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고 늦고의 차이는 있겠지만, 죽음은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명제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죽음을 맞는 경우도 있지만, 이를 알고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1998년)는 죽음을 기다리는 한 남자의 평온한 일상을 그렸다.
그의 일상은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옛 추억을 그리워하며 아련한 사랑을 한다.
다만 죽음이 예정돼 있다는 것만 다를 뿐.
그래서 그의 일상은 더없이 소중하고 아름답다.
이 영화를 보고나면 마루에 앉아서 발톱을 깎고, 가족과 수박을 먹으며 마당에 씨를 뱉어내고 연인과 아이스크림을 나눠먹는 평범하고 소소한 우리네 일상이 한없는 무게감으로 다가 온다.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상을 이토록 큰 의미 부여와 함께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작은 디테일도 놓치지 않는 허 감독의 찬찬한 연출력 덕분이다.
여기에 때로는 무심하고 때로는 담담하게 한 남자와 그의 주변을 담은 고 유영길 촬영감독의 영상은 커다란 호소력을 발휘한다.
당대 최고의 스타인 한석규 심은하의 편안하고 자연스런 연기, 산울림의 '창문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같은 추억의 노래, 허 감독의 연출과 고 유영길 촬영감독의 촬영이 제대로 조화를 이뤄 오래도록 기억나는 명작이 됐다.
단연 이 작품과 '봄날은 간다'는 허 감독 최고의 작품으로 꼽을 만 하다.
1080p 풀HD의 1.85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괜찮은 편이다.
필름 그레인과 잡티, 필름손상 흔적이 보이고 색도 바랜 편이지만 우리 필름 보존 현실을 감안하면 DVD보다 월등 개선된 샤프니스에 만족해야 할 듯 싶다.
음향은 DTS-HD 5.1 채널을 지원하지만 서라운드 효과가 크게 의미없는 영화다.
부록은 DVD와 동일하게 감독 해설, Q채널의 제작 과정 다큐 등이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 play 버튼이 붙은 사진은 버튼을 누르시면 관련 동영상이 재생됩니다. * 중심공간인 사진관은 군산 월명동 주차장 부지에 만든 오픈세트다. 한석규가 친구 부친의 조문을 간 곳은 전주화장터에서 촬영. 허 감독에 따르면 심은하는 배우한테 연기를 자율적으로 맡기고 테이크를 반복해 가며 여러번 촬영하는 것을 힘들어 했단다. 허 감독은 "심은하가 알아서 하는 타입이 아니니 정확한 디렉팅을 해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정원의 집은 제작진이 학교 운동장에서 야구를 하다가 공이 넘어간 집을 우연히 발견해 촬영 장소로 선택. 산울림의 노래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는 허 감독이 좋아해 삽입. 어렴풋한 빛이 마루 한 켠을 훑으며 들어오는 가운데 한석규가 발톱을 깎는 장면은 오즈 야스지로 영화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로 그의 영화 중에 비슷한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한석규가 필름을 끼우다 떨어트려 심은하가 웃음을 터뜨리는 장면은 NG컷인데, 허 감독이 재밌어서 그냥 사용했다. 할머니와 이마가 벗어진 큰 아들을 제외하고 가족 사진에 나온 사람들은 모두 동네 주민들이다. 할머니로 나온 고 김애라씨는 1940년대 만주에서 연극을 한 오래된 원로 배우다. 2001년 작고했는데 미처 영정 사진을 마련하지 못해 이 작품때 촬영한 바로 이 장면의 스틸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사용했다. 유영길 촬영감독은 이 작품을 마치고 고인이 됐다. 그는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 '기쁜 우리 젊은 날' '칠수와 만수'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초록 물고기' 등 여러 작품을 촬영했다. VTR을 못다루는 아버지에게 조작법을 아들이 가르쳐주는 장면은 허 감독의 경험담이다. 이 장면을 어떻게 찍어야 할 지 고민하던 허 감독은 촬영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심은하를 몰래 찍었다고 한다. 