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추천 DVD / 블루레이

체르노빌(4K 블루레이)

울프팩 2021. 1. 30. 19:28

기억을 더듬어보면 1986년은 온통 서울 아시안게임으로 시끄러웠다.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홍보를 위해 의도적으로 요란하게 아시안게임을 띄웠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국내에서는 그해 체르노빌에서 발생한 원자력 발전 폭발 사고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체르노빌은 당시 구 소련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다.

 

체르노빌 발전소와 프리퍄티는 어떤 곳

체르노빌로 알려진 V.I 레닌 원자력 발전소는 우크라이나 북쪽 국경 근처 작은 마을인 체르노빌에서 15km 정도 떨어진 곳에 1970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건설됐다.

발전소를 지으면서 여기서 일할 사람들을 위해 발전소에서 3km 정도 떨어진 곳에 프리퍄티라는 계획도시, 즉 아토모그라드라는 원자력 도시도 만들었다.

 

나중에 프리퍄티에는 발전소 운영 인력과 소방대, 상점 등에서 일할 사람과 가족 등 5만여 명이 살게 된다.

발전소는 1977년 11월 1호기를 시작으로 78년 2호기, 81년 3호기, 83년 4호기 등 4개의 원자로가 차례로 가동됐다.

렌크 감독은 빛을 넓게 비추지 않고 촬영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한 눈에 들어오도록 장대하게 묘사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진정성을 강조하고 싶었다. 블루레이 캡처.

4개의 원자로는 모두 구 소련이 개발한 '흑연감속 비등경수 압력관형 원자로'(RBMK)였다.

RBKM는 여러 가지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었다.

 

서방의 가압수형 원자로(PWR)가 물을 감속재와 냉각재로 사용하는 것과 달리 RBMK는 핵분열 연쇄반응에 필요한 감속재로 흑연, 핵분열로 뜨겁게 달아오른 노심을 식히는 냉각재로 물을 사용했다.

나중에 이 같은 방식이 폭발 사고의 결정적 이유가 됐다.

 

대신 RBMK는 건설이 쉽고 빠르며 무엇보다 비용이 적게 들었다.

또 유지 보수하기도 쉬웠고 서방의 원자로보다 오래 쓸 수 있었다.

방사선이 퍼지면 매일 요오드 정제를 1알씩 먹어야 한다. 방사선을 퍼뜨리는 아이오다인 131번이 갑상선에 고여서 암을 유발하는데 방사선 없는 동위원소인 아이오다인 127번(요오드)을 먹어서 갑상선을 채우면 131번이 들어와도 쌓이지 않고 배설된다. 블루레이 캡처

치명적인 구 소련의 RBMK 방식 원자로

RBMK 방식의 비용이 저렴한 것은 서방 원자로가 핵분열이 일어나는 노심을 강력한 금속 차폐물인 압력 용기로 가두는 반면, RBMK는 이를 설치하지 않고 원자로를 강화 콘크리트로만 감쌌기 때문이다.

대신 천장과 바닥에 통조림처럼 거대한 금속판을 설치했다.

 

사실 요즘의 원자력 발전소는 대형 제트 여객기가 음속으로 내리 꽂혀서 폭발해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되지만 당시 체르노빌의 RBMK는 건설비를 줄이려고 그런 시설을 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외부나 내부 충격에 취약했다.

여기에 비용과 건설기간을 단축하면 영웅 대접을 하는 구 소련의 관료주의도 사고 발생의 한몫을 톡톡히 했다.

구 소련 정부는 체르노빌 발전소 4호기가 폭발한 이후에도 전력 부족 때문에 1~3호기를 계속 가동했다. 그러다가 2호 원자로는 1991년에 화재가나서 폐쇄됐다. 이후 세계 각국의 발전소 폐쇄 압력이 거세지자 1호 원자로도 1996년 11월 폐쇄됐고 3호는 2000년 11월 정지됐다. 블루레이 캡처.

당시 체르노빌 발전소장이었던 빅토르 브류하노프는 방사능 차폐에 필요한 불연성 자재가 기한 내에 도착하지 않자 공기를 단축하려고 현장에 있던 불이 잘 붙는 역청을 발전소 지붕에 발랐다.

당시 역청은 구 소련에서 건설용으로 사용이 금지된 물질이었다.

 

RBMK에서 흑연을 감속재로 채택한 것은 대단히 위험했다.

원자력 발전소의 연료인 우라늄은 충격을 받아 쪼개지면서 에너지와 중성자를 방출한다.

보리스 셰르비나 장관을 연기한 스텔란 스카르스고르드. 블루레이 캡처.

중성자는 다른 우라늄과 부딪쳐 이를 쪼개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이를 연쇄 반응이라 하며 원자력 발전소의 가동 원리다.

 

이때 중성자의 속도가 느릴수록 핵에 정확하게 부딪쳐 연쇄반응이 잘 일어나기 때문에 강제로 중성자의 속도를 늦추는 감속재를 사용한다.

구 소련의 RBMK 원자로는 감속재로 흑연을 사용했다.

