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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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리본(블루레이)

울프팩 2022. 8. 20. 23:14

미카엘 하네케(Michael Haneke)는 특이한 감독이다.

'퍼니 게임' '피아니스트' 등 그의 전작들을 보면 폭력을 혐오하면서도 직접적이며 과격한 폭력 묘사를 마다하지 않는다.

 

제62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하얀 리본'(Das Weisse Band, 2009년)도 마찬가지다.

때리는 것은 물론이고 동물의 사체 등 폭력 장면들이 적나라하게 나온다.

 

이런 것들은 평소 감독의 신념에서 비롯된 아이러니다.

삶을 직시하는 그는 폭력과 고통조차도 외면하지 않고 정면에서 똑바로 다룬다.

 

그것이 희망과 고통이 교차하는 삶을 인식하는 감독의 방법이다.

이 영화 또한 폭력에 대한 비판과 은유로 가득찼다.

 

내용은 1913년 독일의 한적한 농촌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뤘다.

딱히 별다른 일이 없는 조용한 마을에 의사가 말에서 추락하는 사건을 계기로 방화와 실종, 죽음 등이 있따라 발생하면서 공포에 빠지는 이야기다.

 

마을 학교에 새로 부임한 젊은 교사가 사건을 캐면서 아이들과 얽힌 뜻밖의 비밀을 알게 된다.

제목인 하얀 리본은 영화 속에서 도덕과 권위에 대한 복종을 의미하는 상징이다.

 

겉보기에 마을은 평화롭고 조용하지만 실상은 어른들에 대한 절대 복종을 요구하는 폭압적이고 강요된 도덕이 아이들을 지배하는 위장된 평화다.

유교적 도덕률에 따르면 당연한 것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감독은 절대 복종의 권위를 공포로 봤다.

 

그는 관계가 어떻든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순간 인간으로서 기본적 권리를 잃는다고 봤다.

심지어 이를 "테러리즘의 뿌리"라고 규정했다.

 

특히 어려서부터 부모세대에게 맹목적으로 복종과 지배질서의 이데올로기를 주입당하는 것을 가장 큰 폭력으로 본 것이다.

성장 과정은 물론이고 평생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네케 감독은 이런 생각을 공포물과 미스터리물을 혼합한 듯한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냈다.

마치 음습한 비밀이 도사린 듯한 마을 분위기는 왠지 으스스한 공포물의 분위기를 풍기면서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은 수사물처럼 궁금증을 유발하며 시선을 끌어 당긴다.

 

그만큼 스토리 텔링의 완급조절이 잘 됐으며 이를 적절한 편집과 사진같은 영상을 통해 시각적으로도 훌륭하게 구현했다.

무엇보다 감독은 흑백으로 촬영했다.

 

1910년대 분위기를 잘 살리기 위한 방법인데, 오래된 사진을 보는 것처럼 흑백 영상이 주는 무게감이 남다르다.

마치 일본 홋카이도의 비에이를 연상케 하는 설원 풍경이 아주 인상적이다.

 

언제나 그렇듯 하네케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보는 사람에게 해답을 맡기는 열린 결말을 택했다.

경우에 따라서 답답할 수도 있지만 각자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국내 출시된 블루레이 타이틀은 블루레이와 DVD 등 2장으로 구성됐다.

이 작품은 헤어 누드가 등장하는데 훼손없이 그대로 수록돼 반갑다.

 

1080p 풀 HD의 1.8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흑백 영상이어서 특별히 화질의 흠이 드러나지 않는다.

윤곽선은 깔끔하고 화이트 피크도 높지 않아 영상이 들뜨지 않는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요란한 액션물이 아닌 만큼 서라운드 효과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부록으로 제작과정, 감독 인터뷰, 칸 영화제 시사회, 감독 소개 등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다만 부록 자막에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를 디크리히...로 표기하는 등 오자가 보인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오스트리아 태생의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어른들에게 맹목적으로 도덕과 이상을 주입당하고 강요받는 아이들 영화를 만들기 위해 이 작품을 기획했다.
어려서 목사가 되고 싶었던 감독은 이 작품을 종교와 연관지었다. 독일 북부지역의 주류였던 루터파 개신교에 대한 이야기다. 감독은 대본을 쓸 때부터 여배우 수잔느 로다를 염두에 뒀다.
감독이 어려서 본 문서나 사진은 모두 흑백이었다. 그 시대의 기억을 살리기 위해 영화를 흑백으로 찍었다. 이를 위해 독일 사진작가인 아우구스트 잔더의 사진을 많이 참조했다.
제작진은 구 동독이었던 독일 북부에서 15년간 비어있던 저택을 찾아내 촬영했다.
크리스티안 베르거가 촬영한 설원은 마치 비에이 같다. 그는 하네케 감독의 전작 '피아니스트'와 '히든'도 촬영했다.
하네케 감독은 "폭력은 공포, 즉 두려움에서 시작된다"고 봤다. 외국인 혐오처럼 익숙하지 않은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곧 폭력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감독은 투박한 농촌 지역 사람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루마니아 북부 마을에서 100여명의 농부를 데려와 마을 사람들로 출연시켰다. 독일 농부들은 너무 현대화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 아이들로 구성된 성가대에서 영감을 얻은 감독은 10년간 대본을 쓰며 3부작 TV 시리즈로 구상했다. 그러나 여의치 않자 영화로 만들었다.
감독은 아역을 뽑기 위해 6개월에 걸쳐 독일 북부의 마을을 샅샅이 뒤지며 7,000명의 아이들을 만났다. 이 작품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2010년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