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인터뷰

한국판 '쿨러닝' 국가대표 봅슬레이 선수 김동현의 드라마틱한 이야기

울프팩 2010. 9. 8. 21:51
인터뷰를 약속한 장소에 가서 앉아 있으려니 훤칠한 청년이 들어왔다.
키 184cm, 몸무게 90kg.

국가대표 봅슬레이 선수인 김동현이다.
그의 미니홈피를 들쳐보니 식스팩이 훌륭한 몸짱이다.

인터뷰 전에 약간 걱정을 했다.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데 어떻게 인터뷰를 하나.

올해 24세의 김동현은 청각장애우다.
열흘 전 KT의 도움으로 인공 와우 수술을 받아 소리를 듣게 됐지만, 인공 와우 수술을 받은 청각장애우들을 만나보면 발음이 불분명하거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점을 떠나 자신의 장애 때문에 주눅이 들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수도 있었다.
한마디로 사회성의 결여였다.

그런데.
김동현은 달랐다.
연신 웃는 얼굴로 어찌나 말을 청산유수로 잘하는지, 과연 청각장애가 맞나 의아할 정도였다.

그의 삶을 들어보면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청각장애를 타고 났지만 그는 불편한 점을 몰랐다고 한다.

처음부터 불분명하게 소리가 들리다보니 세상이 그런 줄 알았다는 것.
그만큼 그는 낙천적이다.

그의 부모는 그런 그를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보냈다.
아이들과 어울려 사회성을 기르라는 뜻이었다.

다행이 그가 다닌 초등학교는 일반 학생과 장애 학생을 섞어서 교육하는 통합학교였다.
그는 "장애우는 사회성을 기르려면 일반 학교를 다니는 것이 오히려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듣지 못하면 선생님의 수업이나 친구들과 대화는 어떻게 할까.
여기서 그의 남다른 재주가 발휘됐다.

바로 독순술이다.
어려서부터 소리를 듣지 못하니 절로 눈에 의지해 남의 입술을 읽는 훈련을 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입술 모양만 알아볼 수 있으면 그는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볼' 수 있다.
오히려 소리를 듣는 사람보다 더 잘 듣는 셈이다.

그는 TV도 소리를 꺼놓고 곧잘 본다.
밤늦게 TV에서 오락프로를 하면, 식구들의 잠을 깨우지 않도록 아예 TV 소리를 꺼놓고 화면만 보며 웃는다.
출연자들의 입술을 읽는 것이다.

그래도 아쉬움은 있었다.
인공 와우 수술 전까지 그의 꿈은 전화를 걸고 받는 것이었다.

입술을 읽을 수 없는 전화는 그에게 먼나라 이야기였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그는 영상통화가 등장하기를 바랬다.

또 알람도 진동을 이용했다.
그는 "소리를 못들으니 진동으로 설정한 휴대폰을 손에 묶어놓고 잔다"고 말했다.

남의 입술을 읽는 특이한 재주와 성격이 밝아서 친구들과 잘 어울린 그는 축구를 엄청 좋아했다.
중학교 때는 스스로 축구부를 만들어 주장까지 했다.
그는 "운동이 사회성을 키우는데 최고"라고 주장했다.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형이 실업팀 선수로 뛰면서 고생하는 것을 본 부모의 만류로 선수의 꿈을 접고 연대 체육교육학과에 입학했다.
선수를 못한다면 체육교사나 스포츠 에이전트라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처음으로 수화를 배우고, 오른쪽 귀만 인공 와우 수술을 했다.
양 쪽을 다하면 좋지만 집안 형편상 어려웠다.

아버지는 고 3때 돌아가셨다.
다행히 공부를 곧잘 해서 거의 모든 학비는 장학금으로 해결했다.

한 쪽 귀가 들리기 시작하니 세상이 달라졌다.
그는 "처음으로 들은 바람소리, 자동차 경적 소리 등 남들이 신경도 안쓰는 온갖 소음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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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인공 와우 수술 때문에 왼쪽 귀 윗부분의 머리를 밀었다.]

대학교 3학년때인 2008년 12월, 기말고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연대 교정에서 봅슬레이 서울시 대표 선발전이 열렸다.
우연히 구경을 갔다가 재미삼아 도전했는데 덜컥 붙었다.

이때부터 그의 드라마틱한 삶이 시작된다.
워낙 기초 체력이 좋고 순발력이 좋았던 그는 1주일 뒤인 2009년 1월 나가노에서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도 응시해 거뜬히 붙었다.

그것도 1등이었다.
바로 '무한도전'팀이 촬영했던 대회였다.

생전 봅슬레이가 뭔지도 몰랐던 청년이 1주일 사이에 국가대표가 된 것이다.
대표팀 가운데 운동 경험이 전혀없는 일반인은 그 뿐이었다.

선발 당시 그가 청각장애가 있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한 쪽 귀로만 듣다보니 방향감과 균형감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그래도 대표팀은 개의치 않았다.
그의 탁월한 시각 때문이었다.

