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자이언트 로보 : 지구가 정지하는 날 (블루레이)

울프팩 2013. 6. 12. 07:02

예전 DVD로 나온 로봇 애니메이션 '자이언트 로보 : 지구가 정지하는 날'(1992년)을 보고 반한 것은 우선 노래 때문이다.
거대한 로봇이 버티고 선 화면 위로 뜻밖에도 도니제티의 유명한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 나오는 아리아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 흘렀다.

로봇 만화에 뚱딴지처럼 들어간 오페라 아리아가 처음에는 황당했지만, 들으면 들을 수록 절절한 비장미가 살아나는게 잘 어울렸다.
오래된 신파극처럼 다소 감정과잉으로 과장된 감도 있지만 오페라 아리아가 이렇게 잘 어울리는 로봇 애니메이션도 없을 것이다.

미래지향적인 로봇물에 들어간 클래식 음악만큼이나 그림 또한 엉뚱하다.
거대한 로봇들 사이로 중국 고전인 삼국지와 수호지에 나오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한 쪽에선 로봇들이 광선을 쏘아대는 사이로 고색창연한 양산박 호걸들이 등장해 칼과 창을 번뜩이며 화살을 날린다.
이쯤되면 사실상 컬트다.

무려 7년에 걸쳐 7편의 OVA 시리즈로 선보인 이 작품의 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원작자인 요코야마 미츠테루가 1967년 주간 소년잡지에 연재한 만화를 토대로 이마가와 야스히로 감독이 만든 이 작품은 그에 대한 오마주이자, 그가 창조한 캐릭터들이 총출동하는 올스타전이다.

요코야마 미츠테루는 '우주소년 아톰'을 그린 데즈카 오사무, '사이보그 009'를 만든 이시노모로 쇼타로와 더불어 일본 애니메이션의 토대를 닦은 3대 거장 중 하나다.
'철인 28호' '바벨 2세' '요술공주 샐리' 등 제목만 들어도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오르는 작품들이 모두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손에서 나왔다.

1970년대 흑백TV 시절, 아톰부터 009, 철인28호가 나오는 '어린이 시간'이면 동네에서 뛰어놀던 애들이 싹 사라졌다.
TV가 있는 애들은 집으로 돌아갔고, 당시 고가제품이었던 TV가 없는 아이들은 부모에게서 어렵게 타낸 동전을 들고 만화가게로 달려갔다.

그만큼 이 작품을 보면 그 시절 추억이 잔뜩 묻어 있다.
즉, 향수를 달래는 복고풍 그림으로 과학기술의 오용을 경계하는 미래지향적 이야기를 풀어낸 오묘한 작품이다.

그런 점에서 1970년대 어린 시절을 보낸 '아저씨'들을 위한 작품일 수 있고, 그 이후 세대들에게는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복고풍 그림이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오는 작품일 수도 있다.
클래식 음악과 로봇, 복고와 미래의 만남 만큼이나 아저씨 팬과 신진 팬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아이러니의 역발상이 빛난 작품이다.

이번에 3장의 블루레이와 1장의 DVD 등으로 구성돼 국내에 한정 출시된 블루레이는 과거 DVD박스세트는 물론이고 일본판 블루레이보다 구성이 낫다.
화질이 월등하게 개선됐으니 DVD보다 좋은 것은 당연하고, 일본판에 들어간 OST가 국내판에서 빠지면서 대신 외전 격인 긴레이 시리즈 3편이 DVD로 새롭게 수록됐다.

코믹하면서도 성인층을 겨냥한 미소녀물 성격의 긴레이 시리즈는 과거 DVD 박스세트에도 포함되지 않았던 작품으로, 이번에 처음 선보였다.
그러나 DVD 박스세트에 들어간 국내 성우들의 더빙 장면과 인터뷰 부록은 빠졌다.

1080p 풀HD의 4 대 3 풀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는 화질이 아주 좋다.
지난해 제작 20주년을 맞아 오리지널 필름에서 4K로 다시 텔레시네된 영상 덕에 또렷한 윤곽선과 물로 씻은 듯 창창한 색감을 자랑한다.

