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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만한 DVD / 블루레이

닥터 슬립(4K 블루레이)

울프팩 2020. 2. 24. 23:27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샤이닝'은 위대한 공포 영화 중 하나로 꼽히는 명작이다.

이 작품은 귀신이나 연쇄살인마 같은 끔찍한 상대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을 다뤘다.

 

큐브릭 감독은 참으로 길고 험난한 내면의 싸움을 통해 외부로 드러난 상대보다 보이지 않는 내부의 공포가 얼마나 더 무서운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그래서 이 작품이 여타의 공포물과 다른 대접을 받는다.

 

심지어 원작인 스티븐 킹의 소설보다 더 현실적인 공포를 묘사했다.

그런 위대한 작품의 속편을 만드는 것은 그 자체로 대단한 도전일 수 있다.

 

마이크 플래너건 감독의 '닥터 슬립'(Doctor Sleep, 2019년)은 여기에 도전장을 던진 작품이다.

샤이닝의 속편으로 기획된 이 작품은 전작에서 어린 소년이었던 대니(이완 맥그리거)가 훌쩍 자라 중년의 사내가 된 뒤 다시 맞닥뜨리게 된 공포를 다루고 있다.

 

내용은 대니처럼 샤이닝이라는 신비한 초능력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을 사냥해서 죽인 뒤 그들의 능력을 흡수해 살아가는 악당들인 트루낫 일당과 주인공 일행이 대결을 벌이는 이야기다.

샤이닝은 텔레파시처럼 일종의 영적 초능력이다.

 

하지만 누구나 다 똑같은 것이 아니라 사람을 치유하기도 하고 상대를 공격하기도 하는 등 조금씩 다르다.

이를 노리는 악당들은 이 능력을 빼앗아 불로장생, 영생을 꾀한다.

 

샤이닝을 찾아내 죽인 뒤 흡수하는 과정은 피를 빠는 드라큘라처럼 흡혈귀 전설과 닮았다.

여기에 누구를 막론하고 꾸는 꿈인 불로장생이 맞닿으면서 탐욕과 죄악이 요동친다.

 

대니는 강력한 샤이닝을 구사하는 12세 소녀  아브라(카일리 커란)와 손잡고 악당들을 물리친다.

그들이 선택하는 결전의 장소는 하필 샤이닝의 무대였던 공포의 오버룩 호텔이다.

 

이를 통해 감독은 전작과 동일한 세트, 심지어 전작에 등장한 죽은 자들과 공포스러운 장면까지 오마주라는 이름으로 그대로 흉내 내며 전작의 인기를 소환한다.

이를 위해 플래너건 감독은 전작의 출연진들과 비슷한 배우들을 기용해서 해당 장면들을 다시 찍었다.

 

하지만 아무리 비슷해도 잭 니컬슨이 아니고 그때 그 장면이 아닌 것은 어쩔 수 없다.

전작이 오버랩되며 과거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지만 전작의 깊이와 공포를 그대로 가져오기는 힘들다.

 

결정적으로 이미테이션은 오리지널을 능가할 수 없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샤이닝을 좋게 본 사람들이 갖고 있는 기대치를 기준으로 삼은 이야기다.

 

샤이닝을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선악 대결이 명암처럼 뚜렷한 이 작품이 한 편의 액션극이나 좀비처럼 수월하게 보일 수 있다.

사실 샤이닝은 애매모호한 결말과 불충분한 설명으로 점철된 친절하지 않은 작품이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관객들은 이 작품이 가볍고 편할 수 있다.

감독은 스탠리 큐브릭의 원작을 충실하게 따르면서 이야기나 메시지가 명쾌한 영화를 만들었다.

 

다만 내면의 공포를 섬세한 심리묘사로 다룬 큐브릭의 샤이닝과 달리 그저 줄거리를 쫓아서 심령극과 액션물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다.

더 이상 장중한 미장센느 속에 배우들의 섬세한 심리묘사가 살아 있는 큐브릭 특유의 분위기는 느낄 수 없는 작품이다.

