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추천 DVD / 블루레이

지옥의 묵시록(4K)

울프팩 2021. 8. 15. 17:43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 감독은 1979년에 영화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을 개봉한 뒤 2번에 걸쳐 수정 작업을 했다.
원래 극장 개봉판은 스튜디오 요구에 따라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난해한 장면들을 잘라내고 너무 길어지지 않도록 상영 시간을 맞추면서  2시간 30분 분량으로 줄었다.

코폴라 감독은 잘려나간 부분이 못내 아쉬워 2001년 49분 분량을 추가해 3시간 16분 길이의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판을 내놓았다.
리덕스판은 다양한 부분이 추가되면서 내용이 풍성해졌다.

하지만 코폴라 감독은 2019년에 개봉 40주년을 맞아 재상영하면서 이 작품을 다시 손봤다.
그것이 바로 '파이널 컷'이다.

파이널 컷은 극장판보다 길지만 리덕스판보다 짧다.
코폴라 감독이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한 16분 분량을 잘라내 약 3시간으로 맞췄다.

대표적인 경우가 위문 공연 온 바니 걸들과 병사들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 등인데 파이널 컷에서는 이 부분이 공연 장면만 들어있고 나머지는 사라졌다.
코폴라 감독 생각처럼 굳이 없어도 되는 장면이지만 오히려 영화의 윤기를 더해줘 지나치게 건조하고 무겁게 만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있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파이널 컷보다는 리덕스 판에 더 점수를 주고 싶다.
'대부'와 더불어 코폴라 감독의 대표작인 이 작품은 미국 영화 역사상 손에 꼽히는 명작이다.

내용은 베트남 전쟁 중 밀림 한가운데 자신의 왕국을 구축한 과거 전설적인 군인 커츠 대령(말론 브란도 Marlon Brando)을 제거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은 윌라드 대위(마틴 쉰 Martin Sheen)의 여정을 다뤘다.
영화는 베트남전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전쟁영화라기보다 미스터리물에 가깝다.

베일에 쌓여 있는 커츠 대령의 행적을 쫓아가는 과정에서 그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식이다.
결국 관객이나 등장인물들이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광기로 얼룩진 거대한 공포다.

코폴라 감독은 살아남기 위해, 또는 명분을 위해 전장을 누비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무시무시한 광기의 이면에 도사린 공포를 냉정하게 보여준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미지의 공포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미친 듯이 총질을 해댄다.

커츠 대령이 자신만의 왕국 속에 틀어박혀 기행을 일삼는 것도 결국 알 수 없는 인간의 광기가 빚어내는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다.
커츠 대령은 결국 심연의 공포에서 스스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자살하듯 윌라드 대위에게 자신의 존재와 공포로 세운 왕국을 맡긴다.

그가 마지막 남긴 유언 같은 한마디가 '공포'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여기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미군들이 월맹군이나 베트콩과 싸우는 장면은 그렇게 많이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내면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미군들의 몸부림이 빚어내는 충동적인 총질이 더 많이 나온다.
즉 외부의 적이 아닌 내부의 공포와 싸우는 과정이다.

그런 점에서 폭력 장면에 의존하는 일반적 전쟁 영화와 달리 이 작품은  난해하고 심오하다.
사유하듯 철학적 메시지를 시적인 대사로 툭툭 던지지만 쉽게 공감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친절한 설명을 곁들이거나 이해할만한 장면들이 나오지도 않는다.
특히 커츠 대령의 변화를 보여줄 만한 단서들은 윌라드가 갖고 있는 서류 몇 가지를 보여주는 것이 전부다.

그렇다 보니 영화 속에서 가장 의문의 존재인 커츠 대령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
오직 관객의 사유와 경험으로 영화 속 비어있는 틈을 메워야 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나이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예전 학창 시절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충격적인 영상과 음악에만 집중했는데, 나이 들어 다시 보면서 과거에 보지 못했던 모습들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시각적으로도 흥미로운 작품이다.
특히 미군들이 마치 게임을 즐기듯 바그너의 '발키레의 비행'을 요란스럽게 울려대며 헬기로 베트콩 마을을 공격하는 모습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영화사에 길이 남는 명장면이다.

