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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만한 DVD / 블루레이

레이디와 트램프(블루레이)

울프팩 2020. 2. 29. 22:29

디즈니가 1955년에 만든 15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레이디와 트램프'(Lady And The Tramp, 1955년)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나 '신데렐라' 등 다른 작품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디즈니 스튜디오에서는 꽤 의미 있는 작품이다.

디즈니는 이 작품을 계기로 배급사인 브에나비스타를 차려 자체 배급에 나섰다.

 

더 이상 작품 생산만 하는 스튜디오가 아니라 본격적인 배급사로 첫걸음을 내딛게 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콘텐츠가 힘을 받으려면 플랫폼, 즉 유통 파워를 가져야 하는데 디즈니는 이 작품을 계기로 이를 이뤘다.

 

더불어 이 작품은 가로로 길쭉한 시네마스코프 화면비로 찍은 최초의 애니메이션이다.

당시 미국의 영화 산업은 TV가 급격히 보급되면서 위기를 맞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 영화계는 TV가 보여줄 수 없는 웅장한 화면, 즉 시네마스코프 영화를 선보였다.

이 작품이 애니메이션에서는 처음으로 시네마스코프의 문을 열었다.

 

이처럼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 이 작품은 한동안 잘못 알려졌다.

작품의 제작 배경이 월트 디즈니가 신혼 초에 부인에게 차우차우 강아지를 선물한 데서 착안했다는 것이다.

 

월트 디즈니가 그렇게 알려서 널리 알려졌고 심지어 블루레이 시작 전에도 월트 디즈니의 딸 다이앤 디즈니 밀러가 등장해 그렇게 소개한다.

하지만 진실은 따로 있다.

 

원래 이 작품은 디즈니에서 한때 유명했던 애니메이터 조 그랜트가 창안했다.

1933년 캐리커처 담당으로 디즈니에 입사한 그는 백설공주, 마녀 등의 캐릭터를 그렸다.

 

조 그랜트는 이 작품의 레이디와 같은 종인 코커스패니얼종 개를 길렀다.

그는 자신의 개를 주인공 삼아 고약한 장모가 데려온 고양이 두 마리 및 쥐와 소동을 벌이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월트 디즈니는 1943년에 조 그랜트가 그린 스토리보드를 봤으나 레이디 혼자 등장하는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월트는 작품 제작이 보류된 상태에서 코스모폴리탄 잡지에 실린 '행복한 주인, 냉소적인 개'라는 워드 그린의 글을 우연히 읽었다.

 

여기서 힌트를 얻은 월트는 레이디의 짝으로 냉소적인 개 트램프를 등장시키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 사이 월트와 조는 사이가 벌어졌다.

 

당시 월트는 조 그랜트가 그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의견 충돌을 빚은 조는 1949년 디즈니를 그만뒀다.

 

월트는 워드 그린에게 조의 스토리보드를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 보라고 제안했다.

워드는 이를 받아들여 1953년 '두 마리 개 이야기'를 썼다.

 

이 과정에서 조 그랜트의 오리지널 스토리는 대폭 수정됐다.

월트는 워드 그린의 글을 토대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고 작품 제작 동기도 조 그랜트의 이야기를 빼버린 채 신혼 초 부인에게 강아지를 선물한 데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그렇게 조 그랜트는 이 작품에서 잊혀졌다.

그러나 당시 디즈니 멤버들은 이 작품이 조의 작품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숨겨진 진실의 주인공인 조 그랜트는 1980년대 디즈니로 다시 돌아왔다.

그는 '포카 혼타스'와 '라이온 킹' 등에 도움을 주고 2005년 97세 나이로 타계했다.

 

이 작품은 두 마리 개를 주인공으로 다뤘다.

얌전하고 예쁜 암캐 레이디와 명랑하고 터프한 떠돌이 수캐 트램프가 주인공이다.

 

둘이 우연히 만나 작은 모험을 겪은 끝에 친구가 되는 내용이다.

개들을 주인공으로 개의 눈높이에서 만든 작품이지만 사실은 인간사에 대한 풍자가 녹아 있다.

 

오로지 주인에게 충직하며 집 밖을 나서려 하지 않는 레이디는 보수주의자의 전형이며 그를 꾀어내 사람을 믿지 말고 더 넓은 세상을 보라고 부추기는 트램프는 모험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이다.

마치 공화당과 민주당을 형상화한 듯한 두 캐릭터는 그만큼 성격도 다르고 추구하는 바도 다르다.

 

자유를 추구하는 트램프는 일부러 떠돌이 개를 잡아가는 보호소 마차를 습격해 개들을 풀어준다.

그리고 필요하면 불신의 대상인 사람에게 잘 보이는 것처럼 꼬리 쳐서 음식을 받아내는 등 적당히 역이용할 줄도 안다.

 

그런 트램프가 결국 자신의 이상과 꿈을 접는 것은 레이디 때문이다.

처음에는 트램프의 꼬임에 빠져 레이디가 일탈 아닌 일탈을 하게 되지만, 레이디에게 반해서 눈이 먼 트램프가 결국은 레이디를 따라간다.