 

체르노빌 사고의 원인이 된 양의 보이드 계수

그런데 흑연은 뜨겁게 달아오른 노심을 식히기 위한 냉각수가 없거나, 냉각수가 있어도 원자로 안에 공극(보이드, voids)이라고 부르는 증기 포켓이 생성되면  핵반응을 더 가속화시킨다.

즉 원자로 안에 특별한 이유로 냉각재인 물이 떨어지거나, 있어도 노심이 너무 달아올라서 물이 끓으며 증기가 발생하면 흑연이 불 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를 학자들은 '양의 보이드 계수'라고 한다.

'체르노빌' 드라마의 재판 과정에서 발레리 레가소프 교수가 붉은색, 푸른색 판을 열심히 갈아 끼우며 설명하는 것이 바로 이 양의 보이드 계수에 대한 설명이다.

학자적 양심 때문에 진실을 밝히고 곤욕을 치른 레가소프 박사. 블루레이 캡처.

반면 서방의 가압수형 원자로는 감속재와 냉각재로 모두 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만약 사고로 원자로에 냉각재인 물 공급이 끊기면 자연스럽게 핵분열 반응을 촉진하는 감속재 또한 사라져 핵분열 반응이 멈춘다.

더 큰 문제는 소련 정부에서 '양의 보이드 계수'가 발생할 수 있는 RBMK 방식의 결함을 알고도 은폐했다.

 

구 소련의 비밀경찰인 국가보안위원회(KGB)는 소련이 개발한 원자력 발전 방식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서방에서 알까 봐 관련 논문과 발전소 운영 매뉴얼에서 결함의 위험성을 알린 부분을 삭제했다.

당연히 원자로에서 '양의 보이드 계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고를 막기 위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또는 하지 말아야 할 조치를 적어 놓은 주의사항도 함께 삭제됐다.

체르노빌 발전소 화재를 프리퍄티 철교에서 구경한 사람들은 모두 방사선 피폭으로 숨졌다. 이후 철교는 죽음의 다리로 불린다. 블루레이 캡처.

체르노빌 발전소 폭발 사고 당시 현장의 운영 인력들은 이 같은 결함을 전혀 몰라서 오히려 거꾸로 폭발을 키우는 조치들을 하게 됐다.

RBMK는 냉각수 사용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노심이 달아오르며 냉각수가 끓게 되면 발생하는 증기를 모아서 증기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도록 설계됐다.

증기가 터빈을 돌린 뒤 다시 물로 응축되면 이를 노심에 보내 냉각수로 재활용한다.

 

즉 방사능에 오염된 물이 계속해서 노심과 터빈을 순환하게 된다.

한마디로 발전의 모든 과정, 원자로 전체에 방사성 물질이 가득 차는 셈이다.

체르노빌 발전소 폭발로 날아간 방사선 낙진은 1,200km 떨어진 스웨덴의 포스박 원전에서도 발견됐다. 스웨덴이 소련에 공식 해명을 요구하면서 사고 사실이 전세계에 알려졌다. 블루레이 캡처.

반면 서방의 가압수형 원자로는 냉각수에서 발생하는 열을 분리해서 깨끗한 저압의 다른 물로 보내 중화시키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서 터빈이 오염되지 않는다.

RBMK 원자로에서 사용하는 211개의 제어봉도 문제였다.

 

원자력 발전소는 핵 연쇄 반응이 지나치게 증가하지 않도록 원자로 노심에 출력을 줄이는 제어봉을 집어넣는다.

따라서 제어봉을 들어 올리면 출력이 증가하고 집어넣으면 출력이 줄어든다.

 

그런데 RBMK 원자로는 제어봉을 완전히 빼내서 다시 삽입하는 속도가 엄청 느려서 18~24초가 걸렸다.

그 사이 노심은 계속 핵분열을 가속화하게 된다.

 

서방의 가압수형 원자로는 최대한 들어 올린 제어봉을 다시 삽입하는 작업이 1초면 끝난다.

이런 복합적인 위험성을 안고 있는 체르노빌 발전소에 문제가 발생한 것은 1986년 4월 26일이었다.

체르노빌 발전소는 더 이상 발전하지 않지만 송배전 시설을 지금도 가동하고 있다.

설계 결함 뒤에 숨은 욕심이 부른 인재

래 안전 검사를 통과해야 발전소를 가동할 수 있는데, 당시 브류하노프 소장은 하지도 않은 안전 검사를 실시한 것으로 하고 발전소를 먼저 가동했다.

그 바람에 브류하노프 소장은 발전소 건설 기간과 비용을 줄인 공로로 상부의 높은 평가와 상금 등 보상을 받았다.

 

브류하노프 소장은 뒤로 미룬 안전 검사를 이날 실시했다.

체르노빌에서 실시한 안전검사는 RBMK 원자로에서 가장 중요한 냉각수가 사고로 끊길 경우를 대비한 비상장치의 작동 검사였다.

 

RBMK 원자로에 냉각수 공급이 중단되면 핵 연쇄반응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지만 물이 없어서 증기가 발생하지 않아 증기터빈을 돌리지 못하기 때문에 전력을 생산할 수 없다.

이때 비상 운전 중단 장치를 작동하면 터빈에 남아 있던 잔여 전력을 급수 펌프로 돌려 냉각수 공급을 재개하게 된다.