심은하가 돌을 던지는 장면은 사랑에 아파하고 속상해 하는 심정을 끊김없이 담기 위해 카메라 2대를 이용해 사진관 안팎에서 동시에 찍었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는 커피숍 장면은 실제로는 사진관 바로 맞은 편에서 촬영. 일부러 다른 장소처럼 보이도록 공중전화 박스를 옮겨왔다. 허 감독이 사진관 장소로 이 곳을 고른 이유는 바로 앞에 서있던 나무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름처럼 보이라고 잎에 스프레이를 칠하고, 겨울 장면에서 소금을 뿌리다보니 영화 개봉 후 말라죽어 베어냈다. 허 감독은 가수 김광석이 자살 후 활짝 웃고 있는 영정 사진이 인상깊어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 이후 '죽어가는 사진사가 자신의 영정사진을 찍는 것'으로 영화의 줄기가 가닥을 잡았다. 눈은 솜과 소금으로, 고드름은 실리콘으로 만들었다. 이 장면은 실제 눈 오는 날 찍었다. 하지만 사진관은 일정에 쫓겨 눈 오는 날을 기다릴 수 없어 인공으로 만들어 촬영. 이 영화에서 가장 잊혀지지 않는 장면은 죽어가는 주인공이 불꺼진 방에서 베개를 껴안고 소리죽여 울고, 이를 아버지가 방 문 앞에서 말없이 듣는 장면이다. 참 가슴이 먹먹한 장면이다. 이 작품은 대종상 신인감독상과 시나리오상, 디렉터스컷 올해의 감독상과 남녀 연기자상, 백상 예술대상 작품상과 최우수여자연기상, 청룡영화제 최우수 작품상과 신인감독상 촬영상 여우주연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람에게 음료수를 따주는 황당한 장면은 그만큼 연애 경험이 없는 여자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심은하는 이 작품으로 여러 상을 받으며 연기 실력을 인정받았다. 한석규의 편안한 웃음이 참 좋았다. 그가 부른 주제가도 좋았다. 한석규는 1984년 제 5회 강변가요제에 '덧마루'라는 밴드의 보컬로 참가해 '길 잃은 친구에게'라는 노래를 불러 장려상을 받았다. 유달리 실력있는 참가자들이 많았던 이 해 대상은 바로 'J에게'를 부른 이선희였다.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의 죽음을 앓았을까 몰랐을까. 영화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지만 여자는 그의 죽음을 모른채 엔딩을 맞는다. 허 감독은 남자의 죽음을 모르는 여자를 통해 사랑이 열병처럼 왔다가 추억이 돼 지나간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중에 똑같은 제목과 내용으로 리메이크된 일본 영화는 여자가 남자의 죽음을 아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죽음을 맞는 경우도 있지만, 이를 알고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1998년)는 죽음을 기다리는 한 남자의 평온한 일상을 그렸다.
그의 일상은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옛 추억을 그리워하며 아련한 사랑을 한다.
다만 죽음이 예정돼 있다는 것만 다를 뿐.
그래서 그의 일상은 더없이 소중하고 아름답다.
이 영화를 보고나면 마루에 앉아서 발톱을 깎고, 가족과 수박을 먹으며 마당에 씨를 뱉어내고 연인과 아이스크림을 나눠먹는 평범하고 소소한 우리네 일상이 한없는 무게감으로 다가 온다.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상을 이토록 큰 의미 부여와 함께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작은 디테일도 놓치지 않는 허 감독의 찬찬한 연출력 덕분이다.
여기에 때로는 무심하고 때로는 담담하게 한 남자와 그의 주변을 담은 고 유영길 촬영감독의 영상은 커다란 호소력을 발휘한다.
당대 최고의 스타인 한석규 심은하의 편안하고 자연스런 연기, 산울림의 '창문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같은 추억의 노래, 허 감독의 연출과 고 유영길 촬영감독의 촬영이 제대로 조화를 이뤄 오래도록 기억나는 명작이 됐다.
단연 이 작품과 '봄날은 간다'는 허 감독 최고의 작품으로 꼽을 만 하다.
1080p 풀HD의 1.85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괜찮은 편이다.
필름 그레인과 잡티, 필름손상 흔적이 보이고 색도 바랜 편이지만 우리 필름 보존 현실을 감안하면 DVD보다 월등 개선된 샤프니스에 만족해야 할 듯 싶다.
음향은 DTS-HD 5.1 채널을 지원하지만 서라운드 효과가 크게 의미없는 영화다.