 

감독이 바뀌었고 이야기도 달라졌으니 그럴 만하다.

그러니 샤이닝의 속편이면서도 결이 다른 이 영화를 샤이닝과 비교하면 곤란하다.

 

스핀오프처럼 오락물에 가까운 샤이닝의 아류작 정도로 봐야 할 듯.

그래도 원작자인 스티븐 킹은 이 작품에 만족한 모양이다.

 

그는 워낙 큐브릭 분위기로 흘러간 샤이닝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던데, 블루레이에 실린 부록을 보면 오히려 이 작품이 큐브릭이 바꿔놓은 원작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며 만족을 표시했다.

예를 들어 원작 소설에서는 죽지 않았으나 샤이닝에서는 죽은 것으로 처리한 흑인 요리사 딕, 원작 소설에서는 불에 타서 없어지지만 샤이닝에서는 그대로 남게 되는 오버룩 호텔을 이 영화는 원작 소설과 샤이닝의 설정을 절반씩 가져와 되살렸다.

 

이런 부분들은 흥미로우면서 영리한 선택이다.

참고로 4K 타이틀은 3장의 디스크에 2시간 30분 분량의 극장판과 이보다 30분 늘어난 감독판이 모두 들어 있다.

 

 4K 타이틀은 극장판을 수록했으며 2장에 블루레이에 감독판과 극장판을 각각 담았다.

그러나 30분 늘어난 감독판은 영화의 이해를 돕는 설명이 조금 늘어나긴 했으나 없어도 별 상관이 없어 보인다.

 

2160p UHD의 1.8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4K 타이틀은 화질이 좋다.

윤곽선이 부드럽고 색감이 은은하지만 디테일이 좋다.

 

또 콘트라스트가 깊어서 명확한 흑백 대비로 공포물의 묘미를 제대로 살렸다.

오히려 디지털보다 필름 느낌이 묻어나는 영상이다.

 

돌비 애트모스를 지원하는 음향은 리어 채널을 적극 활용해서 서라운드 효과가 잘 살아 있다.

특히 공포물은 음향 효과를 얼마나 살리느냐에 따라서 공포감이 좌우되는데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음향 효과가 제 역할을 잘해줬다.

 