'체르노빌'을 쓴 앤드류 레더바로우가 드라마 제작에 자문을 맡았다.

구 소련에서는 RBMK 원자력 발전소에 설치된 비상 운전 중단 장치를 'AZ5'라고 불렀다.

안전 검사는 증기 터빈 가동이 안돼 전력을 생산하지 못하는 상황을 가정하기 때문에 발전량을 많이 낮춘 상태에서 실시한다.

 

체르노빌 발전소는 원래 이날 오후에 안전 검사를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키예프시 전력 통제 위원회에서 월말까지 목표로 한 공장의 생산량을 맞춰야 해서 전력이 많이 필요하니 발전량을 낮추지 말라고 요구했다.

 

그 바람에 안전 검사는 공장을 가동하지 않는 새벽 1시로 미뤄졌다.

그런데 발전소의 야간 근무조가 소수의 경험이 적은 인력들로 편성된다는 점이 문제였다.

체르노빌 발전소 사고로 유명해진 프리퍄티의 놀이공원은 개장을 앞두고 사고를 당해 대관람차 등을 한 번도 가동하지 못했다. 블루레이 캡처.

이들은 안전 검사를 한다는 사실도 통보받지 못했다.

야간 근무조는 출력을 낮춘 상태에서 실시하는 안전 시험을 위해 차석 엔지니어인 아나톨리 댜틀로프의 지시에 따라 자동 안전 시스템 작동을 강제 중단시켰다.

 

원래 체르노빌 원자로에는 일정 이하로 출력이 떨어지면 컴퓨터가 정전으로 판단해 원자로 작동을 중단하는 장치가 설치돼 있었다.

따라서 댜틀로프는 한 번 실패해도 여러 번 안전 시험을 되풀이하기 위해 일부러 자동 안전 시스템을 중단시켰다.

 

죽음을 부른 크세논의 독 작용

대부분 초심자였던 근무자들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안전 시스템을 하면서 시험 기준인 1,500MW로 유지해야 하는 열출력을 더 떨구는 실수를 했다.

출력이 급수 펌프조차 가동할 수 없을 만큼 완전 정지나 다름없는 30MW로 떨어지자 원자로 안에 방사능 물질인 크세논이 가득 발생하는 '독 작용'이 일어났다.

 

크세논이 중성자를 흡수해 핵분열을 떨어뜨리는 독 작용이 일어나면 원래 원자로 가동을 하루 이상 중지해 크세논을 빼낸 뒤 재가동해야 한다.

그런데 댜틀로프는 여기서 시험을 중단하고 뒤로 미루면 발전소장에게 나쁜 평가를 받을까 봐 화를 내며 시험을 강행했다.

실제와 똑같이 재현한 제어실. 지금도 호기심에 체르노빌을 찾는 '체르노빌 스토커'들이 많다. 블루레이 캡처.

안전 시험을 실시하던 직원들도 위험한 상황에 대해 아무도 제대로 문제 제기를 하지 못했다.

댜틀로프에게 나쁜 평가를 받으면 당시 구 소련에서 좋은 일자리에 속하는 원자력 발전소 근무를 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근무자들은 독 작용으로 발생한 크세논 때문에 출력이 잘 오르지 않자 출력을 더 높이려고 대부분의 제어봉을 들어 올려 출력을 200MW까지 올렸다.

원래 발전 매뉴얼에는 최소 15개의 제어봉을 노심에 남겨두도록 돼 있으나 사고 당시 남아 있던 제어봉은 최소 안전 기준의 절반인 8개였다.

 

운명의 1986년 4월 26일 오전 1시 23분 40초

이 상황에서 안전 시험을 위해 1986년 4월 26일 오전 1시 23분 40초에 야간 근무조장 알렉산데르 아키모프가 비상 운전 중단 장치인 AZ5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완전히 빼낸 상태였던 200개가 넘는 제어봉이 천천히 노심 속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문제는 당시 RBMK 원자로는 들어 올린 제어봉이 노심에 다시 삽입될 때 핵반응을 지나치게 떨어뜨리지 않도록 제어봉 끝 부분을 흑연으로 만든 점이었다.

끝부분을 흑연 처리한 제어봉이 노심을 향해 내려가면서 원자로의 핵 연쇄반응을 거꾸로 가속화시켰다.

폭발 직전 4각형 모양의 원자로 금속 뚜껑들이 피스톤처럼 튀어 올랐다. 블루레이 캡처

비상 운전 중단 버튼을 누른 지 4초 만에 원자로는 출력이 급상승하면서 미친 듯 날뛰기 시작했다.

냉각수 관이 파열되면서 냉각수 공급이 끊겼고 원자로 윗부분에 안전밸브로 잠근 4각형 모양의 금속 뚜껑 2,000개가 쿵쾅 소리를 내며 피스톤처럼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14초 뒤 증기 압력이 급팽창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4호 원자로는 결국 폭발했다.

무게 450톤, 3m 두께의 원자로 상단 금속 차폐막이 지붕을 뚫고 하늘로 날아갔고 핵반응을 일으키는 노심이 그대로 노출됐다.

원자로가 폭발하면서 체르노빌과 프리퍄티에 무수한 우라늄 총알이 비처럼 쏟아졌다. 촬영은 리투아니아에서 했다. 블루레이 캡처.

