아 태생인 양자경은 주윤발처럼 광둥어 외에 만다린어에 익숙하지 않아 따로 공부를 했다. 그는 특히 한문을 몰라서 고생했다고. 그 역시 5개월 동안 무술연습을 했다.
철저하기로 유명한 이안 감독은 장쯔이에게 매일 서예연습을 시켰다. 특히 자신을 통제하기 위해 글씨를 작게 쓰는 서예는 무술과 상통한다.
악당 푸른여우로 등장한 이 여인이 중국 무술영화에 여걸로 자주 나온 유명한 정패패다. 그가 악역을 맡은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이다. 마치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서부극에서 악역을 연기한 헨리 폰다 같은 것.
타클라마칸 사막의 화염산 근처에서 촬영. 화염산은 '서유기' 속 손오공이 우마왕과 싸움을 벌인 곳.
이 작품의 아름다운 무술 대결은 '매트릭스'의 무술 지도를 맡은 원화평이 무술 감독을 맡아서 연출.
양자경은 이 작품 촬영 도중 무릎을 다쳐 전방십자인대를 수술했다. 그래서 3, 4주간 촬영을 못했다.
와이어를 이용한 대나무숲 결투는 호금전 감독의 작품 '선의 감촉'에서 대나무숲 시퀀스를 따온 것. 잘 휘어지고 바르고 선한 성질의 대나무는 검과 서로 통한다.
강서성에서 촬영한 장면. 이안 감독은 5부작 원작소설에서 한 파트를 윤색해 영화로 제작.
중국 황산에서 찍은 엔딩. 장쯔이의 투신은 인간이 갖고 있는 온갖 굴레에서 벗어나는 탈속을 의미한다.
탄둔의 음악과 요요마의 첼로가 어우러진 음악도 훌륭했다. 엔딩 크레딧 후반에 나오는 주제가는 코코리가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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