그러나 음향은 오리지널 마스터 음원을 분실하는 바람에 DVD 제작 때 사용한 음원을 토대로 LPCM 2.0 채널로 수록됐다.
부록으로 총 7편 가운데 4편의 에피소드에 제작진 음성해설이 실렸고, 음악 녹음 광경, 대담 등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더불어 이번 한정판에는 작품 해설집이 별도 책자로 함께 수록됐다.
11만원의 높은 가격이 충분히 제 값어치를 하는 타이틀이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이번 블루레이는 오리지널 필름을 그대로 읽어 들일 수 있는 ARRISCAN 장비를 이용해 4K 고화질 영상으로 텔레시네됐다. 그러면서 원본 필름에 있던 잡티와 손상 흔적은 보정 작업을 거쳐 화질이 아주 좋다.
추억의 로보킹도 보인다. 이 작품은 핵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일본인들의 생각이 곳곳에 보인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인 시즈마 박사와 가운데 포글러 박사는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작품 '철인 28호'에 나오는 캐릭터들이다.
여주인공 긴레이가 활약하는 3편의 외전이 따로 제작됐다. 국내판 블루레이에 3작품 모두 수록됐다.
1934년생인 요코야마 미츠테루는 1960년대 '철인 28호' '요술공주 샐리' 등을 선보였으며 1970년대 국내 만화가 작품으로 둔갑해 어문각에서 출간됐던 '바벨 2세' 및 '삼국지' '수호지' 등을 그렸다. 그는 69세때인 2004년 집에서 발생한 화재로 사망했다.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올스타전 같은 이 작품에 신행태보 대종, 공명, 청면수 양지 등 중국 고전 속 인물들이 나오는 이유는 그가 그린 삼국지와 수호지가 크게 히트했기 때문.
그만큼 이 작품은 요코야마 미츠테루가 그린 원작과 내용이 크게 다르다. 캐릭터들도 청면수 양지가 여자로 바뀌는 등 적당한 각색과 윤색을 거쳤다.
원작은 1967년 만화로 처음 나왔고, 같은해 도에이에서 TV용 실사판 시리즈로 만들었다.
머리 색깔 등이 달라지긴 했지만 요술공주 샐리도 등장. 1960~70년대 TV 만화계를 주름잡은 데즈카 오사무, 요코야마 미츠테루, 이시노모로 쇼타로의 작품들은 스타일이 비슷하다. 커다란 눈을 가진 둥글둥글한 곡선을 살린 인물과 정지 프레임을 이용해 극적 효과를 강조하면서 제작비를 절약한 점 등이 당시 저패니메이션의 대표적 특징이다.
불사신 무라사메 겐지도 '철인 28호'에 나오는 캐릭터다.
어려서 만화책으로 꽤나 열심히 봤던 '바벨 2세' 캐릭터들도 등장.
음악은 아마노 마사미치가 작곡했으며 그의 지휘로 폴란드의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했다. '남몰래 흘리는 눈물'은 이마가와 야스히로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오페라 아리아여서 사용.
이마가와 야스히로 감독이 작품 구성과 각본도 맡았으며, 1992년부터 98년까지 7편을 만들었다. '에반게리온'의 안노 히데아키 감독도 참여해 악당 로봇의 원화와 작화를 맡았다. '청의 6호'와 '애니매트릭스'의 마에다 마히로 감독도 키 애니메이터로 참가했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와 아기자기한 캐릭터들의 대립이 흥미로운 작품. 우리말 더빙은 '엑스파일'의 이규화, '카우보이 비밥'의 양정화 등이 참여했다.

Luciano Pavarotti - 'Una Furtiva Lagrima'(남몰래 흘리는 눈물)
자이언트 로보 프리미엄 리마스터 에디션 전편 BOX (4Disc)
이마가와 야스히로
꽃이 있는 식탁
고은경 저
자이언트 로보:THE ANIMATION 지구가 정지한 날 얼티밋에디션 UE(4disc) 탄생 20주년기념 우리말 더빙포함 스틸북 케이스 한정판(4K 필름스캔 HD리마스터)
이마가와 야스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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