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 영화 '살인의 추억' 개봉 후 DVD 작업을 한창 할 때 봉준호 감독을 인터뷰했다.
지금은 사라진 DVD 잡지들에 한창 타이틀 리뷰를 쓰던 때여서 궁금한 게 많았던지라, 봉 감독에게 '살인의 추억' DVD 이야기를 주로 질문했다.
봉 감독이 워낙 얘기를 잘해서 예정된 1시간을 훌쩍 넘겨 대화를 나눈 뒤, 일어서기 전에 싸인을 부탁하며 '플란다스의 개'(2000년) DVD 타이틀을 내밀었다.
봉 감독이 자신의 첫 작품이라 애정이 많이 간다며 은근히 좋아하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나온 블루레이 타이틀을 보니 그때 기억이 새록 새록 떠오른다.
봉 감독의 데뷔작인 이 작품은 본명이 매리 루이스 드라 라메인 영국의 동화작가 위다가 쓴 동화 '플란다스의 개'와 아무 상관이 없다.
동화를 토대로 쿠로다 요시오가 만든 동명의 일본 TV애니메이션에서는 국내 방영시 쓰인 주제가를 빌려 왔을 뿐, 역시 상관이 없다.
이 작품은 봉 감독 특유의 블랙코미디가 은근하게 깔려 있다.
대학 교수 자리를 꿈꾸지만 취직이 안돼 힘들게 살아가는 사내와 아파트 관리실에서 경리로 일하는 아가씨가 아파트 단지에서 사라진 개 때문에 빚는 소동을 다뤘다.
개 소리를 끔찍하게 싫어하지만 마누라 때문에 개를 키워야 하는 사내는 교수가 되기 위해 돈봉투를 갖다 바치는 등 먹고 살기 위해 위선과 부정부패에 눈을 감는 지식인의 부조리를 다뤘다.
어쩌면 주인공 사내는 적당히 비겁한 이 시대 수 많은 소시민의 전형일 수 있다.
그만큼 캐릭터가 확실히 살아 있다.
여기에 봉 감독은 코믹한 에피소드와 사라진 개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미스테리한 요소를 가미해 웃음과 긴장감을 준다.
경비원의 손동작을 따라 갑자기 움직이는 앵글이나 사람들이 아파트 옥상을 가득 채운 판타지스러운 영상 등에서 재기발랄한 봉 감독 특유의 연출 감각을 엿볼 수 있다.
흥행에 크게 성공하진 못했어도 봉 감독의 남다른 재능이 빛난 작품이다.
1080p 풀HD의 1.85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무난한 화질이다.
전체적으로 화면이 약간 어둡고 윤곽선이 명료하지 못하며, 어두운 부분의 디테일이 떨어지는 등 최신작과 비교하면 아쉽지만 그래도 DVD보다는 많이 개선됐다.
특히 DVD에서 화이트피크가 높아 하얗게 날아갔던 장면이 약간 어두워지면서 또렷하게 살아 났다.
DTS-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개짖는 소리가 스피커 따라 이동하며 들리는 등 적당한 서라운드 효과를 들려 준다.
부록은 DVD 타이틀과 동일한 감독 음성해설, 배두나 인터뷰 등이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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