 

막판 레이디와 트램프가 일가를 이뤄 주인과 화목하게 사진을 찍는 장면은 다른 듯 보이지만 결국은 미국의 이익 앞에서 한 목소리를 내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공존을 보는 듯하다.

어찌 보면 그것이 월트 디즈니의 철학이자 애니메이션을 통해 미국인들에게 설파하고 싶은 목소리이기도 했다.

 

이런 메시지의 호불호를 떠나 레이디와 트램프가 사랑에 빠지는 장면은 꽤나 로맨틱하다.

특히 둘이 스파게티를 같이 먹는 장면은 숱한 광고 등에서 패러디됐을 정도로 유명하다.

 

이 작품이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은 각각의 개들의 특징을 잘 살린 그림 덕분이다.

캐리커처처럼 개별 캐릭터의 특징이 확연하게 보인다.

 

더불어 개의 눈높이에서 올려다본 계단 장면 등 개의 시각으로 잘 살린 앵글과 그림자를 이용한 개싸움 및 개 보호소 장면 등이 인상적이다.

그만큼 해밀턴 러스크, 클라이드 제로니미, 윌프레드 잭슨의 공동 연출이 좋았다.

 

아울러 페기 리가 작사에 참여하고 노래까지 부른 삽입곡들도 좋았다.

개를 좋아한다면 아이들과 함께 재미있게 볼 만한 작품이다.

 

다이아몬드 에디션으로 출시된 블루레이 타이틀은 1080p 풀 HD의 2.55 대 1 화면비를 지원한다.

무려 60여 년 전 작품인데도 색감이 선명하고 윤곽선도 깔끔하다.

 

옛날 애니메이션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화질이 좋다.

그만큼 선과 색이 곱고 예쁜 이 작품의 영상 복원이 잘 됐다.

 

DTS HD MA 7.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은은하고 포근한 서라운드 효과를 들려준다.

물론 오리지널 사운드는 멀티채널이 아닌데 다시 서라운드로 재구성했다.

 

부록으로 제작진의 음성해설, 디즈니 박물관 소개, 제작과정, 탄생 배경, 캐릭터 소개, 음악과 노래, 더빙, 삭제 장면과 원본 스토리보드, 개에 대한 설명과 월트 디즈니가 등장하는 과거 TV 프로그램 등 다양한 내용이 한글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일부는 HD 영상으로 제작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월트 디즈니는 1900년대 초, 즉 20세기 초반을 시대 배경으로 설정했다.
월트 디즈니는 신혼 때 부인에게 차우차우 강아지인 써니를 선물한 추억을 작품의 제작 동기로 설명했다. 개가 주인공이다보니 사람의 모습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때가 많다.
이웃집 강아지 자크는 스코티시 테리어다. 알뜰하게 뼈를 파묻어 놓는 구두쇠 캐릭터로 나온다.
월트 디즈니는 빅토리아풍의 가구나 소품을 좋아해 디즈니랜드 내 소방서 위에 있던 자신의 아파트를 빅토리아풍으로 꾸며 놓았다. 이 작품 속 집들도 빅토리아풍의 남부 전원 주택들이다.
개들끼리는 말을 하지만 사람과 함께 나오는 장면에서는 짖는 소리로 들린다.
트램프는 슈나우저 계열의 잡종견이다. 사람의 착한 성품을 잘 이용하는 약삭빠른 캐릭터다.
레이디는 코커스패니얼 종이다. 부인 목소리는 가수 페기 리가 맡았다.
페기 리는 노래 외에 보호소에 갇힌 개 페그, 샴고양이와 부인 목소리 등 1인 다역을 했다.
디즈니 작품들이 그렇듯 이 작품도 뮤지컬처럼 중간에 노래들이 나온다. 고약한 고양이들과 레이디가 갈등을 빚는 얘기는 조 그랜트의 오리지널 스토리다.
월트 디즈니는 이 작품을 만들면서 디즈니랜드를 같이 건설했다. 그는 오전에 스튜디오에서 작품을 만들고, 오후에 애너하임에 들려 디즈니랜드 건설을 지켜봤다.
이 작품을 보지 못한 사람들도 알 만큼 유명한 스파게티 장면. 이때 '아름다운 밤'(Bella Notte)라는 노래가 흐른다.
디즈니 제작진에 따르면 레이디와 트램프가 언덕 위에서 밤을 보내는 것은 성적인 암시를 담고 있다. 이후 둘 사이에 강아지들이 태어난다.
트램프가 다른 떠돌이 개들과 싸우는 장면이나 보호소에서 안락사 당하는 개가 끌려가는 어두운 장면은 그림자로 표현했다.
2001년 후속작인 '레이디와 트램프2'가 나왔고 2019년 11월12일 디즈니플러스에서 실제 개들이 등장하는 실사 영화도 선보였다.

 
 
레이디와 트램프 DE
 
레이디와 트램프 DE : 블루레이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예스24 | 애드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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