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거장 세르게이 본다르추크 감독이 만든 '인간의 운명'(Sudba Cheloveka, 1959년)은 묵직한 제목 만큼이나 선이 굵은 영화다.
원작은 '고요한 돈강'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러시아의 문호 미하일 숄로호프의 동명 중편 소설.
그야말로 거장과 거장이 영상으로 만난 작품이다.
내용은 가정을 이뤄 행복하게 살던 러시아 남성이 제 2 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참전했다가 집안이 풍비박산나는 얘기다.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혀 비참한 생활을 하는 동안 아내와 딸은 독일군의 폭격으로 죽고, 하나 남은 아들마저 포병 장교로 근무하던 중 전사한다.
힘들게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 돌아온 주인공은 하루 아침에 삶의 희망을 모두 잃어버린 셈이다.
그러던 중 전쟁통에 고아가 된 어린 소년을 발견하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면서 주인공은 불쑥 소년의 아버지를 자처하고 나선다.
그렇게 하나가 된 두 사람의 등 뒤로 '단단한 의지를 가진 저 남자가 잘 살기를 바란다'는 작가 숄로호프의 기원이 흐른다.
이 영화는 주인공의 삶을 통해 억센 운명을 개척하는 강철 같은 인간의 의지를 보여준다.
영화 속 주인공의 삶만 놓고 보면 인간의 운명이란 결국 살아 보려는 희망과 의지로 척박한 환경을 개척하는 삶이다.
즉, 이 영화를 만든 본다르추크 감독이나 원작 소설을 쓴 숄로호프가 강조한 인간의 운명은 살아야겠다는 의지 그 자체인 셈이다.
훌륭한 원작 만큼 본다르추크 감독이 만든 영상 또한 수려하다.
본다르추크 감독은 그동안 배우로 활동하다가 이 영화로 감독 데뷔를 했는데, 초보 감독의 솜씨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영상 감각이 세련됐다.
물 흐르듯 씻겨 내려가는 장면 전환이나 비스듬히 내려다보는 듯한 독특한 앵글, 찬란하게 부서진 햇살을 역광으로 잘 살린 그림 등은 본다르추크의 탐미적 시선을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다.
에이젠슈타인 감독의 영향으로 표현주의적이고 상징적인 묘사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그런 것들이 결코 계몽영화나 선전영화처럼 우악스럽고 투박하지 않아 정감이 간다.
더불어 힘든 삶을 산 주인공을 맡은 본다르추크 감독의 연기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빛을 뿜어내는 듯한 강렬한 눈빛과 고집스레 꾹 다문 입이 강인한 주인공 역할과 잘 어울렸다.
4 대 3 풀스크린의 흑백 영상인 DVD 타이틀은 오래 전 작품인 만큼 화질은 그저 그렇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며, 부록으로 숄로호프와 본다르추크의 기록물, 스탈린의 러시아군 열병식과 제 2 차 세계대전 종전 당시 기록영상물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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