부록으로 제작진 인터뷰, 제작과정, 다큐멘터리 등이 한글자막과 함께 HD 영상으로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어려서부터 스티븐 킹의 광팬이었던 마이크 플래너건 감독은 이 작품의 연출은 물론이고 각본, 편집까지 맡았다.
바닥에 바짝 붙듯 아이의 자전거를 따라 이동하던 샤이닝의 유명한 카메라 워크를 그대로 재현한 장면. 제작진은 샤이닝 촬영 때 사용된 자전거가 단종돼 새로 만들었다.
이 작품은 2013년에 나온 스티븐 킹의 소설이 원작이다.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는 유령이 된 흑인 요리사 딕의 대사 속에 들어 있다. "어떤 어두운 존재들에게 샤이닝은 음식 같아서 피를 빨아먹는 모기처럼 달려들지. 그들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이 노리는 것을 역이용하는 거야."
소녀 아브라가 샤이닝으로 피아노를 원격 연주해 부모를 놀라게 만드는 장면이 감독판에 들어 있다.
원작자인 스티븐 킹은 샤이닝의 대니가 크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을 많이 받아 이를 표현하고 싶어 원작을 썼다.
샤이닝과 닥터 슬립에는 알코올 중독이었던 스티븐 킹의 경험이 들어 있다.
트루낫 일당은 피를 빨아 영생을 사는 흡혈귀와 닮았다. 촬영은 공포물을 많이 찍은 마이클 피모그나리가 했다.
스티븐 킹은 플로리다와 메인을 오가다 휴게소 한 편에 항상 모여있는 캠핑카 무리를 보고 사탄 숭배자들이 모여서 전국을 누비며 흑마법을 쓰는 생각을 하며 트루낫 일당을 구상했다고 한다.
'제이 에드가'에서 셜리 템플로 나온 아역배우였던 에밀리 앨린 린드가 훌쩍 자라 스네이크바이트 역할을 했다.
이완 맥그리거가 연기한 주인공 대니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잠자듯 편안하게 세상을 뜨도록 도와주는 능력 때문에 '닥터 슬립'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레베카 페르구손이 트루낫 일당의 리더인 로즈를 연기. 로즈가 쓴 모자는 비버 펠트사가 100년 전에 만든 제품.
스티븐 킹은 큐브릭의 영화 샤이닝이 소설과 완전히 달랐다고 한다. 그는 "큐브릭의 영화는 차가운 얼음과 함께 끝나지만 소설은 불과 함께 끝난다"고 설명했다.
'샤이닝'에서 공포의 주문 같았던 레드럼이라는 단어도 다시 등장. 크리스 에반스, 존 쿠삭, 제레미 러너, 맷 스미스 등도 주인공 대니 역 후보에 올랐다.
제작진은 아브라 역을 고르려고 약 1,000명을 오디션봐서 카일리 커란을 선정했다.
이 영화에서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훔쳐보듯 의자에 앉은 뒷모습과 부감샷이 종종 등장한다.
이 작품은 '샤이닝'보다 대립상황이 명확하게 드러나 이해하기 쉽다. 그만큼 샤이닝보다 가볍고 오락적이다. 반면 큐브릭의 샤이닝은 내면 심리를 파헤치다보니 중의적이고 어려우며 무섭다.
감독의 동생 제임스 플래너건도 트루낫 무리 중 민머리에 안경을 낀 디젤 더그 역할로 출연했다.
감독판은 1장부터 6장까지 장 표시를 하며 챕터 방식으로 진행된다.
아브라의 아버지가 트루낫 일당에게 대항하는 장면도 감독판에 추가됐다.
큐브릭의 '샤이닝'은 샤이닝을 그저 신비한 능력으로 표현했지만 여기서는 흡입할 수 있는 연기처럼 묘사했다.
'샤이닝'에서 잭 니컬슨의 광기어린 표정이 생각나는 장면이다. 전반적으로 영화의 채도가 낮은 편.
헨리 토마스가 대니의 아버지 역할을 했다. 잭 니컬슨과 옆모습이 많이 닮았다.
'샤이닝'의 화장실 장면을 따라한 장면도 감독판에 추가됐다.
제작진은 '샤이닝'에 나온 아들러 타자기와 같은 제품을 사용.
스티븐 킹은 샤이닝을 쓸 때 알코올 중독처럼 술을 마시며 썼다. 반면 닥터 슬립을 쓸 때는 술을 끊은 지 오래된 상태였다.
스티븐 킹에 따르면 샤이닝은 알코올 중독을 극복하지 못해서 가족에게 해를 끼칠까봐 두려워하는 남자의 마음을 다뤘고, 닥터 슬립은 이를 극복한 사람의 이야기다.
맞아도 다치지 않도록 고무로 만든 도끼를 사용했다.
제작진은 6주 동안 유명한 오버룩 호텔 세트를 '샤이닝'과 똑같이 만들었다.
'샤이닝'의 유명한 쌍둥이 소녀가 똑같은 모양으로 다시 등장.
큐브릭은 원작 소설에서 217호였던 귀신의 방을 '샤이닝'에서 237호실로 바꿨다. 이 작품도 '샤이닝'과 연결때문에 237호실로 설정했다.
마이클 플래너건 감독은 큐브릭의 '샤이닝'이 보여주지 않은 원작 소설의 결말을 대신 선택했다.
원작 소설에서 푸른 눈과 금발의 백인 소녀로 나오는 아브라가 이 작품에서는 흑인 소녀로 나온다.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닥터슬립(극장판 감독판 2Disc) : 블루레이
닥터슬립 (감독판포함 4K UHD 2D 감독한BD 3Disc) : 블루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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