더불어 원료인 방사능 물질들이 기화돼 갖가지 색깔의 불기둥을 이루며 수십 미터 높이로 솟구쳐 대기로 분출됐다.

원자로 주변 온도가 수천 도로 치솟으며 방사능 물질들이 대기 중 산소, 원자로 안에 있던 흑연들과 결합해 몇 주 동안 꺼지지 않고 타올랐다.

 

그 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옥 같은 참상이 벌어졌다.

사고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시간당 3만 뢴트겐 수준의 방사능에 피폭돼 즉사했다.

발전소 폭파 뒤 치솟은 수십 미터 높이의 빛의 기둥은 방사능에 공기가 이온화돼 발생한 현상이다. 블루레이 캡처

사람이 1년에 접하는 자연 방사능은 평균 0.1 뢴트겐이다.

항공기 승무원들은 이보다 높아서 연간 0.3 뢴트겐의 자연 방사능을 맞는다.

 

가슴 엑스레이를 찍으면 0.8 뢴트겐의 방사능을 쏘인다.

사고 당일 대기로 퍼진 방사능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10배였다.

체르노빌은 검은 풀, 쑥이라는 뜻이다. 블루레이 캡처.

사실을 숨긴 보고, 이어진 오판

댜틀로프는 현장에 널린 흑연 조각을 보면서도 사고를 믿지 않았다.

원자로는 온전하고 비상 급수 탱크가 터진 것이라고 여겼다.

 

댜틀로프는 자신의 오판대로 발전소 사고가 곧 수습될 것이라고 브류하노프 소장에게 보고했다.

브류하노프는 모스크바 중앙정부에도 그렇게 보고했다.

원자로가 완전히 노출된 폭발 사고 현장. 체르노빌 발전소에서는 비상 정지 버튼이 핵폭탄 버튼 역할을 했다. KGB가 결함 사실을 밝힌 문서를 국가기밀로 감추는 바람에 발전소 직원들 조차 비상 정지버튼을 누르면 안된다는 사실을 몰랐다. 블루레이 캡처.

그래서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고르바초프는 별 일 아닌 줄 알았다.

하지만 현장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본 국립과학아카데미 소속 발레리 레가소프 박사는 최악의 사태라고 직감하고 위험을 경고했다.

 

그 상황에 브류하노프 소장은 원자로 4호기가 폭발했다는 현장 보고를 계속 무시하다가 뒤늦게 도시를 비워야 한다고 모스크바에 요청했다.

앞뒤가 다른 보고를 받은 모스크바는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정확한 상황 파악을 위해 전 석유가스산업건설장관 보리스 셰르비나와 레가소프 박사를 체르노빌에 보냈다.

오른쪽 이마에 한반도 모양의 반점이 있었던 고르바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 그는 체르노빌 사고가 소련 붕괴의 진짜 원인일 수 있다고 회고했다. 블루레이 캡처.

"도시를 비워라!"

체르노빌에 도착한 셰르비나와 레가소프는 천장이 뻥 뚫린 채 무럭무럭 방사능 연기를 토해내는 발전소를 보고 도시를 비워야 한다고 건의했다.

프리퍄티 사람들이 정부의 명령으로 1,000대의 버스를 타고 도시를 비운 것은 다음날인 27일 오후 2시였다.

 

그때까지 프리퍄티 사람들은 사고 사실을 숨긴 발전소와 정부 때문에 방사능이 쏟아지는 도시를 평소와 다름없이 활보했다.

도시를 비울 때도 정부에서 영구 폐쇄 사실을 알리지 않아 사람들은 거의 맨 몸으로 버스에 타다시피 했다.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도시를 떠나야 했던 프리퍄티 사람들. 이후 프리퍄티는 유령 도시가 됐다. 블루레이 캡처

개, 고양이 등 반려동물들도 데려가지 못했다.

그렇게 프리퍄티는 27일 이후 지금까지 사람이 살 수 없는 유령도시가 됐다.

 

프리퍄티뿐이 아니었다.

1986년 말까지 방사선 물질이 섞인 비 때문에 피해를 본 170개 마을 사람들이 살던 곳을 떠나야 했다.

 

장기가 녹아 내리는 끔찍한 방사선 증후군

방사선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끔찍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방사선에 대량 피폭되면 입에서 은박지나 쇠젓가락을 깨물을 때 느끼는 금속 맛이 난다.

 

즉 방사선 피폭 후 입에서 금속 맛이 나면 죽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이 정도면 신체가 방사선을 내뿜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마저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방사선 피해를 보여주는 장면은 어떤 공포물보다도 무섭다. 무엇보다 공포영화는 가짜지만 여기 보이는 참상은 진짜다. 블루레이 캡처.

심각할 정도로 방사선을 쪼이면 구토가 시작되고 혀와 눈이 붓는다.

이어서 신체 곳곳이 부어오르고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기운이 빠진다.

 

한두 시간 뒤 심한 두통과 함께 열이 나고 설사를 한다.

이어서 온몸이 종기로 뒤덮이며 심한 통증으로 쇼크 상태에 빠져 기절한다.

