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애니메이션 174

월레스와 그로밋2-거대 토끼의 저주

월레스와 그로밋이 약 10년 만에 돌아왔다. 이번에는 야채밭을 망가뜨리는 토끼잡는 특공대로 변신했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닉 파크와 스티븐 박스가 감독한 '월레스와 그로밋2-거대 토끼의 저주'(Wallace & Gromit : The Curse of Were-rabbit, 2005년)는 점토같은 물질로 빚어서 만든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클레이 애니메이션이다. 여러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전편과 달리 이번 작품은 갑자기 나타난 괴물같은 거대 토끼를 잡는 장편이다. 요즘 애니메이션의 추세가 그렇듯이, 이 작품 역시 여러 영화의 패러디 흔적이 보인다. 일부러 공포물 분위기를 내고싶었다는 감독들은 킹콩, 헐크, 늑대인간에 심지어 매트릭스 장면까지 패러디했다. 개인적으로는 전작이 더 참신하고 아기자기한 맛이 있었다는 느..

고르고 13

데자키 오사무(出崎統) 감독의 애니메이션 '고르고 13'(Golgo 13-The Movie, 1983년)은 저패니메이션 역사의 한 획을 긋는 기념비적 작품이다. 30년 이상 이어지고 있는 사이토 타카의 원작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점과 세계 최초로 컴퓨터 그래픽을 도입한 점도 그렇지만 영화 기법을 적용한 참신한 영상, 남성팬들을 자극하는 하드보일드한 내용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대단하다. 애니메이션은 불사신에 가까운 능력을 지닌 프로페셔널 킬러 고르고 13이 지금까지 만난 적 없는 강인한 적과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는 내용이다. 데자키 오사무 감독은 강도 높은 폭력과 선정적 장면, 그의 과거작 '내일의 죠' '베르사이유의 장미' 등에서 보여준 프리즈 프레임 등의 영상 기..

판타스마고리아

'고래의 도약' '은하의 물고기' 등을 만든 일본 애니메이터 타무라 시게루(田村茂)의 작품을 보면 유리 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투명하고 맑은 색감과 은은한 음악들, 동화 같은 이야기는 어린 시절 들여다보던 스노볼 장난감을 연상케 한다.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 1995년)는 독특한 작품 세계를 갖고 있는 타무라 시게루의 작품집이다. 판타스마고리아라는 혹성에 얽힌 15개의 이야기를 짧은 단편으로 구성했다. 제목처럼 짧은 이야기 속에 꿈처럼 펼쳐지는 환상적인 내용과 그림, 음악들은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는 느낌이 든다. 이 작품은 원래 비디오나 극장 개봉용이 아닌 컴퓨터용 CD롬으로 제작된 작품이어서 DVD의 화질은 그다지 좋지 않다. TV로 본다면 상관없지만 프로젝터로 화면을 키우..

하울의 움직이는 성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Howl's Moving Castle, 2004년)은 서구 지향적인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같은 지브리 스튜디오 소속인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일본의 전통적 요소를 즐겨 사용하는 반면 하야오는 서양, 특히 근대 유럽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를 고집한다. 젊은 마법사 하울과 저주에 걸려 하루아침에 90세 노파가 된 소녀가 저주를 풀기 위해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내용의 판타지 요소를 선택한 점부터가 지극히 서구 편향적이다. 여기에 언제나 인간과 자연에 대한 맹목적 사랑의 메시지를 얹는 것이 어느덧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돼버렸다. 그러면서도 하늘을 나는 돼지, 소녀 마법사, 숲 속 도깨비 등 ..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平成狸合戰ぽんぽこ, 1994년)은 인간의 자연 파괴를 너구리의 입장에서 다룬 문명비판적 작품이다. 1960년대 일본의 갑작스러운 개발정책으로 숲이 파괴되면서 삶의 터전을 잃게 된 너구리들이 집단회의 끝에 변신술을 사용해 인간들에게 맞서는 내용이다. 비록 희화화된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메시지만큼은 어느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못지않게 무겁고 진지하다. 덕분에 1994년 앙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장편 영화상을 받았지만 같은 지브리 스튜디오 소속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에 비해 내용이 대중적인 편은 아니다. 그렇다 보니 좀 늘어지는 감이 든다. 어찌 보면 그런 점이 미야자키 하야오와 대비되는 다카하타 이사오(高畑勲) 감독의 뚜렷한 특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