봅슬레이는 코스를 읽는 안목이 중요하다.
코너가 어떤 각도로 어떻게 휘어지고 높낮이 및 어떻게 구성됐는 지를 사전에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선수들은 전세계 16개 뿐인 봅슬레이 경기장의 코스를 모두 외우고 있다.
특히 김동현은 코스 파악 능력이 탁월했다.

코스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경기 도중 썰매가 뒤집히는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그의 고백에 따르면 우리 대표팀도 벤쿠버 올림픽 때 썰매가 뒤집힐 뻔한 순간이 있었는데 선수들이 기민하게 대처해 위기를 넘겼다고 한다.

한 달도 안돼 그는 2월에 올림픽 다음으로 권위있는 봅슬레이 월드컵 대회에 당당히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위치는 브레이크맨이었다.

브레이크맨은 맨 마지막에 타기 때문에 가장 오래 썰매를 밀고 달려야 한다.
성적은 30여개 팀 중에 20위권이었지만 가능성이 보였다.

그때부터 7개 대회를 내리 출전했다.
봅슬레이의 올림픽 출전권은 7개 대회 점수를 합산해 국가대표 랭킹 17위에 들어야 한단다.
우리 팀은 14위였다.

한국이 동계 올림픽 사상 최초로 봅슬레이 출전권을 따낸 것이다.
그로서는 봅슬레이 입문 1년 만이었다.

그야말로 영화 '쿨러닝'이 따로 없었다.
공교롭게 쿨러닝의 주인공이었던 실제 자메이카 봅슬레이 국가대표팀의 코치였던 미국인이 우리 국가대표팀의 미국 훈련을 담당한 코치였다.
그리고 처지가 비슷하다보니 우리 대표팀은 자메이카팀과 이메일도 자주 주고받고 친하단다.

벤쿠버 동계올림픽은 그에게 축제였다.
처음부터 큰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부담도 없었다.

그런데 결과는 의외였다.
수십 년 역사를 지닌 일본을 제끼고 결선에 진출, 19위의 성적을 올렸다.
올림픽 출전 경험도 없고 변변한 지원이나 시설도 없는 국가로서는 쾌거나 다름없다.

그는 올해도 국가대표에 선발됐다.
하지만 안심하기 이르다.

차기 대회인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때까지 매년 대표 선발전을 치러야 한다.
거기다 그는 지금 연대에서 특수 체육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다.

학업과 운동을 병행해야 하는 처지다.
벤쿠버 동계올림픽을 앞둔 지난해 12월 말에도 잠시 방한해 밤새워 공부하고 기말고사를 치렀다.

그는 학업을 소홀히 할 생각이 없다.
기회가 된다면 유학까지 다녀와 장애인 올림픽위원(IPC)이나 스포츠 외교관이 되는 게 꿈이다.

그 이전에 선수로서 꿈은 우리가 동계올림픽을 유치해 평창에서 메달을 목에 거는 것이다.
그럴려면 해야 할 것이 많다.

우선 넘어야 할 것은 영어의 벽이다.
그는 "영어는 고주파 발음이 많은데 청각장애가 있으면 인공 와우 수술을 해도 이를 들을 수 없다"며 "그래서 청각장애우들은 영어를 배우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수능 때는 듣기 평가를 농아들을 위한 지문보기 시험으로 대신 봤고 토익, 토플의 듣기 평가는 무조건 찍었다.

영어 뿐 아니라 우리말 발음도 재활 치료를 통해 꾸준히 다듬어야 한다.
인공 와우 수술 전까지 그는 자기 목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만큼 멋대로 발음을 했다.
그때마다 친구들이 발음을 고쳐 줬다.

그는 "친구들이 매번 발음을 고쳐줬다"며 "그래서 와우 수술 못지 않게 재활치료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재활치료는 보험처리가 되지 않는다.
제도적으로 해결이 돼야 할 문제다.

이제 훈련에 들어가면 그는 몸을 불려야 한다.
그에게는 체중을 불리는 것이 가장 힘들다.

봅슬레이는 체중이 나갈 수록 힘이 실리면서 가속도가 붙어 유리하기 때문에 대표팀에 뽑힌 뒤 체중을 평소 75kg에서 95kg까지 늘렸다.
4인승 봅슬레이는 중량 제한이 630kg.

여기서 썰매가 210kg을 넘으면 안된다.
나머지 420kg은 선수들 체중으로 받쳐야 한다.

즉, 선수 1명당 100kg 이상 나가야 한다.
우리 대표팀은 벤쿠버 동계올림픽 당시 420kg에서 60kg이 모자라 불리하다보니 썰매 안쪽에 50kg의 납을 붙였다.
납은 썰매 중량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까지 하면서 봅슬레이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게까지 빠져들게 만드는 봅슬레이의 매력은 무엇일까.
"열정이죠. 갖고 있는 모든 역량을 짧은 시간 안에 쏟아부어 태워버리게 만들어요. 극도의 긴장 속에 분비되는 아드레날린을 즐기는 겁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장애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그는 "절대 꿈을 포기하지 마라. 도전하라.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꿈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인공 와우 수술을 하고 나서 꿈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참으로 대견하면서도 믿음직스럽고 멋있는 청년이었다.
김.동.현.

봅슬레이 만큼 낯설었던 그의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앞날에 성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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