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칼리귤라'(Caligula, 1980년) 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작품도 드물 것이다.
우선 제작진의 면면을 보면 대충 어떤 영화인 지 감이 온다.
** 그들이 왜 뭉쳤을까 **
'모넬라' '올 레이디 두 잇' '살롱 키티' 등 에로틱한 영화로 유명한 틴토 브라스 감독이 만들었고, 포르노잡지인 펜트하우스가 제작했다.
이쯤되면 대충 감이 온다.
하지만 출연진을 보면 막연하게 포르노성 영화라는 추측이 무색해진다.
'시계태엽 오렌지' 'if...'의 말콤 맥도웰, '아라비아의 로렌스' '마지막 황제'의 피터 오툴, '백야' '레드'의 헬렌 미렌, '샤인' '간디' '미스터 아더'의 존 길구드 등 쟁쟁한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여기에 '벤허'의 공동 각본을 쓰고 '링컨' 평전을 집필한 미국의 유명 작가 고어 비달이 극본을 썼다.
아주 막강한 제작진이다.
이들은 함께 뭉쳐 서기 37년 로마제국의 제 3대 황제로 등극한 칼리귤라의 난삽하고 엽기적이며 잔혹한 이야기를 변태 포르노같은 영화로 만들었다.
이름꽤나 알려진 배우들이 왜 이런 영화에 출연할까 싶은데 피터 오툴, 존 길구드처럼 비달과 개인적 친분에 얽혔거나, 틴토 브라스 감독의 설득 등으로 영화에 합류했다.
그렇다보니 영화가 복잡 미묘하다.
틴토 브라스나 펜트하우스의 성향을 다분히 살린 포르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엽기적인 성적 묘사가 적나라하게 나오고, 고어 비달의 작가적 경향이 녹아든 정치적 비판 또한 무겁게 깔려 있다.
그 바람에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나름 볼 만 하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유명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처럼 "전혀 쓸모없고 부끄럽기 짝이 없으며 구역질이 나는 쓰레기"라고 혹평하며 영화를 보다가 나가버린 경우도 있다.
볼 만 하다는 것은 적나라한 성기 노출과 성행위가 나오는 포르노 같은 영상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살로 소돔의 120일'처럼 작품성이 있거나 정치적 메시지가 강한 숨은 걸작은 아니다.
** 치열한 싸움과 복잡한 판본 **
오히려 영화의 허명을 높인 것은 제작진들간에 물고 뜯는 싸움과 복잡한 판본이다.
펜트하우스는 1976년 149분짜리 오리지널판본의 내부 시사회를 거치고 나서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 틴토 브라스 감독이 관객에게 충격을 주기 위해 찍은 원로원 의원과 괴물같은 여자의 정사 장면은 제작진에게도 충격이었다.
그래서 영화 제작을 맡은 펜트하우스 창간자 밥 구치오네를 비롯한 펜트하우스측은 틴토 브라스를 배제하고 영화를 따로 편집했다.
틴토 브라스 감독이 찍은 일부 장면들을 잘라내고 여성들의 레즈비언 성애 장면을 비롯해 하드코어적인 정사 장면을 새로 찍어 추가했다.
그 바람에 영화 제목이 '고어 비달의 칼리귤라'로 바뀌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틴토 브라스 감독은 제작진을 상대로 이탈리아에서 소송을 벌였다.
틴토 브라스 감독은 소송에서 이겼으나 영화를 다시 바꾸지는 못했다.
그렇게 만든 영화는 영국과 미국에서 각각 100분 안팎의 분량으로 축소돼 혹독한 비판 속에 사라졌다.
이후 작가인 고어 비달도 크레딧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틴토 브라스와 제작진 모두 잇따른 소송에 지쳐 결국 합의했다.
그 바람에 타이틀 크레딧에 "주요 장면은 틴토 브라스가 만들었다"는 문구가 들어갔고, 틴토 브라스 영상과 밥 구치오네가 새로 찍은 영상을 섞어서 156분의 언컷 버전을 만들어 1984년 이탈리아에서 상영했다.
영화 제목도 고어 비달을 뺀 '칼리귤라'로 다시 바뀌었다.
한때 4시간 가까운 210분짜리 영상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1979년 칸영화제 필름마켓에서 156분짜리 언컷 버전과 50여분 분량의 메이킹을 함께 공개했는데 이 둘을 합쳐서 210분짜리 판본이 있는 것처럼 와전됐다.
어쨌든 이 영화의 공식 언컷 버전은 블루레이에 수록된 156분 버전이 맞다.
이 작품은 이런 우여곡절을 거치며 극장 흥행에서는 실패했으나 펜트하우스 작품 가운데 비디오 판매순위 1위를 기록하며 많은 돈을 벌었고, 틴토 브라스의 이름값 또한 올려 놓았다.
** 국내에 정식 공개되지 않은 무삭제 버전 **
국내에는 미국에서 R등급으로 편집한 105분짜리 버전이 상영됐다.
국내에 정식 출시된 DVD도 이 판본을 담았으며, 블루레이는 출시되지 않았다.
156분짜리 언컷 버전은 미국에서 출시된 '임페리얼 에디션' 블루레이로 볼 수 있다.
국내 개봉작인 미국 R등급 버전은 50분 넘게 잘라내는 바람에 더 할 수 없이 밋밋한 영화가 돼버렸는데, 언컷 버전은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강렬한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결국 이 작품은 작품성보다는 충격적 영상으로 승부하는 비주얼 쇼크 무비인 셈이다.
미국판 언컷 블루레이는 영화 본편을 담은 1장의 블루레이 디스크와 부록만 담은 1장의 DVD 디스크 등 2장으로 구성됐으며, 한글은 물론이고 영문 자막조차 없다.
1080p 풀HD의 2.00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좋지 않다.
무엇보다 창고에서 뒤늦게 찾아낸 필름 등 여러 판본을 뒤섞다 보니 장면에 따라 화질이 들쑥날쑥이다.
대체로 윤곽선이 두텁고 미세하게 떨리며 디테일이 떨어진다.
음향은 DTS-HD 5.0을 지원하는데 적당한 서라운드를 들려준다.
부록은 출연배우 및 감독 인터뷰, 제작과정, 비하인드씬 등 풍성한 부록이 들어 있다.
부록 디스크 역시 틴토 브라스 감독 인터뷰를 제외하고는 모두 어떠한 자막도 들어있지 않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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