 

직접 강한 방사선을 맞은 경우 피부가 일광욕을 한 것처럼 검붉게 변하는 원자력 화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하루 이틀 지나면 통증이 멈추고 증세가 호전된다.

 

사람들은 다시 평소처럼 건강을 되찾는 줄 알고 좋아하지만 사실은 더 악화로 치닫는 일시 잠복기일 뿐이다.

그만큼 이때는 피해자들에게 착각의 희망을 주는 잔인한 시간이다.

 

이후 구토와 설사가 다시 시작되며 뼈를 뚫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쉴 새 없이 계속된다.

환자가 고통의 비명을 내지를 때마다 코와 입, 항문 등 모든 구멍에서 피가 쏟아진다.

 

간, 폐, 심장 등 몸 안의 장기가 녹아내려 피와 함께 배출되고 기침을 하면 내장 조각이 튀어나온다.

검게 변한 피부는 물집이 잡혔다가 이내 분해돼 양말 벗듯 벗겨지고 뼈는 썩어 들어간다.

방사선 피폭으로 죽은 사람들을 금속 관에 넣어 구덩이에 안치한 뒤 콘크리트로 덮어 버렸다. 블루레이 캡처

그렇게 죽은 사람들은 개별 무덤에 안장되거나 화장되지 못했다.

흙을 오염시키지 못하도록 아연으로 용접한 금속 관에 넣어 한 구덩이에 안치한 뒤 시멘트를 부어 버렸다.

 

사람뿐만이 아니다.

새들은 날지 못했고 숲 속 동물들은 여기저기 쓰러져 죽어갔다.

 

"체르노빌 출신은 안돼" 죽음 못지 않게 무서운 사회적 낙인

구 소련 정부는 지금까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숨진 사람은 31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체르노빌 유니온에 따르면 사고 당시 방사선 노출로 사망한 사람은 4,000~9만 3,000명, 불구가 된 사람은 20만 명이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체르노빌 사고로 방사선 피폭 판정을 받은 사람이 200만 명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그 가운데 50만 명 이상이 이미 사망했다.

발전소 사고 현장에 투입된 사람들은 인류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녹아내린 노심의 화재를 진압하는 일을 했다. 블루레이 캡처.

사고 후 기형아 출산이 급증했다.

더불어 눈에 보이지 않는 피해가 컸다.

 

바로 체르노빌 사람이라는 사회적 낙인이다.

사고 직후 기업들은 체르노빌 출신들을 고용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어울리려 들지 않았다.

 

요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에 걸렸다가 완치된 사람들을 꺼리는 경우가 있다고 하던데, 체르노빌 낙인 효과 같은 것이다.

질병에 대한 막연한 공포와 정보 부족이 낳은 무지의 소산이다.

 

이웃 나라들의 억울한 피해

이웃 나라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벨라루스는 원자력 발전소가 하나도 없는데도 체르노빌 사고로 국토의 23%가 방사성 물질에 오염됐다.

 

벨라루스 국민 1,000만 명 가운데 5분의 1인 210만 명이 오염 지역에서 방사선에 피폭됐다.

지금도 벨라루스 국민의 주요 사망 원인 중 하나가 방사선 피폭이다.

벨라루스는 원전이 하나도 없는 나라인데도 체르노빌 사고 때문에 국토의 23%가 방사선 물질에 오염됐다. 블루레이 캡처

우크라이나도 국토의 7%가 오염됐다.

체르노빌의 방사선은 서부 러시아와 동유럽 국가에도 영향을 미쳤고 멀리 스웨덴 등 북유럽에서도 검출됐다.

 

소련 정부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정확한 사고 원인과 피해 상황을 보고하지 않았다.

그저 근무자의 실수라고만 보고했다.

 

사고를 일으킨 사람들은 어떻게 됐나

정확한 사고 원인과 참상이 알려진 것은 체르노빌에서 꼼꼼히 현장 조사를 한 발레리 레가소프 박사 덕이었다.

그는 구 소련의 재판 과정에서 모든 사실을 까발렸다.

 

그 때문에 그는 한직으로 떠돌다가 생의 마지막 날 몇 시간 동안 모든 사실을 육성으로 녹음한 테이프를 동료 과학자들에게 유서처럼 남겼다.

체르노빌에서 쏘인 방사능 때문에 건강이 급격히 나빠진 레가소프 박사는 학자적 양심과 희생자들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레드 해리스가 레가소프 박사를 연기. 레가소프는 유언처럼 사건의 진실을 테이프에 녹음해 남긴 뒤 자살했다. 블루레이 캡처

사고가 일어난 지 정확히 2년 뒤인 1988년 4월 26일이었다.

훗날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은 체르노빌에서 활약한 레가소프 박사의 영웅적 행동과 희생을 기려 러시아 연방 영웅 칭호를 수여했다.

 

레가소프 박사와 함께 체르노빌 사고 현장에 파견됐던 셰르비나 장관도 방사선 피폭 때문에 암에 걸려 1990년 8월 22일 사망했다.

구 소련의 KGB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책임을 물어 발전소장 브류하노프, 수석 엔지니어 니콜라이 포민, 차석 엔지니어 아나톨리 댜틀로프 등 6명을 체포했다.

