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오달수 30

도둑들 (블루레이)

'범죄의 재구성' '타짜' 등 최동훈 감독의 영화들은 특징이 있다. 숨 쉴 틈 없이 속도감있게 몰아치는 이야기 전개와 여기에 장단을 맞추는 대사, 그리고 여러 명의 배우들이 떼를 지어 출연하는 스타 캐스팅이다. '도둑들'(2012년)도 예외가 아니다. 홍콩 마카오 부산을 오가며 10명의 도둑들이 300억원대 다이아몬드를 훔치는 내용이다. 전지현 김혜수 이정재 김윤석 등 최고의 스타들이 씹던 껌, 펩시, 예니콜 등 재기발랄한 별명과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 퍼즐같은 대사를 속사포처럼 주고받는 모습을 보면 마치 김수현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불과 서너 작품 만에 이런 스타일을 만들었으니 최 감독은 좋게 보면 자기 주관이 분명한 것이고, 나쁘게 보면 벌써 자신의 틀에 얽매이는 것은 아닌 지 우려된다. 소위 방송..

공모자들

김홍선 감독의 영화 '공모자들'은 올 여름 본 다수의 개봉작들 가운데 가장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뛰어난 이야기의 완결성과 긴장감은 '다크나이트 라이즈' '스파이더맨' '도둑들' '이웃사람' 등 여타의 작품들을 압도한다. 중국을 오가는 여객선에서 멀쩡한 사람을 잡아다가 장기를 꺼내는 장기밀매조직의 충격적 이야기는 마치 목을 조이는 손가락에 점점 힘이 들어가 숨을 못쉬게 하는 것처럼, 극적인 긴장감과 공포가 점점 강도를 더해가며 온 몸을 짓누른다. 실제로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토대로 한 현실적인 공포는 일반 공포물의 실재하지 않는 공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고 무섭다. 특히 영화는 섣부른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일말의 기대를 끼워넣어 작위적으로 만드는 스토리를 철저히 배제한 채 냉혹할 정도로..

영화 2012.09.01

도둑들

방송가 은어 중에 '쪼(조)가 생긴다'라는 말이 있다. 오래 방송을 하다 보면 그 사람만의 어투나 동작 등 특징이 굳어지는 것을 말하는데, 좋게 표현해 스타일화 하는 것이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를 보면 그만의 '쪼'가 있다. '범죄의 재구성' '타짜'에 이어 이번 '도둑들'(2012년)까지 그가 연출한 일련의 작품들을 보면 그만의 특징이 보인다. 마치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영화처럼 여러 명의 스타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정신없이 돌아친다. 대사도 김수현 드라마처럼 관객이 미처 생각할 틈 없이 아귀가 딱딱 맞는 얘기를 속사포처럼 쏘아댄다. 특히 주인공들의 팀웍은 강한 자를 몰아치는데 집중되며 긴장감을 놓치지 않도록 적당한 반전도 연출한다. 히치콕이나 알트만 스타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앞선 작품들이 흥행하면서 최 ..

영화 2012.07.28

푸른 소금

이현승 감독의 '푸른 소금'은 간이 덜 밴 소금구이같은 영화다. '첩혈쌍웅' 같은 1980년대 홍콩 느와르 정서와 세련된 뮤직비디오를 닮은 영상이 어우러졌는데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느와르 액션이라고 부르기에는 미흡하고, 오히려 로맨스물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저격용 소총을 휘두르는 여자 암살자와 알고도 모른체 하는 조폭 두목의 연정이라는 설정 자체부터 부자연스럽다. 그 속에 한 없이 강한 척 하는 여전사와 마냥 쿨한 아저씨의 이미지는 오히려 물 위에 뜬 기름처럼 영화의 성격을 애매하게 만들었다. 이야기 또한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어차피 영화라는게 허구이긴 하지만 손쉽게 오가는 총기 거래나 서부극처럼 총질이 난무하는 장면들은 국내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지나쳤다. 또 실종된 여주인공의 친구를..

영화 2011.09.10

해결사

무조건 달리고, 주먹질을 많이 한다고 해서 '다이하드' 같은 영화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액션에도 결이 있고 미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저 산만하고 정신 사나운 영화가 될 뿐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 권혁재 감독의 '해결사'다. 설경구에 이정진, 오달수, 송새벽까지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줄줄이 나온다. 거기에 대본 초고는 액션물을 곧잘 만드는 류승완 감독이 썼다. 이쯤되면 제법 반찬을 잘 차린 밥상이다. 하지만 그 맛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정치가의 음모에 휘말린 전직 경찰관과 부패한 경찰들이 벌이는 쭟고 쫓기는 추격전은 빠르게 펼쳐지지만 보는 이를 압도하는 긴장감이 없다. 스프링쿨러가 쏟아지는 복도와 좁은 욕실 및 계단 등에서 펼치는 투박한 액션은 나름대로 감독이 멋을 부리긴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