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오달수 30

암살

국민학교를 다니던 1970년대에 유명한 어린이 잡지가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부인이었던 고 육영수가 1967년 창간한 '어깨동무'다. 20년 뒤인 1987년 종간됐는데, 당시 '소년중앙'과 더불어 꽤나 유명했던 어린이 잡지였다. 이 잡지에 연재된 만화 중에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첩보원 36호'다. 1960년대 스포츠 만화로 유명했던 백산(본명 최일부)이 그린 이 만화는 일본 강점기 시절 임시정부의 첩보공작조 활약을 다뤘다. 세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백산이 선 굵은 필체로 그려낸 거친 사나이들의 활약이 어찌나 강렬했던 지 지금도 제목을 잊지 못한다. 이 작품은 원래 이이녕의 대하장편소설이 원작인데 소설보다 만화가 더 기억에 남는다. 2010년에 만화가 재간된 적이 있고 5권의 원작소설도 이후..

영화 2015.07.25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블루레이)

김석윤 감독의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2011년)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코믹 추리영화다. 왕의 밀명을 받고 사라진 열녀에 대한 조사를 맡은 탐정이 악당들과 대결을 벌이는 내용이다. 초반에 그럴듯한 자막을 끼워 넣어 마치 조선시대 탐정이 실존했던 것처럼 묘사하지만, 모두 허구다. 원작은 작가 김탁환의 역사 추리소설 '백탑파' 시리즈 중 두 번째 작품인 '열녀문의 비밀'이다. 하지만 원작에서 뼈대만 빌려 왔을 뿐 내용은 소설과 많이 다르다. 무엇보다 영화는 추리물을 표방하고 있지만,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유머가 가미된 액션활극에 가깝다. 문제는 유머코드가 그다지 웃기지 않다는 점이다. 등에 화살이 꽂힌 채 뛰는 장면이나 총 쏘는 시늉으로 개가 죽은 것처럼 꾸미는 장면 등 일부 코믹 장면은 억지에 ..

국제시장

입소문이란 무서운 게다.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은 별로 볼 생각이 없었는데, 좋든 나쁘든 입소문이 돌아 1,000만 관객을 돌파한 11번째 우리 영화가 됐다니 도대체 어떤 영화인 지 궁금했다. 아버지 세대의 추억을 그린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들 세대 입장에서도 영화의 상당 부분은 공유할 만한 이야기꺼리가 많았다. 저녁 6시면 울려 퍼지는 애국가 소리에 길가던 사람이 얼어붙은 듯 제자리에 못밖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했던 기억이나 온 식구가 눈물 콧물 쏟으며 TV 앞에 못박혀 이산가족 찾기 중계를 봤던 기억들은 지금도 생생하다. 가끔 말썽을 부릴 때면 부모님이나 할머니는 우리를 불러앉혀 놓고 6.25 때 1.4 후퇴 이야기를 들려주고, 피난 시절 배 곯았던 이야기와 죽을 뻔 했던..

영화 2015.01.15

변호인 (블루레이)

양우석 감독의 '변호인'(2013년, http://wolfpack.tistory.com/entry/변호인)은 개봉 당시 노무현을 감추고 애써 '허구'의 영화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렇지만 주인공 송우석 변호사가 작고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델로 했다는 사실은 대번에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의 이름을 가명으로 감추고 허구의 영화라는 점을 강조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 영화는 노 전 대통령의 생애 중 1981년 발생한 부림사건을 소재로 삼았다. 왜 하필 부림사건일까. 당시 전두환 군사정권이 독서 모임을 용공 이적단체로 몰아 조작한 대표적 공안 사건이었던 부림사건은 노무현의 인생을 극적으로 바꿔 놓았다. 노 전 대통령은 1994년 출간한 수필집 '여보 나 좀 도와줘'에서 부림사건을 "내 삶의 가장..

변호인

대통령 노무현. 언론과 그다지 관계가 좋았던 대통령은 아니었다. 취임하자마자 각 부처별 기자실을 없애버렸고, 구독하던 신문들도 부수를 줄여버렸다. 기자실에 모인 일부 기자들이 작당을 해서 여론을 왜곡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언론은 출발부터 그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았고, 집권 기간 내내 불편한 동거가 이어졌다. 정치적으로도 잘한 일도 많았지만 못한 일도 많았다. 2009년 5월29일. 한창 공사중인 광화문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커다란 창 앞에 섰다. (http://wolfpack.tistory.com/entry/노무현의-마지막-모습들) 잠시 후, 네 귀를 펼쳐 든 태극기를 앞세운 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과 운구가 천천히 앞을 지나갔다. 여러가지 복잡한 심경에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렸..

영화 201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