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캠피온 감독은 작품들 속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홀로서기에 대해 일관된 메시지를 견지해 왔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이 바로 '피아노'(The Piano, 1993년)다.
이 작품 속 주인공인 에이다(홀로 헌터)는 아주 척박한 환경에 놓인 외로운 여성이다.
그의 현실을 대변해 주듯 사방이 온통 진흙밭 투성이인 뉴질랜드에서 그는 오로지 딸과 피아노에 의지해 살아간다.
하나 뿐인 남편(샘 닐)은 온통 땅을 사서 넓히는데만 관심이 있고, 에이다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엎친데 덥친 격으로 에이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오로지 딸과 수화로만 대화하는 에이다에게 유일하게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통로는 피아노 뿐이다.
그가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연주하는 피아노는 에이다의 말이자 감정이다.
그 속에서 그는 야만적인 남성 베인스(하비 케이텔)를 만나 사랑에 눈을 뜬다.
그때부터 에이다의 외로운 싸움이 시작된다.
척박한 환경에서 홀로 살아남기 위한, 진정한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연약한 에이다의 싸움은 격렬하고 파괴적이다.
결국 에이다는 모든 굴레를 끊고 스스로 살아 남는다.
캠피온 감독은 에이다의 지난한 감정 싸움을 뉴질랜드의 험난한 자연풍경과 함께 농밀하게 표현했다.
그 과정을 어찌나 자연스럽게 풀어냈던지, 영화를 보다 보면 어느새 에이다에게 감정이 이입돼 그의 싸움을 응원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캠피온 감독의 힘이다.
에이다는 한 번도 굴하지 않고 누구를 탓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자신의 유일한 안식처였던 피아노를 버림으로서 스스로 홀로서기에 성공한다.
캠피온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여기에 있다.
그 어떤 페미니스트의 전투적 웅변보다도 이 작품이 강렬한 힘을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1080p 풀HD의 1.78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좋은 편은 아니다.
어두운 장면에서 지글거림이 두드러지고 윤곽선이 두터워 디테일이 떨어진다.
그래도 과거 스페셜 에디션(SE)으로 출시된 DVD 타이틀(http://wolfpack.tistory.com/entry/피아노-SE)보다는 화질이 좋은 편이다.
음향은 DTS-HD 2.0 채널을 지원한다.
부록으로 SE DVD의 두 번째 디스크에 수록된 감독과 제작자 인터뷰, 작곡가 마이클 니먼 인터뷰, 제작과정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다만 DVD에 수록된 감독과 제작자의 음성해설은 빠져 있어 아쉽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초반 에이다가 뉴질랜드에 도착하는 장면은 뉴질랜드 서쪽 흑사장에서 찍었다. 남자 배우 샘 닐도 뉴질랜드 출신.
캠피온 감독은 초기에 마이클 니먼을 영화음악 작곡가로 선택한다. 감독의 주문은 한가지,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과 많은 작품을 함께 한 니먼에게 그리너웨이 스타일로만 만들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주인공을 연기한 홀리 헌터와 그의 딸 역을 맡은 안나 파킨. 캠피온 감독은 남자 배우인 샘 닐보다 키가 큰 여성을 원했으나 헌터를 만나본 뒤 생각이 바뀌었다.
캠피온 감독도 뉴질랜드 출신으로 13세때부터 농장에서 살았으며 대학은 호주 시드니에서 마쳤다. 영국인들은 뉴질랜드에 와서 숲을 없애는데 주력했다. 그들에게 익숙한 풍경인 농사지을 초원을 만들기 위한 목적과 숲이 주변 시야를 가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캠피온 감독은 브론테 자매 등 19세기 문학을 좋아한다. 이 작품의 시대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는 이 작품으로 칸영화제 사상 처음으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여성 감독이 됐다.
하얗게 쏟아져 들어오는 빛이 인상적이다. 촬영은 조명감독 출신인 스튜어트 드라이버그가 맡았다. 여주인공 역할로 시고니 위버, 안젤리카 휴스턴, 제니퍼 제이슨 리, 이자벨 위페르, 줄리엣 비노쉬, 매들린 스토우 등이 고려됐다.
홀리 헌터는 실제로도 아주 뛰어난 피아노연주 실력을 갖췄다. 그래서 극중 연주는 모두 그가 직접했다. 심지어 작곡가인 마이클 니먼 조차도 쉽게 연주하기 힘든 곡들을 그가 소화해냈다.
아내를 소유물로 생각하고 잇따라 죽인 푸른 수염의 전설이 극 중 극 형태로 나오는 것은 당시 여성들이 처했던 사회적 위치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블루레이는 무삭제로 출시돼 은연 중 성기 등이 슬쩍 노출된다. 에이다의 피아노 연주는 그의 감정을 대변하면서 에로티시즘으로 이어져 대단히 관능적이다.
뉴질랜드의 언덕 곡선을 그대로 보여주는 풍경. 언덕 위 꼬마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해 실제 180cm에 이르는 어른이 꼬마 역을 대신했다.
숲 속 촬영은 물 속 같은 이미지 연출을 위해 푸른 빛을 강하게 강조했다. 음악을 맡은 마이클 니먼은 부록으로 실린 인터뷰에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서운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 작품은 제 66회 아카데미 각본, 여우주연,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홀리 헌터는 다이빙이 취미여서 물 속에 빠진 연기도 직접했다. 막판 피아노에 묶인 수중 속 장면만 대역 인형을 썼다.
헌터는 스코틀랜드 표준수화를 먼저 배운 뒤 배우들만의 표현 방법을 가미했다. 프랑스 배우 제라르 드파르듀의 동생 알란 드파르듀도 제작에 참여했다.
이 영화는 얼터너티브록 밴드 너르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자살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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