프리퍄티에서 비공개로 열린 체르노빌 재판. 댜틀로프는 재판에서 "유죄라고 하지 않겠지만 아니라고도 말 못하겠다"는 변명을 했다. 블루레이 캡처.

이들은 범죄 현장에서 재판해야 하는 소련 법에 따라 1987년 7월 프리퍄티의 문화의 궁전에 마련된 임시 법정에서 3주간 비공개로 재판을 받았다.

그 사이 포민은 안경 렌즈를 깨뜨려 손목을 그어 자살을 시도했지만 일찍 발견돼 살아났다.

 

댜틀로프는 법정에서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원자로 결함을 탓했다.

러시아 정부는 아직까지 재판 속기록과 증거자료를 기밀로 분류해 공개하지 않고 있다.

재판에 피고로 나온 발전소 책임자들. 왼쪽부터 브류하노프 발전소장과 댜틀로프 차석 엔지니어, 포민 수석 엔지니어. 블루레이 캡처

재판에 참석한 사람들이 쓴 책과 기록들을 종합해 보면 브류하노프와 포민은 각각 10년형, 댜틀로프는 5년형을 선고받고 당에서 제명됐다.

세 사람 모두 방사선 피폭으로 건강이 악화돼 형기를 다 채우지 않고 일찍 풀려났다.

 

댜틀로프는 방사선 질환을 앓다가 1995년 64세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사실 우리는 체르노빌 사고를 되짚으면 표면에 드러난 이들 못지않게 큰 역할을 한 사람들을 기억해야 한다.

 

피해를 줄인 수 많은 영웅들

체르노빌 사고는 죽음을 무릅쓰고 영웅적인 희생정신을 발휘한 사람들 덕분에 피해가 더 커지지 않았다.

'체르노빌' 드라마도 자세한 사고 경위와 함께 이들의 영웅적 희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고 발생 당시 야근조 직원들은 아무도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파괴된 원자로에서 쏟아진 방사선에 오염된 펄펄 끓는 물에 몸을 담근 채 우라늄 덩어리, 흑연 조각 등을 맨 손으로 헤치고 다니며 부상자를 구하고 냉각수 공급을 위해 맨 손으로 밸브를 돌렸다.

사고 후 발전소 직원들은 아무도 현장에서 달아나지 않았다. 오히려 맨 몸으로 방사선이 가득찬 원자로에 뛰어들어 사고를 막으려고 애썼다. 블루레이 캡처

이들이 손상된 터빈 연료탱크에서 석유를 빼내 옮기고 물을 끼얹어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은 덕분에 불길이 1,2,3호기 원자로로 번지지 않았다.

방사선이 가득 찬 비상 발전기실에 젊은 직원들이 들어가는 것을 막고 대신 들어가서 하반신을 방사선 물에 담근 채 비상 발전기 사고를 막은 전기기사 알렉산드르 렐레첸코는 2,851 뢴트겐에 피폭됐다.

 

그는 2주 뒤 키예프 병원으로 방사선 피폭 증후군으로 사망했다.

구 소련 정부는 그에게 최고 등급인 레닌 훈장을 수여했다.

 

3호기 근무조장 유리 박다사로프는 4호기 폭발 직후 상급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시를 어긴 채 3호기 원자로를 직접 정지시켜 추가 폭발을 막았다.

발전소 폭발 당시 현장으로 달려간 37개 소방대의 소방관 186명도 영웅들이었다.

 

보호 장비 없이 불을 끈 소방대원들

황당하게도 구 소련 정부는 발전소 소속 소방대에 방사선 안전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심지어 방사선 피폭을 막는 특수복과 특수 호흡기도 지급하지 않았다.

그 바람에 이들은 방사선 화염이 넘실거리는 원자로에 보호복도 없이 들어가 불을 껐다.

 

브류하노프 소장이 절연 물질 대신 발전소 옥상에 바른 역청이 녹으면서 소방대원들의 신발에 들러붙고 유독 가스를 내뿜었는데, 소방대원들은 이를 고스란히 들이마시며 화재를 진압했다.

소방대원들 상당수가 원자력 화상으로 검게 타들어가며 피를 쏟고 죽어갔다.

발전소 화재를 진압하다가 방사선에 피폭돼 처참하게 죽어간 소방대원들. 현재 약 30개국에서 440여기의 원자력 발전소를 가동중이다. 블루레이 캡처.

의사와 간호사들도 변변한 보호장구 없이 흰 가운만 입은 채 발전소 직원들과 소방대원들을 치료했다.

그들 역시 피해자들로부터 방사선에 피폭돼 두통과 구토에 시달리면서도 병원을 떠나지 않았다.

 

폭발한 원자로 3호기에 들어가서 물을 빼낸 발전소 직원들도 있었다.

원자로 지하실에 가득 찬 방사선에 오염된 냉각수가 지하로 스며들어 퍼져 나가면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어 냉각수를 빼내는 밸브를 열어 이를 막아야 했다.

체르노빌 사고는 진실을 은폐한 거짓이 부른 참사였다. 발전소 직원 3명이 잠수복을 입고 지하에 내려가 방사능 냉각수를 빼냈다. 블루레이 캡처.

그야말로 죽으러 들어가야 하는 이 일에 3명의 직원이 자원해 잠수복을 입고 지하로 내려가 3,200톤의 냉각수를 밖으로 빼냈다.