또 커츠 대령의 근거지와 그곳에서 벌어지는 원주민들의 축제, 전장에서 파도타기를 원하는 미군 지휘관의 모습은 악과 선의 구분 없이 광기에 매몰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불편한 진실에 대한 탐구이다.

제작 당시 미 국방부는 이 영화에 대한 지원을 거절했다.
전장에서 마약을 즐기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미군들의 모습이 곱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이 패해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월남전의 이면을 솔직하게 보여준데 있다.
코폴라 감독은 수많은 젊은이가 허무하게 죽어간 월남전의 진실을 숨긴 미국 정부와 여기 동조한 언론이 추악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이 영화를 고발하는 심정을 담아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만들었다.
결국 윌라드가 맞닥뜨린 커츠 대령은 미국이 숨기고자 한 월남전의 진실이자, 세상이 보지 않으려 하는 인간 본성 중 하나인 광기와 악에 대한 표상이다.

이번에 국내 출시된 4K 타이틀은 이 작품의 완결판 같은 타이틀이다.
극장판, 리덕스, 파이널 컷 등 3종류 판본이 일반 블루레이와 4K 등 총 6장의 디스크에 걸쳐 각각 수록됐다.

2160p UHD의 2.3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4K 타이틀은 화질이 기대 이상으로 아주 좋다.
필름의 고운 입자감이 느껴지는 영상이 잡티나 스크래치 하나 없이 깨끗하게 복원됐다.

마치 바랜 듯 눅진한 색감은 영화 분위기와 아주 잘 어울리며 시대를 뛰어넘어 추억에 젖게 만든다.
돌비 애트모스를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좋다.

리어 채널과 프런트 채널을 오가는 헬기의 로터음을 들어보면 마치 전장의 한 복판에 앉아있는 느낌이다.
코폴라 감독이 파이널 컷 작업을 하면서 저음을 신경 써서 보강한 덕분에 사운드의 무게감도 더 실렸다.

