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박원상 9

7번방의 선물

여러가지 말이 되지 않는 소소한 것들은 영화라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기본적인 설정 자체가 황당한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 이환경 감독의 영화 '7번방의 선물'이 그런 영화다. 억울하게 사형수 누명을 뒤집어 쓴 아빠를 위해 홀로 남겨진 아이를 감방에 데려와 함께 살면서 눈물 콧물을 빼는 드라마다. 아이를 물건 차입하듯 감옥에 데려와 함께 산다는 설정 자체가 황당하다. 영화니 그럴 수 있다고 치면, 이야기 자체가 판타지가 돼버린다.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을 상상으로 받아들이면 '반지의 제왕'이나 '엑스맨'과 다를 게 없다. 그만큼 영화는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기에 TV 막장드라마처럼 이야기 구조 자체가 취약하고 작위적이다. 살인범 누명을 쓰는 상황은 그렇다 쳐도 주인공의 상태를..

영화 2013.03.02

범죄의 재구성 (블루레이)

악인들의 세계를 즐겨 다루는 최동훈 감독의 '범죄의 재구성'(2004년)은 범죄 3부작의 시작이다. 사기꾼이 나오는 이 작품으로 출발해 도박꾼이 나오는 '타짜', 도둑이 나오는 '도둑들'로 이어진다. 이 작품들을 보면 일종의 패턴이 있다. 여러 명의 스타가 우루루 나와 저마다 가진 개성과 특기로 팀웍을 이뤄 한 탕 사건을 벌이는 것. '이탈리안 잡'이나 '오션스 일레븐' 같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스타일이다. 여기에 마치 김수현 드라마를 보듯 캐릭터들은 어찌 그리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 대사를 쉼없이 내뱉는 지 할리우드 시트콤을 보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그의 영화는 지극히 이국적이다. 그 색다름이 그의 영화가 주는 재미이자 생경함이다. 즉, 재미있으면서도 현실적이지 않은 낯설음이 있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

남영동 1985

타인의 고통을 무덤덤하게 바라본다는게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 1985'은 참 불편한 영화다.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1985년 민청련 사건으로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실제로 겪었던 고문을 토대로 만든 이 영화는 한마디로 고문의 일대기다. 시종일관 약 2시간 동안 처절하게 울리는 비명 속에 한 남자가 고문 당하는 모습을 바라봐야 한다. 영화는 밑도 끝도없이 시작하자마자 고문실로 잡아들인 남자를 족치며 시작한다. 무슨 영화가 줄거리도 없이 무조건 고문으로 때울 수 있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네 과거가 실제로 그랬다. 밑도 끝도 없이 멀쩡히 길가던 사람을 잡아다가 무지막지한 고문으로 빨갱이를 만든 역사가 있다. 그러니 영화..

영화 2012.11.24

내 깡패같은 애인

박중훈은 껄렁껄렁한 역할이 잘 어울리는 배우다. 개성있는 생김도 그렇고 특유의 발성과 몸짓이 연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투가이즈' '투캅스' '게임의 법칙' 등 잡초처럼 살아가는 인생을 연기하는데 제격이다. 본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정극보다 오히려 그런 역할들이 박중훈이라는 배우를 더 빛나게 한다. 그런 점에서 김광식 감독의 '내 깡패같은 애인'은 박중훈을 위한 영화다. 한 물간 삼류 건달과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백수 여인이 연립주택 지하에 이웃으로 세들어 살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이 작품에서 박중훈은 똑떨어지는 날건달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그 덕분에 대학원까지 나온 취업준비중인 젊은 처녀와 깡패 사이에 이루어질 것 같지 않은 꿈같은 사..

영화 2010.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