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주드 로 18

올 더 킹즈맨

스티븐 자일리언 감독의 '올 더 킹즈맨'(All The Kings'men)은 권력에 눈 먼 정치가들의 탐욕과 권모술수를 훌륭하게 그려낸 정치 드라마다. 루이지애나 주지사 스탁(숀 펜)은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편다. 가진 자들은 이를 못마땅히 여겨 그를 탄핵한다. 위기에 몰린 그는 탄핵파의 거두인 판사 어윈(안소니 홉킨스)의 약점을 캐내 죽음으로 내몬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풍경이다. 우리 현대사의 굴곡이 조각 퍼즐처럼 이 영화 속 곳곳에 스며있다. 권력에 눈 먼 자들이 그려 내는 정치판은 미국이나 우리나 다를 바 없다. 정치란게 그런 것이다. 이 작품의 매력은 추악한 정치판을 놀랍도록 함축적으로 그려낸 원작의 힘이다. 로버트 펜 워렌이 1946년에 발표해 퓰리처상을 받은 원작은 실화를 토대로 했기에 너무..

로드 투 퍼디션 (블루레이)

오래 전 영화 '친구'를 찍은 황기석 촬영감독의 사무실에 놀러 간 적이 있다. 다른 영화 준비중인 그의 책상에 외국 영화 잡지가 한 권 놓여 있었다. 펼쳐진 책 페이지에 노인이 뷰파인더를 들고 바지를 걷은 채 물에 서 있는 사진이 있었다. 누굴까. 황 감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콘래드 홀 촬영 감독이라고 알려줬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사진이 바로 유작이 된 '로드 투 퍼디션'(Road To Perdition, 2002년) 촬영 중에 찍은 것이었다. 로드 투 퍼디션. 맥스 앨런 콜린스와 리차드 레이너의 그래픽 노블을 샘 멘더스 감독이 영화로 만든 이 작품은 침이 마르도록 칭찬해도 모자를 정도로 아주 서정적인 아메리칸 느와르다. 갱이 판치던 1920년대 미국. 오래도록 갱단에 몸담았던 사내가 아들을 지키기..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왕가위 감독이 할리우드 스타들을 기용해 만든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My Blueberry Nights, 2007년)는 서양판 '화양연화'같은 영화다. 아닌게 아니라 왕 감독은 자신의 단편인 '화양연화 2001'에서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만들었다. 그러나 사랑의 달콤함과 쓰디 쓴 이중성을 다룬 화양연화와 달리 이 작품은 늘 한결같은 블루베리 파이처럼 사랑에 대한 믿음을 지켰다. 실연의 아픔을 간직한 여주인공 엘리자베스(노라 존스)는 카페 주인 제레미(주드 로)가 만들어 준 블루베리 파이를 먹으며 아픔을 달랜다. 그러던 어느날 엘리자베스는 쓰디쓴 사랑을 잊기 위해 훌쩍 떠나고, 그의 빈 자리를 보면서 제레미는 사랑을 느낀다. 왕가위는 엇갈린 인물들의 사랑을 독특한 영상과 애잔한 음악으로 잘 표현했다. ..

클로저

"사랑은 순간의 선택이야. 거부할 수도 있어." 영화 '클로저'(Closer, 2004년)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대사다. 우연히 만난 네 남녀의 얽히고 설킨 사랑과 이별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인간 관계의 오묘함을 절묘하게 나타낸 뛰어난 작품이다. 네 남녀의 독특한 관계, 감칠맛 나는 대사들은 어설픈 로맨틱 코미디와 차원이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마치 집중력 높은 연극처럼 보는 이를 빨아들이는 이 작품은 아닌게 아니라 영국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패트릭 마버 원작의 연극을 필름으로 옮긴 작품이다. 메가폰은 '졸업'으로 유명한 마이크 니콜스 감독이 잡았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노익장답게 제대로 만든 정극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아울러 스산한 느낌을 자아내는 데미언 라이스의 'The Blo..

콜드 마운틴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찰스 프레지어의 원작 소설을 '리플리'의 앤서니 밍겔라(Anthony Minghella) 감독이 영화로 만든 '콜드 마운틴'(Cold Mountain, 2003년)은 강한 여성들의 이야기다. 남자들이 모두 군대로 끌려간 뒤 홀로 남은 여인들은 전쟁터에 끌려간 남자들 못지않게 혹독한 삶과 전쟁을 치른다. 전쟁터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을 겪는 남자들은 오랜 역사 속 역할이 원래 그랬으니 그렇다 쳐도 하루하루 힘든 삶을 견디며 남자들을 기다리는 여인들의 모습은 참으로 강인하고 위대해 보인다. 원작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밍겔라의 영화는 정치적 이유로 벌어진 전쟁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하드라마처럼 펼쳐놓았다. 화면도 웅장하고 이야기를 차분히 풀어가는 힘도 있지만 다소 늘어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