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조엘 코엔 9

아리조나 유괴사건 (블루레이)

1984년 '블러드 심플'로 데뷔한 코엔 형제의 영화는 언제나 특이한 소재로 허를 찌르는 것이 특징이다. 그들의 두 번째 작품 '아리조나 유괴사건'(Raising Arizona, 1987년)도 마찬가지. 아기를 낳지 못하는 부부가 아이가 많은 집에서 아기를 유괴해 키우는 이야기다. 부부의 조합도 특이하다. 어수룩한 전과자가 남편(니콜라스 케이지)이고, 전직 경찰이 부인(홀리 헌터)이다. 여기에 탈옥한 남편의 친구가 찾아오고 수류탄으로 무장한 현상금 사냥꾼이 아기를 잃은 부모를 대신해 추적에 나서면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언뜻보면 무시무시하고 심각할 것 같지만 내용은 요절복통 코미디로 흐른다. 아기를 유괴하는 과정이나 아기를 위해 강도짓을 할 때, 탈옥한 죄수 및 현상금 사냥꾼과 싸울 때도 뜻하지 않은..

바톤 핑크 (블루레이)

코엔 형제의 '바톤 핑크'(Barton Fink, 1991년)는 공간과 소리가 주는 긴장감이 일품인 영화다. 조엘 코엔이 감독하고 에단 코엔이 제작한 이 작품은 뉴욕에서 잘 나가는 극작가 바톤 핑크(존 터투로)가 할리우드에 초빙돼 영화 대본을 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작품성을 중시하는 핑크가 흥행을 앞세운 할리우드의 입맞에 맞춘다는 것은 처음부터 쉽지 않은 얘기다. 결국 날이면 날마다 파지만 만드는 핑크는 창작의 괴로움에 모기 소리에도 반응할 만큼 신경이 곤두선다. 특히 공간이 주는 긴장감은 압권이다. 핑크가 머무는 LA 호텔은 성채를 연상시키는 긴 복도와 수상한 옆방 손님, 알 수 없는 작은 소음들과 방에 걸린 해변의 여인 그림, 천천히 미끄러지듯 일어나는 벽지 등이 어우러져 주인공은 물론이고 관객의..

밀러스 크로싱 (블루레이)

바람에 낙엽이 날리는 스산한 가을이면 딱 어울리는 영화가 있다. 바로 '밀러스 크로싱'이다. 언제나 악동같은 코엔형제가 마초들을 위해 만든 영화가 '밀러스 크로싱'(Miller's Crossing, 1990년)이다. 의리와 조직을 강조하며, 세상만사 주먹으로 해결하는 남자들이 모여 돈과 여인을 위해 피를 튀기는 얘기다. 하지만 무턱대고 총질을 해대는 홍콩 느와르와 달리 주인공은 박쥐처럼 아일랜드 갱과 이탈리아 마피아 사이를 오가며 교묘한 간계로 두 조직을 속이는 두뇌 플레이를 펼친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요짐보'나 '라스트맨 스탠딩'과 닮았다. 나름 자신이 믿는 정의를 위해 피도 눈물도 없이 냉정해지는 사내의 모습에서 남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뚝심이 배어 나온다. 그러면서도 스산하게 울리는 선율 사..

파고 (블루레이)

코엔 형제의 '파고'(Fargo, 1996년)는 여름에 보면 더 좋은 걸작이다. 끝없이 펼쳐진 설원이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면서, 얽히고 설키는 범죄 사기극이 손에 땀을 쥐게 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시작부터 대뜸 '실화'라는 자막으로 겁을 준다. 하지만 이 또한 사기극이다. 사실은 모두 코엔 형제가 지어낸 이야기이기 때문. 코엔 형제는 "어차피 영화 자체가 허구아니냐"는 대답으로 뻔뻔한 사기극을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과연 코엔 형제답다. 이 작품은 돈을 탐낸 소심한 사내의 어처구니없는 사기극이 피비린내나는 비극으로 막을 내리는 내용이다. 절묘하게 아귀가 맞아 떨어지며 감탄을 자아내는 이야기는 코엔 형제의 탄탄한 시나리오 덕분이다. 여기에 개성파 배우들의 맛깔스런 연기를 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언제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