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미국에서 일어난 래더 게이트는 언론계에 중요한 사건이었다.
당시 미국 지상파 방송사 중 하나인 CBS의 간판 시사보도 프로그램 '60분'은 미국 대통령 관련 중요한 특종을 했다.
당시 재선에 나선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과거 군 복무 비리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1960년대 부시 전 대통령이 월남전 파병 징집을 피하기 위해 텍사스주 방위군에 자원해 조종사로 복무했다는 것이다.
취재진은 부시가 텍사스에서 정상적인 군 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군의 혜택을 받아 기지를 벗어나는 등 편하게 생활했다고 주장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1년이나 비어 있는 부시의 미 공군 복무 기록을 제시했다.
기록에 따르면 부시는 기지를 무단이탈해 1972년 8월 1일 자로 조종사 자격을 정지당했다.
선거를 앞두고 크게 문제가 된 이 보도는 '60분'의 프로듀서였던 메리 메이프스와 CBS의 공신력 있는 간판 앵커 댄 래더가 주도했다.
하지만 이 보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블로거들이 공개된 부시의 군 복무기록에 대해 조작 가능성을 제기했다.
블로거들은 공개된 복무기록에 나타난 타자기 글자 폰트가 당시 쓰지 않던 폰트여서 나중에 누군가 문서를 조작했다는 주장을 폈다.
졸지에 보도 쟁점인 부시의 병역 특혜 의혹은 뒤로 밀려나고 엉뚱하게 폰트의 진위 논란이 이어졌다.
결국 취재팀은 문서의 조작 가능성을 놓고 CBS의 감사를 받게 됐다.
CBS가 고용한 거대 로펌은 취재진을 상대로 정치적 편향성에 따른 거짓 보도 가능성을 집요하게 추궁했다.
즉 부시 전 대통령을 낙선시키려는 정치적 음모에 '60분'이 이용당했거나 가담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 조사였다.
결국 CBS는 취재진의 공정성과 정확성이 부족했다고 판단해 공개 사과 방송을 했고, 부시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뒤 메리 메이프스 PD를 해고했다.
그리고 1980년대를 풍미하고 24년간 자리를 지킨 간판 앵커 댄 래더도 '60분'에서 하차해 CBS를 떠났다.
물론 메리 메이프스와 댄 래더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댄 래더는 CBS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고 메이프스는 사건의 전개 과정을 담은 회고록 '진실과 의무: 언론, 대통령 그리고 권력의 특권'이라는 책을 출판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두 사람은 이 사건으로 수십 년 간 지켜온 언론인으로서 신뢰가 무너진 것을 견딜 수 없었다.
그럴 만도 했다.
25년 차 PD였던 메이프스는 CBS에서 15년간 일하며 '60분'을 비롯해 여러 시사보도 프로그램을 맡아 숱한 탐사보도로 각종 언론상을 받은 존경받는 언론인이었다.
44년간 방송계에 몸 담은 댄 래더는 더 말할 필요가 없는 미국 방송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미국 방송사의 전설 월터 크롱카이트의 뒤를 이어 CBS의 간판 앵커로 24년간 활약한 그 역시 기자 시절 많은 특종으로 각종 상을 받았고 공신력 있는 보도를 통해 가장 신뢰할 만한 언론인으로 꼽혔다.
그랬던 두 사람이니 하루아침에 신뢰가 무너지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영화는 메리 메이프스의 책을 토대로 래더 게이트의 과정을 다큐멘터리처럼 짚어 나간다.
그 과정이 맹목적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언론인으로서 고뇌와 번민이 그대로 묻어나 호소력 있게 다가온다.
영화 제목이 말하는 '진실'이란 부시 사건의 보도 의혹의 진위보다 솔직하게 드러난 언론인으로 감내해야 할 고통의 몫이다.
아마도 사건의 진위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또 하나의 '60분', 즉 시사보도물이 됐을 것이다.
그 이면에서 몸부림치는 언론인들의 고뇌와 진실을 찾기 위한 노력,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이 빚은 실수를 감내하는 과정을 처연하게 드러냄으로써 이 작품은 진정한 드라마가 됐다.
영화는 사건의 진위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그럴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언론을 바라보는 시선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에 충실하고 진실을 보도해야 하는 언론인의 자세는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언론계 종사자들로서는 이 작품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더 포스트' '스포트라이트' 등 어려움을 뚫고 진실을 보도해 조명을 받은 언론인들을 다룬 영화들과 달리 이 작품은 언론인들의 패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진실 보도를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은 끝없는 사실 확인이다.
재차 삼차 확인해도 미진하거나 의혹이 있다면 기사를 내보내서는 안 된다.
기사 때문에 누군가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해서는 절대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래더 게이트에 관련된 취재진들은 언론인이라면 반드시 새겨야 할 금과옥조 같은 보도의 절대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
지나친 확신과 공명심 앞에서 그들은 보도의 절대 원칙을 지키지 못했고 그래서 무너졌다.
사안 자체가 중대한 만큼 증거들에 대해 이중 삼중 확인을 거치고 이를 뒷받침할 근거들을 마련했어야 했다.
설령 댓글부대처럼 영화 속 블로거들이 사실 여부와 상관없는 정치 공작을 편 것이라 해도 빌미를 주었다는 점에서는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언론인들의 성공담을 다룬 영화보다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언론인들이 경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특히 댄 래더를 연기한 관록의 로버트 레드포드와 메이프스 역의 케이트 블란쳇이 보여준 연기는 두 사람의 이름값만큼이나 장중하다.
과거 댄 래더를 만난 적 있는 레드포드는 연기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댄 래더였다.
케이트 블란쳇은 공신력을 의심받은 언론인의 고통을 절절하게 잘 표현했다.
더불어 쉽지 않은 이야기를 깔끔한 연출로 선보인 제임스 밴더빌트 감독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은 '조디악'의 시나리오를 쓴 뒤 처음 연출을 맡은 밴더빌트의 감독 데뷔작이다.
하필 데뷔작을 만만치 않은 묵직한 작품을 맡아 쉽지 않았을 텐데도 이야기를 잘 정돈했다.
무엇보다 의도적으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잘 지키면서 영화가 보여줘야 할 부분이 어디인지, 즉 사건의 내용보다 여기 연루된 사람들의 고뇌와 언론인의 자세라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잘 짚어냈다.
물론 그것이 밴더빌트 감독의 의도가 아닐 가능성도 있다.
그렇더라도 이 영화는 이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1080p 풀 HD의 2.39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좋다.
윤곽선이 깔끔하고 색감 또한 자연스럽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많지 않다.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서라운드 효과에서 리어 채널을 확실하게 활용했다.
부록으로 삭제 장면, 저널리즘에 대한 설명, 출연진 인터뷰, 제작진 간담회 등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부록은 모두 HD 영상으로 제작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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