이들은 2019년에도 살아남아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으로부터 최고 등급인 금성 훈장과 영웅 메달을 받았다.

 

알몸으로 지하 터널 파고 죽어간 광부들

놀라운 것은 광부들이었다.

녹아내린 노심이 원자로 바닥에 뭉쳐 있었는데 지하로 흘러들지 못하도록 발전소 바닥에 터널을 파서 빼내야 했다.

 

여기에 소련 전역에서 모아 온 광부 400명이 투입됐다.

광부들은 폭발로 지반이 약해져 발전소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어떠한 전동 공구도 사용하지 못하고 맨 손으로 굴을 팠다.

 

거기에 광부들은 40도 가까이 치솟는 지하 열기 때문에 방사선 물질이 날릴 수 있어 냉방장치를 설치하지 못하면서 보호 장구는커녕 옷까지 모두 벗은 채 일을 했다.

그렇게 광부들은 교대로 24시간 일해 한 달 만에 150미터짜리 굴을 완성했다.

방사선 낙진이 퍼질까봐 선풍기도 없이 찜통같은 지하에서 알몸으로 굴을 판 광부들. 블루레이 캡처.

당연히 광부들은 엄청난 방사선에 피폭됐다.

입된 광부의 대부분이 20, 30대였는데 4분의 1이 40세 이전에 사망했다.

 

로봇도 고장나는 곳에 투입된 인간 로봇들

나중에 녹아내린 노심이 식으며 굳어버려 광부들이 목숨 바쳐 뚫은 지하 터널은 무용지물이 됐다.

그리고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현장에 투입된 군인들이 있었다.

 

원자로가 폭발하며 건물 지붕 여기저기로 튕겨나간 흑연을 제거하는 일에 군인들이 투입됐다.

처음에는 무인 조종 로봇을 보냈다.

무인 로봇이 폭발로 건물 지붕에 흩어진 원자로 흑연을 제거하는 일에 투입됐으나 모두 강한 방사선 때문에 고장났다. 블루레이 캡처

구 소련에서 달 탐험용으로 개발한 STR-1 원격 조종 로봇 2대를 올려 보냈다.

하지만 강력한 방사선에 얼마 버티지 못하고 고장 났다.

 

할 수 없이 독일에서 원조해준 무인 조종 로봇을 투입했으나 마찬가지로 방사선에 파괴됐다.

결국 최후의 수단으로 '생체 로봇'이라는 자조적인 별명으로 불린 군인들이 선택됐다.

로봇도 고장나는 곳에 투입된 군인들. 변변한 보호장비 없이 투입된 그들은 생체 로봇 그 자체였다. 블루레이 캡처.

누군가 처리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차출된 군인들은 시간당 1만 뢴트겐의 방사선이 쏟아져 나오는 지붕으로 올라갔다.

 

1만 뢴트겐의 방사선은 사람을 1분 만에 죽일 수 있다.

그래서 병사 1인당 40초 동안만 작업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병사들은 마땅한 보호장비도 없어서 납을 덧대어 손으로 꿰맨 앞치마 같은 보호복을 입었다.

그마저도 방사선이 워낙 강력해 한 번 입으면 바로 버려야 했다.

 

오로지 납 앞치마와 삽 한 자루만 들고 뛰어든 군인들은 40초 동안 부지런히  흑연 덩어리를 치우고 40초를 알리는 종이 울리면 허둥지둥 철수했다.

그렇게 생체 로봇 역할을 한 군인들은 수년 안에 대부분 사망했다.

 

그들에게는 목숨 값으로 100 루블이 지급됐다.

75달러, 약 8만 원 정도에 해당하는 돈이다.

방사선에 오염된 각종 차량과 헬기 등을 한 곳에 모아 폐기했다.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블루레이 캡처.

로봇과 병사들의 흑연 처리 작업은 키예프의 영화감독 블라디미르 세브첸코가 현장 옥상에 올라가 카메라에 담았다.

세브첸코는 보호 장비도 없이 옥상에 올라갔다가 방사선에 피폭돼 1년 뒤 사망했다.

 

방사선 덩어리였던 그의 카메라도 땅에 묻혔다.

청산인들도 빼놓을 수 없다.

 

"사람이 할 짓 아냐" 청산인들의 비극

청산인이란 체르노빌 발전소 주변과 프리퍄티에 떨어진 방사선 낙진과 잔해를 치우는 일을 1년여에 걸쳐 한 사람들이다.

군인과 각지에서 뽑은 민간인 등 24만 명이 투입됐다.

 

이들은 출입금지 구역에서 오염된 마을을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건물들을 화학물질로 세척했다.

또 모든 흙을 걷어내 구덩이에 묻은 뒤 새 흙으로 교체했으며 아스팔트를 새로 깔았다.

방사선 청소 작업에 투입된 청산인들. 사고가 난지 30여년이 지났지만 체르노빌의 여러 작물과 토양에서는 지금도 암을 유발하는 방사선 물질이 기준치 이상 검출된다. 블루레이 캡처

그리고 프리퍄티 지역에 버려둔 애완동물들을 찾아내 쏘아 죽이는 일도 했다.

