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 아바시 감독이 만든 스웨덴 영화 '경계선'(GRANS, 2018년)은 참으로 기이한 영화다.
영화의 이야기와 소재, 영상 그리고 배우들까지 모든 것이 기이하고 낯설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면 안타깝기도 하고 답답하면서도 슬프고 복잡 미묘한 감정이 자리를 잡는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만 따지면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내용은 판타지에 가깝다.
괴이한 외모를 가진 여성 티나(에바 멜란데르)는 냄새로 사람들의 범죄를 알아내는 특이한 재주를 지녔다.
덕분에 항구에서 입항하는 사람들의 검역을 담당하는 공무원으로 일한다.
이 곳에서 그는 냄새로 아동 포르노 범죄자들을 잡아내기까지 한다.
그곳에서 티나는 우연히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이상한 외모를 지닌 남성 보레(에로 밀로노프)를 만난다.
티나는 벌레를 잡아서 날로 먹고사는 보레에게 이상하게 마음이 끌린다.
보레를 손님 아닌 손님으로 맞아들이면서 티나는 충격적인 자신의 출생에 얽힌 비밀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때부터 자신이 왜 정상적인 성생활을 할 수 없는지,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결코 동성애나 성전환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는 그보다 더한 성 역할의 변경이라는 충격적인 설정을 보여준다.
임신 출산부터 모든 것이 뒤바뀐 이들의 존재를 통해 아바시 감독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결코 외모나 다른 조건에 얽매이지 않고 존재 그 자체로서의 순수한 사랑이다.
여기에는 성소수자를 포함한 억압받는 모든 대상이 포함된다.
기이한 외모든, 비교 열위에 있는 조건을 가진 존재든, 성소수자이든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해 준다는 것은 어쩌면 꿈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제작진은 이들의 존재를 특별하게 설정한 판타지로 풀어가는 영리한 방법을 택했다.
마법이 판치고 동물들이 말을 하는 동화 같은 판타지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만 알아볼 수 없는 대상을 다뤘다는 점에서 판타지다.
오히려 이런 판타지 설정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질적인 사람들을 외계인 취급하는 현대 사회를 비꼬는 풍자이기도 하다.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한 모습들이 어느새 괴물 취급을 받는 것은 아닌 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것은 곧 진정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비단 사랑뿐만 아니라 타인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얼마나 진정성이 담겨 있는가.
거기에 왜곡된 가치관과 속세의 오염된 때가 묻어 있지 않은지, 그래서 오히려 진정성 있게 다가오는 존재의 순수한 모습이 괴물로 보이지는 않는지 영화는 묻고 있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는 멀쩡한 외모의 인간들이 더할 수 없는 괴물로 다가온다.
멀쩡하고 평범하며 신사적인 모습을 했지만 숨어서는 아동 포르노를 만들고 탐닉하는 괴물 같은 인간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아름다운 겉모습과 달리 더할 수 없이 추악한 내면을 지닌 존재들이다.
여기에는 수많은 편견과 아집, 독선에 사로잡혀 배타적이고 이기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편협한 사람들까지 포함된다.
우리에는 뉴스를 통해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공포영화 같은 소식들을 듣는다.
가끔 뉴스를 보다 보면 저 사람들이 제정신인가 싶을 때가 있다.
영화는 이런 대상들을 직접 거론하지 않지만 여기까지 나아갈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이런 기발한 접근으로 원작 소설과 각본을 쓴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스웨덴 출신의 린드크비스트는 기발한 천재 스토리텔러로 꼽히는 인물이다.
우리에게는 흡혈귀와 인간의 사랑을 다룬 영화 '렛 미 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이 작품에서도 순수한 사랑에 대한 질문을 기이한 스토리를 통해 던졌다.
독특한 것은 과정이 마냥 아름답거나 순수하지만는 않다는 점이다.
때로는 혐오스럽고 기이하며 추악하지만 이를 통해 미를 반추하듯 역설의 법칙으로 접근한다.
그래서 영화가 더 충격적이다.
물론 여기에는 아바시 감독의 깔끔한 연출이 한몫했다.
그는 절제된 대사와 편집, 때로는 몽환적인 영상을 통해 군더더기 없이 이야기를 끌어간다.
그 바람에 기이한 이야기를 정신없이 보다 보면 어느새 결말을 맞게 된다.
또 원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분장을 한 채 연기를 펼친 배우들도 대단하다.
절대 아름답지 않은 영화이지만 그래서 미를 반추하게 되는 기이한 역설의 작품이다.
하지만 두 번 보기는 쉽지 않은 작품이다.
1080p 풀 HD의 2.3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좋다.
북구의 우울한 풍경을 낮은 채도의 영상으로 잘 담아냈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자연의 소리를 잘 살린 서라운드 효과를 들려준다.
천둥소리는 공간을 요란하게 흔들며 빗소리와 바람소리가 사방 채널을 채운다.
부록으로 국내 영화기자들의 평가와 트롤 사전이라는 짧은 영상들이 한글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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