부록은 DVD와 동일하게 감독 해설, Q채널의 제작 과정 다큐 등이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 play 버튼이 붙은 사진은 버튼을 누르시면 관련 동영상이 재생됩니다. * 중심공간인 사진관은 군산 월명동 주차장 부지에 만든 오픈세트다. 한석규가 친구 부친의 조문을 간 곳은 전주화장터에서 촬영. 허 감독에 따르면 심은하는 배우한테 연기를 자율적으로 맡기고 테이크를 반복해 가며 여러번 촬영하는 것을 힘들어 했단다. 허 감독은 "심은하가 알아서 하는 타입이 아니니 정확한 디렉팅을 해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정원의 집은 제작진이 학교 운동장에서 야구를 하다가 공이 넘어간 집을 우연히 발견해 촬영 장소로 선택. 산울림의 노래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는 허 감독이 좋아해 삽입. 어렴풋한 빛이 마루 한 켠을 훑으며 들어오는 가운데 한석규가 발톱을 깎는 장면은 오즈 야스지로 영화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로 그의 영화 중에 비슷한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한석규가 필름을 끼우다 떨어트려 심은하가 웃음을 터뜨리는 장면은 NG컷인데, 허 감독이 재밌어서 그냥 사용했다. 할머니와 이마가 벗어진 큰 아들을 제외하고 가족 사진에 나온 사람들은 모두 동네 주민들이다. 할머니로 나온 고 김애라씨는 1940년대 만주에서 연극을 한 오래된 원로 배우다. 2001년 작고했는데 미처 영정 사진을 마련하지 못해 이 작품때 촬영한 바로 이 장면의 스틸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사용했다. 유영길 촬영감독은 이 작품을 마치고 고인이 됐다. 그는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 '기쁜 우리 젊은 날' '칠수와 만수'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초록 물고기' 등 여러 작품을 촬영했다. VTR을 못다루는 아버지에게 조작법을 아들이 가르쳐주는 장면은 허 감독의 경험담이다. 이 장면을 어떻게 찍어야 할 지 고민하던 허 감독은 촬영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심은하를 몰래 찍었다고 한다. 심은하가 돌을 던지는 장면은 사랑에 아파하고 속상해 하는 심정을 끊김없이 담기 위해 카메라 2대를 이용해 사진관 안팎에서 동시에 찍었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는 커피숍 장면은 실제로는 사진관 바로 맞은 편에서 촬영. 일부러 다른 장소처럼 보이도록 공중전화 박스를 옮겨왔다. 허 감독이 사진관 장소로 이 곳을 고른 이유는 바로 앞에 서있던 나무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름처럼 보이라고 잎에 스프레이를 칠하고, 겨울 장면에서 소금을 뿌리다보니 영화 개봉 후 말라죽어 베어냈다. 허 감독은 가수 김광석이 자살 후 활짝 웃고 있는 영정 사진이 인상깊어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 이후 '죽어가는 사진사가 자신의 영정사진을 찍는 것'으로 영화의 줄기가 가닥을 잡았다. 눈은 솜과 소금으로, 고드름은 실리콘으로 만들었다. 이 장면은 실제 눈 오는 날 찍었다. 하지만 사진관은 일정에 쫓겨 눈 오는 날을 기다릴 수 없어 인공으로 만들어 촬영. 이 영화에서 가장 잊혀지지 않는 장면은 죽어가는 주인공이 불꺼진 방에서 베개를 껴안고 소리죽여 울고, 이를 아버지가 방 문 앞에서 말없이 듣는 장면이다. 참 가슴이 먹먹한 장면이다. 이 작품은 대종상 신인감독상과 시나리오상, 디렉터스컷 올해의 감독상과 남녀 연기자상, 백상 예술대상 작품상과 최우수여자연기상, 청룡영화제 최우수 작품상과 신인감독상 촬영상 여우주연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람에게 음료수를 따주는 황당한 장면은 그만큼 연애 경험이 없는 여자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심은하는 이 작품으로 여러 상을 받으며 연기 실력을 인정받았다. 한석규의 편안한 웃음이 참 좋았다. 그가 부른 주제가도 좋았다. 한석규는 1984년 제 5회 강변가요제에 '덧마루'라는 밴드의 보컬로 참가해 '길 잃은 친구에게'라는 노래를 불러 장려상을 받았다. 유달리 실력있는 참가자들이 많았던 이 해 대상은 바로 'J에게'를 부른 이선희였다. 여자는 사랑하는 남자의 죽음을 앓았을까 몰랐을까. 영화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지만 여자는 그의 죽음을 모른채 엔딩을 맞는다. 허 감독은 남자의 죽음을 모르는 여자를 통해 사랑이 열병처럼 왔다가 추억이 돼 지나간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중에 똑같은 제목과 내용으로 리메이크된 일본 영화는 여자가 남자의 죽음을 아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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