어차피 애완동물들도 방사선에 피폭돼 고통스럽게 죽어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차라리 빨리 죽이는 것이 자비를 베푸는 방법이었다.

 

워낙 고통스러운 작업이어서 청산인들은 술에 많이 의지했다.

소련 당국은 청산인들에게 작업이 끝난 뒤 5년간 아이를 갖지 말라고 권고했다.

청산인으로 투입된 사람들은 프리퍄티 등에서 방사선에 피폭된 반려동물을 사살하는 일을 했다. 블루레이 캡처

체르노빌은 인류 역사상 되풀이돼서는 안 될 끔찍한 재앙이었다.

그렇지만 사고 규모에 비해 비교적 정리가 빨리 된 편인데 이것은 모두 헌신적으로 일하고 죽어간 이름 없는 영웅들 덕분이다.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고르바초프는 체르노빌 사고를 빌미로 정적들을 제거해 입지를 다졌다.

하지만 소련은 체르노빌 사고 이후 과거의 위상을 잃고 급격히 쇠퇴했다.

우크라이나는 관광 수입을 올리려고 체르노빌 발전소의 제어실을 관광객에게 공개하고 있다. 제어실에 들어가려면 보호복을 입어야 한다. 블루레이 캡처

훗날 고르바초프는 "체르노빌 사고가 구 소련 붕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더 이상 국민들이 정부를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놀라울 정도로 잘 만든 수작 드라마

HBO 5부작 드라마로 기획된 요한 렌크 감독의 '체르노빌'(Chernobyl, 2019년)은 상당히 잘 만든 수작이다.

다큐멘터리처럼 사건을 연대기 순으로 쫓아가며 보여줘 전모를 이해하기 쉽다.

 

도대체 체르노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다면 이 드라마를 보는 게 좋다.

그만큼 객관적이고 사실적이다.

 

물론 영화적 재미를 위해 과장하고 만들어낸 부분도 있다.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는 과정을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울라나 호미유크(에밀리 왓슨)라는 가공의 여성 과학자를 창조했다.

에밀리 왓슨이 연기한 여성 과학자 울라나 호미유크는 극적 재미를 위해 만든 가상 캐릭터다. 모든 과학자들의 양심을 대변하는 역할이다. 블루레이 캡처.

그렇더라도 역사적 진실이라는 근본적 뼈대를 해치지 않는다.

그만큼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이해를 돕기 위한 선에서 가상의 내용이 추가됐을 뿐이다.

 

레가소프 박사 등 과학자들이 사고의 원인을 찾아내는 과정을 추리소설처럼 구성해 긴장감이 넘치며 흥미진진하다.

여기에 방사능 피폭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줘 원자력 사고가 얼마나 끔찍한지 간접적으로나마 절감할 수 있다.

 

더불어 사고 수습을 위해 투입된 사람들이 자신을 돌보지 않고 헌신적으로 일하는 장면은 눈물겨울 정도로 감동적이다.

그렇다고 억지로 쥐어짜 내듯 감동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거리를 유지한 채 담담하게 보여준다.

 

렌크 감독은 얄미울 정도로 감정을 절제할 줄 안다.

소방관이었던 남편 때문에 피폭된 아내가 신생아마저 잃은 뒤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는 장면에서는 아무 대사도 등장하지 않는다.

 

비현실적인 악몽을 증언하듯 오직 음악이 낮게 깔리며 몽환적으로 느리게 화면이 흘러간다.

그 바람에 눈에 보이지 않는 침묵의 살인자인 방사선 피폭의 고통이 점증적으로 다가온다.

원자로 4호기의 폭발 순간을 보여주는 장면. 블루레이 캡처.

렌크 감독은 재난물이라고 아비규환의 무질서하고 폭력적인 상황만 보여주지 않는다.

슬로 모션으로 재현되는 방사선 낙진의 순간은 마치 벚꽃놀이를 보는 것처럼 아름답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비극적 순간의 고통과 공포가 더 강조된다.

드라마적 재미와 진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데 성공한 훌륭한 작품이다.

 

국내 출시된 4K 타이틀은 4K 2장, 일반 블루레이 2장 등 총 4장의 디스크로 구성됐다.

2160p UHD의 2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4K 타이틀은 화질이 좋다.

 

디테일이 아주 뛰어나지는 않지만 윤곽선이 깔끔하고 장중한 분위기의 색감을 잘 살렸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간헐적인 서라운드 효과를 들려준다.

체르노빌 발전소 앞에 설치된 사고 기념비. 우크라이나 정부는 원자로를 '석관'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차폐물로 덮었다.

주로 음향이 전방에 집중된 가운데 서라운드 효과가 나타나는 부분에서 소리의 이동성이 확실하게 살아난다.

부록으로 각 에피소드의 제작과정과 캐릭터 소개 등이 한글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각 부록들은 HD 영상으로 제작됐다.

'추천 DVD / 블루레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옥의 묵시록(4K)  (2) 2021.08.15
특전 유보트 감독판(블루레이)  (0) 2021.08.05
와호장룡(4K 블루레이)  (14) 2020.12.20
트루먼쇼(블루레이)  (4) 2020.11.07
300(4K 블루레이)  (16) 2020.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