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문성근 11

실종

김성홍 감독의 '실종'(2008년)은 2007년 전남 보성에서 발생한 70대 어부가 벌인 살인사건이 동기가 됐다. 어부 오 모씨는 놀러왔다가 배를 태워달라는 여성들을 배에 태우고 바다에 나가 성폭행 하려다가 살해했다. 그렇게 남자 1명과 여자 3명 등이 2차례에 걸쳐 죽었다. 오 씨는 165cm의 작고 왜소한 노인이었으나 물질에 익숙해 삿갓대로 물에 빠진 사람들을 밀어넣어 죽였다. 오 씨는 나중에 희생자의 물건과 머리카락 등이 배에서 발견돼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는 사형제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한다며 위헌법률심판을 신청했으나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결정이 나온 뒤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다. 쭈꾸미 잡이로 생계를 꾸렸던 오 씨는 부인과 자녀 사이에 2남 5녀를 두고 있다. 이 사건을 소재로 삼은 영화는 여성..

옥희의 영화

영화 시사회장에서 사회자가 감독에게 영화의 주제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감독 왈, ""주제의식을 갖고 영화를 보지마라. 우연히 사람을 만나 벌어지는 일 같은 영화다. 그만큼 다양한 면을 담았다. 마치 깔때기로 모아놓은 것 같은 (주제의식을 집약한) 영화를 싫어한다." 이번에는 객석에서 질문을 던졌다. 유부남인 감독이 과거에 어떤 여자를 사귀고 버리지 않았냐는 질문이다. 감독은 난감한 표정이다. 홍상수 감독의 '옥희의 영화'(2010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이다. 아마 홍 감독은 집요하게 영화를 해부하려는 평론가나 기자들에게 불편함을 느낀 듯 싶다. 홍 감독은 그냥 보면 되지, 굳이 무슨 의미 부여가 필요하냐는 뜻을 작품 속에서 감독을 연기한 이선균의 대사를 빌려서 전한다. 감독의 생각도 이해가 가지..

장선우 변주곡

장선우 감독은 흥행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면 마이너리티다. '꽃잎' '성공시대' 등 괜찮은 성적을 올린 작품도 있지만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경마장 가는 길' '화엄경' 등 다른 작품들은 그닥 좋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작품 성향도 마이너리티다. 소위 사회의 소외받은 계층이나 특이한 인물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바라보는 장 감독 특유의 성향은 그의 작품들을 범상치 않은 영화로 만들었다. 혹자는 재미있게 바라보기도 하지만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들도 많다. 흥행과 사회 참여적 도구로서 영화를 활용하는 두 가지 방향을 조화시키는 것이 장 감독이 넘어야 할 과제다. 하지만 굳이 조화시켜야 하는 지는 의문이다. 우리 영화계의 다양성 측면에서 장 감독이나 김기덕, 양익준 같은 감독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

질투는 나의 힘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의 시 '질투는 나의 힘'이다. 이 시에서 제목을 딴 박찬옥 감독의 데뷔작 '질투는 나의 힘'(2002년)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똑같은 남자에게 과거의 애인과 현재 마음속에 두고 있는 여인을 빼앗기는 남자의 이야기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연애담 속에 맺어지고 헤어지는 사람들의 미묘한 관계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비단 연인관계뿐 아니라 연애의 당사자들을 둘러싼 주변사람들과 관계도 놓치지 않고 사실적으로 그렸다. 언뜻 보면 사건 자체가 황당하고 주변인들과 벌어지는 뜬금없는 이야기들은 박 감독을 '여자 홍상수'처럼 보이게도 한다. 그만큼 박 감독..

오로라 공주

영화배우 방은진이 감독으로 데뷔한 작품 '오로라 공주'(2005년)는 기대하지 않았으나 재미있게 본 수작 영화다. 기대를 하지 않은 이유는 엄정화가 주연했기 때문. '싱글즈' '결혼은 미친 짓이다' 등 두 편을 제외하고 출연한 작품들에서 보여준 연기가 판에 박은 듯 똑같고 그저 그랬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실 두 편을 제외하고 그의 역할이 비중 있게 드러난 작품도 별로 없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런 선입견을 깰 만큼 엄정화의 변신이 훌륭했다. 아울러 작품 자체도 아동 성추행에 대한 경각심과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운 범인에 대한 엄마의 증오와 복수심을 아주 극적으로 잘 전달했다. 그만큼 대본의 구성이 탄탄했고 긴장을 늦추지 않은 감독의 연출 솜씨도 대단했다. 데뷔 감독이라고는 하지만 영화판에 오래 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