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포드 v 페라리'(FORD v FERRARI, 2019년)는 1960년대 세계 최고의 자동차 자리를 놓고 미국의 포드와 이탈리아의 페라리가 치열하게 다툰 실화를 다룬 영화다.
특히 포드와 페라리는 매년 6월 프랑스 르망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자동차 경주대회 르망 24의 우승을 놓고 경쟁을 벌였다.
자동차 업체의 자존심이 달린 르망 24
미국의 인디애나폴리스 500, 모나코 그랑프리와 함께 자동차 경주의 트리플 크라운으로 꼽히는 르망 24는 특이한 대회다.
정해진 거리를 빠르게 주파하는 다른 자동차 경주와 달리 이 대회는 24시간 동안 더 많은 거리를 달려야 우승한다.
그만큼 빠르고 오래 달릴 수 있는 튼튼한 자동차가 승리한다.
페라리가 이 대회를 석권한 반면 미국은 1959년 자동차 경주 선수 캐롤 셸비가 우승할 때까지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다.
캐롤 셸비도 미국 자동차가 아닌 영국의 애스턴 마틴으로 우승했기 때문에 진정한 미국 자동차의 승리는 아니다.
미국 자동차 산업의 상징인 포드 자동차의 헨리 포드 2세는 이 때문에 몹시 자존심이 상했다.
포드를 만든 헨리 포드의 손자인 그는 포드 자동차가 많이 팔리기는 했지만 성능에서 페라리에 뒤쳐진다고 생각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포드는 레이싱카를 만들어 르망 24 우승을 노린다.
캐롤 셸비와 켄 마일스는 누구
이를 위해 발탁된 인물이 캐롤 셸비와 켄 마일스다.
1923년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난 켄 마일스는 제2차 세계대전에 공군 폭격기 조종사로 참전한 뒤 닭 농장을 운영하다가 1950년대 자동차 경주 선수가 됐다.
미국에서만 16개의 자동차 경주 기록을 갖고 있는 그는 1959년 애스턴 마틴을 타고 르망 24에서 우승하며 페라리를 눌러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그는 고질적인 심장병이 악화돼 1962년 선수 생활을 접고 자동차 개조 및 판매 회사인 셸비 아메리칸을 설립했다.
그가 영국의 AC쿠페를 수입해 튼튼한 포드 엔진을 얹어서 판매한 개조차 AC코브라는 미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이런 점 때문에 포드는 셸비의 경주팀을 꾸리자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영화에서는 포드의 부사장 리 아이아코카가 제안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사실은 셸비가 먼저 제안했다.
르망 24 우승을 위해 팀을 만든 셸비가 최고의 선수로 지목해 영입한 인물이 켄 마일스다.
1918년 영국에서 태어난 켄 마일스는 10대 때 웨슬리 자동차의 견습생으로 들어가 자동차 기술을 배웠다.
이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 육군에서 전차 운전병으로 복무하며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가했다.
마일스는 전후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했으나 고집이 세고 거칠어 취직이 쉽지 않자 할리우드에서 자동차 튜닝 전문점을 열었다.
그러나 영화에서처럼 사업 수완이 좋지 않아 생활이 힘들었다.
하지만 자동차 경주 실력이 아주 뛰어나 미국 내 자동차 경주대회에서 14차례 연속 우승을 했다.
이를 눈여겨본 셸비는 마일스를 영입해 르망 24 우승을 위한 포드의 특별한 자동차 GT40을 만든다.
포드의 중역들은 자기주장을 꺾지 않는 마일스를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셸비가 고집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마일스는 1966년 GT40의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출전한 미국의 데이토나 24 경주에서 우승했고 여세를 몰아 같은 해 르망 24 경주에 출전했다.
포드는 그 해 마일스의 압도적 실력에 힘입어 페라리를 꺾고 사상 처음 르망 24에서 우승을 했다.
뿐만 아니라 포드는 셸비와 마일스가 개발한 GT40으로 1966년부터 69년까지 르망 24에서 내리 4 연속 챔피언이 됐다.
자동차 경주 장면 촬영이 놀랄만큼 뛰어난 영화
하지만 승리의 영광 뒤에는 개인의 아픔이 있었다.
영화는 자동차 경주대회와 더불어 극적인 순간이 숨어 있는 셸비와 마일스의 드라마에 초점을 맞췄다.
즉 단순히 우승을 다투는 대회보다 셸비와 마일스가 어떻게 우정을 나눴고 우승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으며 어떻게 대회를 마무리했는지 인간적인 측면을 가감 없이 다뤘다.
극적인 재미를 위해 갈등 구조를 사실과 다르게 묘사한 부분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인물의 됨됨이를 비교적 충실하게 묘사한 편이다.
여기에는 체중까지 30kg 가량 감량하며 마일스가 되기 위해 혼신을 다한 크리스천 베일과 묵묵히 뒤를 받쳐준 셸비를 무게감 있는 연기로 커버한 맷 데이먼의 뛰어난 연기가 빛을 발했다.