전폭기들이 정글에 네이팜탄을 떨어뜨리는 장면을 보면 폭발음이 웅장하게 들린다.
부록들은 별도의 디스크에 나눠 수록된 만큼 다양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리덕스판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미군이 네이팜탄으로 숲을 폭격하는 초반 장면은 원래 버린 필름에서 살렸다. 코폴라 감독이 우연히 편집실에 들렸다가 한쪽에 쌓인 버린 필름통을 발견하고 돌려보다가 실수로 찍힌 폭격 장면을 발견해 영화에 넣고 도어스의 노래 'The End'를 깔았다.
실감 나는 연기를 위해 술을 잔뜩 마시고 연기하던 마틴 쉰은 거리 조절이 안돼 실제로 거울을 쳐서 손을 베었다. 피범벅이 된 손은 분장이 아닌 실제 상황이다.
나중에 유명 스타가 된 배우들이 여럿 나온다. 서류를 보는 장교는 해리슨 포드, 사복을 입은 CIA 요원은 이 영화의 조감독이다.
월남 장면은 모두 필리핀에서 찍었다. 필리핀 독재자였던 마르코스 전 대통령이 헬기 등 미군 장비들을 제공했다. 이 영화는 전 세계에서 1억 5,0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고 골든글로브 감독, 남우조연, 음악상 등 3개 부문과 아카데미 촬영상, 음향상을 받았다.
원래 조지 루카스가 감독할 예정이었으나 '스타워즈' 촬영 중이어서 존 밀린저에게 제의했으나 그도 다른 작품을 촬영 중이어서 기획 겸 제작자였던 코폴라가 감독을 맡게 됐다.
TV 특파원으로 나온 인물이 코폴라 감독, 카메라 맨은 촬영감독 비토리오 스토라로다. 원래 섭외한 배우들이 도착하지 못해 그들이 대신 연기했다.
마틴 쉰이 맡은 윌라드 대위 역은 하비 케이틀이 내정돼 초반 촬영까지 했다. 그러나 코폴라 감독은 강렬하고 적극적인 하비보다 수동적이고 표정이 풍부한 배우를 원해 마틴 쉰으로 교체했다.
바그너의 '발키레의 비행'을 커다랗게 울려대며 공격하는 미군들의 모습이 압권이다. 코폴라 감독은 영화 음악을 평소 감명받은 토미타라는 일본 작곡가에게 맡길 생각이었으나 계약 문제 때문에 그가 맡을 수 없게 돼 아버지 카마인 코폴라에게 맡겼다.
미군들이 전장에서 파도를 타는 장면은 실화다. 헬기 장면은 헬기 내부까지 모두 실제로 비행하며 공중에서 촬영했다.
원작은 조셉 콘라드의 소설 '암흑의 심연'이다. 코폴라 감독은 이 작품을 "전쟁물이 아닌 초현실세계로 진입하는 영화"라고 강조했다.
이 영화에는 코폴라 가족이 총출동했다. 군의관으로 나온 인물은 조카인 로만 코폴라. 그는 당시 뉴욕에서 유명 DJ였다.
로버트 듀발이 또 다른 전쟁 미치광이 킬고어 중령을 연기. 코폴라 감독은 유진 존 감독의 다큐멘터리 '전쟁의 얼굴'을 감명 깊게 보고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의 제작을 결심했다.
플레이보이 모델인 플레이걸들의 위문 공연은 원래 TV 시리즈 '원더우먼'의 주인공 린다 카터를 섭외했으나, 그가  원더우먼 시리즈를 찍게 돼 교체됐다.
이 흑인 배우가 훗날 '매트릭스'에 나오는 로렌스 피쉬번이다. 당시 그는 만 14세였다. 코폴라 감독은 미군 중에 만 16세 소년도 참전한 사실을 발견하고 관객이 안타까움을 느끼도록 일부러 어린 배우를 지목했다.
대원들이 플레이걸들과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극장판과 파이널 컷에 없다. 촬영 당시 태풍이 덮쳐 세트가 박살 나 다시 세우고 촬영했다.
프랑스인들의 농장 장면이 리덕스판에 추가됐다. 여기 등장하는 아이들은 실제 코폴라의 자식들이다. 아편 흡입 장면은 실제로 배우들이 아편을 피우며 촬영. 배우뿐 아니라 제작진들도 마리화나 같은 환각제나 각성제를 많이 사용했다.
당시 36세였던 마틴 쉰은 담배를 하루 3갑씩 피우고 건강도 좋지 않았다. 그래서 촬영 기간에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키며 죽을 뻔해 5주 동안 촬영이 중단됐다.
원작 '어둠의 심연'은 아프리카 밀림 깊숙이 틀어박힌 상아 무역업자 커츠를 찾아 콩고강을 거슬러 오르는 사람들 이야기다. 코폴라 감독은 이 작품에 집까지 저당 잡히며 사재를 투자했다.
여기저기 놓인 머리는 사람들이 구덩이 속에 들어가 연기했다. 괴팍한 말론 브란도는 사진작가로 나온 데니스 호퍼를 아주 싫어했다. 같이 있는 것조차 싫어서 바나나 껍질을 던지며 욕을 했다.
주당 100만 달러를 받고 출연한 말론 브란도는 스스로 부끄러워할 만큼 뚱뚱했다. 그래서 전신이 나오는 일부 장면을 피트 쿠퍼가 대신 찍었다. 처음에 원작을 읽지 않았던 브란도는 삭발을 요구한 감독과 맞서 머리를 깎지 않겠다고 버텼으나 나중에 원작을 읽고 스스로 삭발했다.
원주민들이 소를 잡는 장면은 특수 효과가 아닌 실제 상황이다. 필리핀 바기오족의 물소 공양 의식을 그대로 촬영했다. 원래 2마리의 소를 준비했으나 촬영이 잘돼 1마리만 잡았다.
원작인 '어둠의 심연'은 1939년 오손 웰스가 자신의 첫 영화로 준비했다. 그는 커츠 역을 맡아 세트까지 제작했으나 예산 초과를 우려한 제작사가 손을 떼면서 포기해 대신 '시민 케인'을 만들었다.


'추천 DVD / 블루레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4K)  (4) 2021.11.20
쇼생크 탈출(4K)  (6) 2021.10.02
특전 유보트 감독판(블루레이)  (0) 2021.08.05
체르노빌(4K 블루레이)  (0) 2021.01.30
와호장룡(4K 블루레이)  (14) 2020.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