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오달수 30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블루레이)

2004년 홍상수 감독의 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언론 시사회 때 참석했던 기억이 난다. 그의 영화가 언제나 그렇듯 느닷없이 끝나는 결말에, 뒷줄에서 황당하다는 듯 웃음이 터졌다. 황당함은 기자간담회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도 계속 됐다. 여자가 남자의 미래인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홍 감독 왈, "제목은 내용과 상관없다. 어느 날 이 문장을 봤는데 끌려서 붙였다. 제목은 문장일 뿐"이라고 답했다. 그래서 이것은 좀 아니다, 무책임하다는 생각에 혹독하게 기사로 깠다. 한편으로는, 이전에 본 서너 편의 작품과 동어반복처럼 되풀이 되는 그만의 스타일이 좀 게을러 보이는 측면도 있었다. 그때는 그런 점들이 홍 감독 영화의 단점으로 보였는데, 시간이 지나서 여러 편 보다보니 그의 개성으로 부각된다. 등장..

파파로티

삐뚫어진 제자를 선생이 바른 길로 인도하는 이야기는 1955년 리차드 브룩스 감독의 '폭력교실'(http://wolfpack.tistory.com/entry/폭력교실) 이후 숱하게 되풀이된 소재다. 그래서 윤종찬 감독이 동어반복적인 이야기를 피하기 위해 꺼내든 카드는 실화와 클래식이다. 조폭 출신 고교생이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 부르는 덕분에 성악가로 거듭나는 이야기는 예전 TV 프로그램 '스타킹'에 출연해 노래를 불렀던 고교생 김호중 군의 실제 이야기다. 윤 감독은 그를 여러 번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고, 선생의 격려와 전폭적인 지원으로 마음을 돌렸다는 대목에서 모티브를 가져 왔다. 당시 그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김 군의 모습이 기억나는데, 영화에서는 전혀 다르게 생긴 이제훈이 김 군 역할을 맡았다. 이 ..

영화 2013.03.22

공모자들 (블루레이)

1999년 2주간 다녀온 인도 출장과 관련해 소름끼치는 기억이 하나 있다. 당시 주인도 한국대사는 국빈 대접을 받으며 방문한 한국 기자단을 초청해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그때 들려준 충격적인 이야기가 바로 인도의 심각한 인신매매 실태였다. 주로 외국인을 상대로 한 인신매매는 여성들의 경우 매매춘, 남성들의 경우 장기 적출용으로 이뤄진단다. 대사는 실제로 인도 방문 몇 달 전 한국에서 고시 합격한 대학생이 인도에 배낭여행을 갔다가 장기를 적출당한 시체로 발견된 적이 있다는 얘기를 해줬다. 한국에서는 대서특필될 일이지만 인도는 워낙 사고가 많다보니 시체가 발견되도 기사 한 줄 나오지 않는다는 말에 소름이 끼쳤던 기억이 있다. 김홍선 감독의 '공모자들'(2012년)은 바로 무시무시한 장기밀매자들에 대한 영화다..

구타유발자들

원신연 감독의 '구타유발자들'(2006년)은 다분히 연극적인 영화다. 강원도 산골 개울가라는 지극히 제한된 공간에서 통털어 8명 뿐인 배우들이 지지고 볶는다. 열려 있는 공간인데도 불구하고 달아날 수 없는 상황은 밀실에서 느끼는 폐쇄공포증같은 긴장감을 유발한다. 영화의 주제가 낯선 곳에서 느끼는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다보니 긴장감의 강도가 만만찮다. 내용은 여제자를 유혹하려고 낯선 산골로 들어간 대학 교수가 뜻하지 않게 지역 불량배들을 만나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을 그렸다. 여기에 돌발변수처럼 동네 경찰이 끼어들면서 상황은 예기치 못하게 흘러간다. 무엇보다 영화는 습관처럼 때리고 맞는 폭력의 내성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때린 사람은 경찰이 되고 맞던 사람은 또 맞는다"는 한석규의 대사는 때리고 맞는 사..

7번방의 선물

여러가지 말이 되지 않는 소소한 것들은 영화라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기본적인 설정 자체가 황당한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 이환경 감독의 영화 '7번방의 선물'이 그런 영화다. 억울하게 사형수 누명을 뒤집어 쓴 아빠를 위해 홀로 남겨진 아이를 감방에 데려와 함께 살면서 눈물 콧물을 빼는 드라마다. 아이를 물건 차입하듯 감옥에 데려와 함께 산다는 설정 자체가 황당하다. 영화니 그럴 수 있다고 치면, 이야기 자체가 판타지가 돼버린다.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을 상상으로 받아들이면 '반지의 제왕'이나 '엑스맨'과 다를 게 없다. 그만큼 영화는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기에 TV 막장드라마처럼 이야기 구조 자체가 취약하고 작위적이다. 살인범 누명을 쓰는 상황은 그렇다 쳐도 주인공의 상태를..

영화 2013.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