마일스와 셸비 그 자체였던 베일과 데이먼의 연기 앙상블이 워낙 좋아서 이 작품이 단순 자동차 경주대회를 다룬 스포츠물이 아니라 묵직한 휴먼 드라마가 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자동차 경주를 좋아하지 않거나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자동차 대회 못지않게 긴장감 넘치는 두 사람의 인생 굴곡이 얽힌 이야기에 빨려 들게 된다.
더불어 자동차 경주 장면의 박력은 압권이다.
자동차의 옆과 뒤, 때로는 정면에 바짝 붙어서 자동차와 함께 움직이는 카메라는 마치 보는 사람이 경주장에 들어선 레이서처럼 긴장되고 흥분하게 만든다.
달리는 자동차에 근접해서 촬영한 장면은 어떻게 저런 장면을 찍었을까 싶을 만큼 감탄이 절로 나온다.
특히 사실감을 극적으로 끌어올리는 카메라 워킹은 운전석에서 핸들을 쥐고 있는 선수들이 코너링할 때 엄청난 스피드에 얼굴 근육이 떨리는 장면까지 세세하게 잡아냈다.
뿐만 아니라 감독과 제작진은 치밀한 편집으로 철컥 거리며 기어 변속을 하는 극적인 순간의 페달링까지 놓치지 않고 보여준다.
그래서 무려 1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르망 24 경주 장면이 전혀 지루하지 않고 마치 월드컵 대회 결승전처럼 손에 땀을 쥐고 보게 만든다.
놀라운 것은 경이로운 자동차 경주 장면이 컴퓨터 그래픽이 아닌 실제 촬영이라는 점이다.
실제 카메라를 장착한 특수차량과 스포츠카들이 레이싱 트랙 위에서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며 경주 장면들을 찍었다.
덕분에 컴퓨터 그래픽과 차원이 다른 박진감 넘치는 경주 장면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의 자동차 경주 장면은 가히 영화 사상 최고의 경주 장면으로 꼽아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 명장면이다.
한마디로 뛰어난 드라마투르기와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 놀라울 정도의 역동적인 카메라 워킹과 감독의 뛰어난 연출이 마치 한 팀처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빼어난 자동차 경주 영화다.
다른 자동차 경주 영화들을 보면 사람보다 자동차가 부각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끝까지 인물들이 갖고 있는 드라마와 휴머니즘을 놓치지 않았다.
그것이 이 작품의 미덕이다.
아쉬운 스틸북에 대한 단상
4K 타이틀은 4K와 일반 블루레이 등 2장의 디스크로 구성됐다.
2160p UHD의 2.39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4K 타이틀은 화질이 아주 우수하다.
필터링된 아련한 색감이 잘 살아 있으며 디테일이 좋다.
돌비 애트모스를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압권이다.
사방 스피커에서 자동차들의 엔진 소리가 천둥처럼 터져 나온다.
특히 경주 장면에서 입체적으로 재현되는 소리를 들어보면 마치 관중석에 앉아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부록으로 제작진 인터뷰, 캐릭터에 대한 배경 설명, GT40 등 자동차 이야기, 경주 장면 촬영 등 다양한 내용이 한글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모든 부록은 HD 영상으로 제작됐다.
덧붙이자면 이 작품의 4K와 블루레이 타이틀은 품절 현상을 빚을 만큼 인기를 끌었다.
많은 사람이 살 수 있도록 수량을 좀 더 여유 있게 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울러 일부 수량이 스틸북으로 나오다 보니 껍데기 때문에 사재기를 하는 수요까지 겹쳐 품귀 현상을 부채질했다.
이렇게 사재기를 하는 사람들 중에는 여러 개의 스틸북을 구입해 온라인 장터에서 비싼 가격에 되파는 사람들도 있다.
그 바람에 진정한 영화팬과 블루레이 팬들이 좋아하는 타이틀을 구매하지 못하고 피해를 보게 된다.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모든 타이틀을 일반 플라스틱 케이스로만 출시하고 스틸북 껍데기는 따로 팔았으면 좋겠다.
스틸북으로 장식하고 싶은 사람은 추가로 껍데기만 따로 구입하면 된다.
그러면 영화에 관심 없고 되팔이를 위해 스틸북 껍데기를 노리는 사람들 때문에 발생하는 사재기 현상도 줄어들 것이라고 본다.
사실 스틸북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보관상 불편함 때문에 꺼리는 사람도 많다.
무엇보다 무겁고 부피도 많이 차지해 랙에 꽂을 때 불편하다.
따라서 순전히 영화가 좋아서 타이틀을 구매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스틸북이 반갑지 않다.
솔직히 비싼 가격에 하나라도 더 팔려는 제조사의 상술로만 보인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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