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플란다스의 개 (블루레이)

울프팩 2013. 11. 25. 17:01

2003년 10월, 영화 '살인의 추억' 개봉 후 DVD 작업을 한창 할 때 봉준호 감독을 인터뷰했다.
지금은 사라진 DVD 잡지들에 한창 타이틀 리뷰를 쓰던 때여서 궁금한 게 많았던지라, 봉 감독에게 '살인의 추억' DVD 이야기를 주로 질문했다.

봉 감독이 워낙 얘기를 잘해서 예정된 1시간을 훌쩍 넘겨 대화를 나눈 뒤, 일어서기 전에 싸인을 부탁하며 '플란다스의 개'(2000년) DVD 타이틀을 내밀었다.
봉 감독이 자신의 첫 작품이라 애정이 많이 간다며 은근히 좋아하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나온 블루레이 타이틀을 보니 그때 기억이 새록 새록 떠오른다.
봉 감독의 데뷔작인 이 작품은 본명이 매리 루이스 드라 라메인 영국의 동화작가 위다가 쓴 동화 '플란다스의 개'와 아무 상관이 없다.

동화를 토대로 쿠로다 요시오가 만든 동명의 일본 TV애니메이션에서는 국내 방영시 쓰인 주제가를 빌려 왔을 뿐, 역시 상관이 없다.
이 작품은 봉 감독 특유의 블랙코미디가 은근하게 깔려 있다.

대학 교수 자리를 꿈꾸지만 취직이 안돼 힘들게 살아가는 사내와 아파트 관리실에서 경리로 일하는 아가씨가 아파트 단지에서 사라진 개 때문에 빚는 소동을 다뤘다.
개 소리를 끔찍하게 싫어하지만 마누라 때문에 개를 키워야 하는 사내는 교수가 되기 위해 돈봉투를 갖다 바치는 등 먹고 살기 위해 위선과 부정부패에 눈을 감는 지식인의 부조리를 다뤘다.

어쩌면 주인공 사내는 적당히 비겁한 이 시대 수 많은 소시민의 전형일 수 있다.
그만큼 캐릭터가 확실히 살아 있다.
 
여기에 봉 감독은 코믹한 에피소드와 사라진 개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미스테리한 요소를 가미해 웃음과 긴장감을 준다.
경비원의 손동작을 따라 갑자기 움직이는 앵글이나 사람들이 아파트 옥상을 가득 채운 판타지스러운 영상 등에서 재기발랄한 봉 감독 특유의 연출 감각을 엿볼 수 있다.

흥행에 크게 성공하진 못했어도 봉 감독의 남다른 재능이 빛난 작품이다.
1080p 풀HD의 1.85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무난한 화질이다.

전체적으로 화면이 약간 어둡고 윤곽선이 명료하지 못하며, 어두운 부분의 디테일이 떨어지는 등 최신작과 비교하면 아쉽지만 그래도 DVD보다는 많이 개선됐다.
특히 DVD에서 화이트피크가 높아 하얗게 날아갔던 장면이 약간 어두워지면서 또렷하게 살아 났다.

DTS-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개짖는 소리가 스피커 따라 이동하며 들리는 등 적당한 서라운드 효과를 들려 준다.
부록은 DVD 타이틀과 동일한 감독 음성해설, 배두나 인터뷰 등이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영화에 나온 개들은 전문 애견센터에서 섭외했다.
개짖는 소리를 유난히 싫어하는 대학 시간강사인 윤주 역할은 이성재가 열연.
배두나가 화장기 하나없는 민낯으로 출연해 아파트 관리실의 경리인 현남 역할을 잘 해냈다. 지하철 장면은 1호선 석계역에서 촬영.
현남의 친구 장미를 연기한 고수희. '괴물' '그놈 목소리' '써니' 등에 출연했으며 '친절한 금자씨'에서 마녀역으로 나왔다.
윤주의 부인 역할은 김호정이 연기.
아파트 지하실이 공포스럽고 미스테리한 장소로 나온다. 전체적으로 화면이 약간 어두운 편.
이성재가 노래방에서 부르는 만화주제가 '플란다스의 개'를 들으니 어려서 흑백TV로 보던 TV 만화영화가 생각난다. 특히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이 길을 파트라슈와 함께 걸었네. 하늘과 맞닿은 이 길을. 랄라라..." 로 이어지는 주제가는 지금도 기억이 난다.
'바람난 가족' '돈의 맛'의 임상수 감독이 깜짝 출연.
봉 감독은 어렸을 때부터 '수사반장' 등에 나온 변희봉을 너무 좋아해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경비원 역할을 염두에 두고 썼다.
폐옷더미에서 구분이 잘 가지않는 부랑자가 부스스 일어나는 장면은 영화 '에이리언' 1편에서 파이프 틈새에 숨어 있다가 파이프 닮은 머리를 가진 에일리언이 슬그머니 일어나는 장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 장면 은근히 웃긴다. 철없는 아이들은 무리지어 부랑자를 쫓아가며 괴롭히는 너머로 할머니가 평행봉을 한다.
1998년 초 실제 일어난 새마을금고 강도사건을 소개한 TV영상을 그대로 사용. 여직원이 맨 손으로 강도를 잡는 CCTV 장면은 실제 새마을금고에 설치된 현장 카메라 영상이다. MC 임성훈과 가수 남궁옥분 옆에 앉은 단발머리 여인이 실제 여직원이다.
아파트 옥상에서 강아지를 던지는 장면은 세트장의 블루매트 앞에서 찍고 배경을 합성했다.
봉 감독에 따르면 아내가 기르는 개 이름 순자는 강아지의 턱이 길어서 전두환 부인 이순자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 장면이 DVD에서는 화이트가 하얗게 날아 하얀 길과 흰 강아지, 하얀 소독약 연기가 제대로 구분이 되지 않았다. 블루레이에서는 이를 바로 잡아 또렷하게 알아 볼 수 있다.
배두나가 강아지를 구하러 달리는 장면에서 사람들이 아파트 옥탑에 올라가 응원하는 장면은 실제로 150명의 엑스트라를 옥탑위에 세우고 촬영.
가까이 있는 2개의 피사체에 초점이 맞도록 스플릿 포커스 필터를 사용해 촬영. 부랑자를 연기한 김뢰하는 당시 파고다공원에 가서 노숙자들과 일주일 정도 생활을 같이 했단다.
장미가 부랑자와 투닥거리는 장면은 48프레임 고속촬영해 슬로모션으로 재현한 영상. 머리를 부딪치는 벽에 미리 스티로폼을 붙여 놓았다.
협소한 공간의 느낌을 잘 잡아낸 영상. 촬영은 조용규 촬영감독이 맡았다. 그는 '완득이' '다찌마와 리' '밀양' '주먹이 운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등을 찍었다.
엔딩 타이틀에 나오는 숲은 전남 장성에서 촬영. 영화 '넘버 3'에서 한석규가 최민식을 묻기 위해 끌고간 숲도 여기다.
플란다스의 개
이성재 출연/배두나 출연/봉준호 감독
O.S.T. - 플란다스의 개
플란다스의 개 : 블루레이
봉준호 감독/이성재 출연/배두나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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