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지오 레오네(Sergio Leone) 감독의 '황야의 무법자'(A Fistful Of Dollars, 1964년)는 이탈리아에서 만든 서부극인 스파게티 웨스턴 붐을 일으킨 영화다.
이 작품 이전에도 20편이 넘는 서부극이 이탈리아에서 제작됐지만 전 세계적으로 히트한 스파게티 웨스턴은 이 작품이 처음이다.
더불어 이 작품은 레오네 감독과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 콤비의 이름을 널리 알리며 소위 '무법자' 3부작 시리즈의 모태가 됐다.
이 작품을 계기로 망토를 걸친 채 모자를 눌러쓰고 담배를 삐딱하게 문 떠돌이 총잡이가 등장하는 '황야의 무법자' '속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무법자' 등 3편이 제작됐다.
세 작품 모두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인공을 맡으면서 TV시리즈 외에 영화 분야에서도 성가를 떨쳤다.
내용은 두 집단이 대립하는 어느 마을에 찾아든 떠돌이 총잡이가 세력 간 알력을 이용해 이들을 물리치는 이야기다.
떠돌이 총잡이는 한꺼번에 서너 명을 쓰러뜨리는 귀신같은 총솜씨는 물론이고 두 집단이 반목하게 만드는 계략까지 갖춰서 양쪽을 오가며 담대한 활약을 펼친다.
사실 이 작품의 뼈대는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만든 '요짐보'에서 가져왔다.
요짐보는 방랑 무사가 두 악의 세력이 장악한 마을에 나타나 양쪽을 오가며 계략과 칼솜씨로 모두 쓰러뜨리는 내용이다.
요짐보는 이 작품뿐만 아니라 훗날 브루스 윌리스가 등장하는 '라스트맨 스탠딩'에도 영향을 미쳤다.
레오네 감독은 아키라 감독의 영화와 비슷한 이야기의 이 작품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차별화해 '요짐보'보다 더 큰 인기를 끌었다.
일단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맡은 주인공 캐릭터가 기존 서부극과 확연하게 달랐다.
미국에서 만든 정통 서부극은 미국식 개척정신을 정당화하고 기독교식 가족주의에 입각한 정의를 강조한 반면 이 작품의 주인공인 무법자는 선과 악의 경계에 서 있는 모호한 인물이다.
그의 목적은 존 웨인이나 헨리 포드가 연기한 보안관들처럼 정의 구현 사회가 아니라 돈에 있다.
'한 줌의 달러'라는 영화 제목처럼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거리낌 없이 사람을 죽이고 악당들과도 손을 잡는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아무 이득도 없는 고통받는 여인을 구하는 일에 목숨까지 걸고 나서니 정체성이 애매모호할 수밖에 없다.
레오네 감독이 이런 캐릭터를 통해 강조한 것은 정의로운 역할극으로 포장된 미국 서부극의 민낯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미국 서부 개척사가 과연 그들의 영화에서 강조한 것처럼 마냥 자랑스럽고 정의롭지만은 않다는 주장이다.
결국 황금을 향한 욕망과 이를 쟁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휘두른 추악한 폭력을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했다는 것이 레오네 감독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가 만든 무법자 시리즈의 주인공은 돈을 향한 욕망과 이를 위한 무차별적인 폭력을 휘두르는 일에 거리낌이 없다.
이런 면모는 정통 미국식 서부극을 답답해 보이게 만들며 상대적으로 후련함과 통쾌함을 줬다.
반면 과격한 폭력 때문에 학살극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오네 감독의 스파게티 웨스턴이 인기를 끈 것은 개성 강한 캐릭터와 한 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음악, 그리고 스타일리시한 영상이 잘 조화를 이뤘기 때문이다.
레오네 감독의 무법자 시리즈 주인공은 제대로 된 이름도 없는 떠돌이로, 복장마저 후줄근하다.
기존 미국식 서부극의 주인공은 번듯한 복장을 갖춘 반면 무법자 3부작의 주인공은 특이한 망토를 두르고 담배를 질겅질겅 씹는다.
길게 늘어진 망토 때문에 허리춤에 찬 총은 잘 보이지도 않는데 어느 순간 망토가 펄럭하면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땅바닥에 시체가 구른다.
이 위로 엔니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가 작곡한 비장한 선율의 주제곡이 흐르며 극적인 분위기를 강조한다.
이 작품의 주제곡인 'Titoli'를 비롯해 '석양의 무법자' '속 황야의 무법자' 주제가는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많이 알만큼 유명하다.
작품의 극적 긴강잠을 높인 것은 레오네 감독의 타이트한 영상이다.
그의 전매특허 같은 극단적인 클로즈업은 이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등장한다.
일촉즉발의 순간 화면을 가득 채우는 인물들의 눈을 커다랗게 잡은 익스트림 클로즈업은 긴장감을 최고로 고조시킨다.
또한 허리춤에 위치한 탄띠 높이에서 상대를 바라본 영상이나 결투의 현장을 조망하듯 내려다본 부감 샷과 높게 떠오른 태양 아래 스산한 바람이 부는 거리 등을 길게 잡은 영상 등 다양한 앵글을 통해 서부극의 황량함과 잔혹함을 부각시켰다.
가치의 전복을 통해 극적 재미를 끌어올리고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 레오네의 실험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라는 위대한 걸작에서 최고의 결실을 봤다.
이 작품은 그 여정의 출발점이다.
안타까운 것은 명작인데도 불구하고 블루레이 타이틀이 아직까지 국내에 출시되지 않은 점이다.
미국에서 출시된 블루레이 타이틀은 한글자막이 없다.
1080p 풀 HD의 2.40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미국판 블루레이 타이틀은 무난한 화질이다.
중간에 플리커링도 보이고 세로 줄무늬와 필름의 잡티 등이 고스란히 드러나며 세월의 흔적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일부 장면에서는 약간씩 변색이 되는 등 톤도 일정하지 않다.
그럼에도 DVD 타이틀보다는 많이 개선됐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폭발음도 약해서 위력적이지 않다.
부록으로 영화학자 크리스토퍼 프레일링경의 음성해설과 그의 영화 관련 소장품 소개, 제작과정, 레오네 감독에 대한 회상, TV 대담, 로케이션 장소 비교 등이 들어 있다.
참고로 과거 국내 출시된 DVD 타이틀은 상영시간이 100분인 오리지널판과 96분 분량의 얼터너티브판 등 두 가지 판본을 2장의 디스크에 담고 있다.
미국판 블루레이 타이틀은 오리지널 판본이기는 한데 상영시간이 99분으로 표기돼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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