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칸영화제 20

천주정 (블루레이)

지아장커 감독에게 현대 중국은 뜨거운 용광로였다. 그의 작품 '천주정'(天注定, 2013년)을 보면 온통 분노로 이글거린다. 네 편의 이야기를 묶은 옴니버스 영화인 이 작품은 다양한 인간 군상이 각자의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을 다루고 있다. 유일하게 네 번째 이야기만 등장인물이 분노하지 않는데 그의 막판 선택을 보면 오히려 관객에게 서글픔과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그런 점에서 실화를 바탕으로 한 네 편의 이야기는 모두 분노라는 한 바구니 안에 들어 있는 계란 같은 에피소드들이다. 지아장커 감독은 중국의 SNS인 웨이보에 올라온 여러 사건들을 보고 충격을 받아 이 영화를 구상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중국 사회 곳곳에서 일어난 엽기적인 사건들이 강성대국으로 달려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필연적 현상이라고 봤다. 즉 ..

예언자 (블루레이)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예언자'(Un Prophete, A Prophet, 2009년)는 감옥 영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2009년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런던영화제 작품상, 유럽영화상 우수작품상, 전미비평가협회 외국어작품상, 제 35회 세자르 영화제 작품상, 런던비평가협회상 등 숱한 수상이 이를 입증한다. 이 작품이 잘 만든 감옥 영화로 꼽히는 이유는 한 청년이 6년간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어떻게 변하는 지를 밀도있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글 조차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어리숙한 19세 청년인 말리크(타하르 라힘)는 감옥에 갇혀 있는 험한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법을 배운다. 마피아 두목에게 걸려 살인을 사주받고 사람을 죽인 뒤 점점 더 어두운 권력에 물들어 간다. 급기야 커피나 타주는 것이 전부..

피아니스트 SE

지난 3월31일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가 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을 비판하는 희곡이 미국에서 낭독돼 외신에 보도되는 등 화제가 됐다. 주인공은 오스트리아 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Elfriede Jelinek)다. 그가 쓴 희곡 '왕도에서: 시민의 왕'은 지난 3월27일 미국 뉴욕의 마틴 E 시걸 극장에서 열린 대본 낭독회를 통해 대중에게 소개됐다. 내용은 앞을 보지 못하는 돼지 인형 미스 피기가 트럼프의 이상한 행동을 애써 이해하려 드는 이야기다. 작가 옐리네크는 트럼프를 "트위터에 갇혀 과거와 미래를 파괴하는 인물"로 비판했다. 그의 희곡을 영어로 번역해 미국에 소개한 기타 호네거는 "트럼프의 당선은 나치의 등장에 비유할 만큼 충격적"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호네거는 옐리..

자전거를 탄 소년(블루레이)

굳이 변진섭의 '홀로 된다는 것'의 노래말을 빌리지 않아도 홀로 남겨진 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하물며 어린 소년에게는 말할 것도 없다. 믿었던 보호자가 사라진다는 것은 세상이 통째로 없어지는 것과 다름없는 커다란 상실감이다. 다르덴 형제가 만든 '자전거를 탄 소년'(Le Gamin Au Velo, 2011년)은 상실에 관한 영화다. 영화 속 주인공 소년에게 세상은 곧 아버지다. 하지만 어느날 문득 아버지가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소년은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 다르덴 형제는 아버지와 헤어져 홀로 고아원에서 자라야 했던 소년이 느끼는 상실감과 아픔을 담담하게 다뤘다. 무턱대고 눈물을 강요하지 않고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끊임없이 흔들리는 카메라를 통해 소년에게 다가갔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한다. ..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블루레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년)는 독특한 영화다. 6년 동안 잘 키운 아이가 갑자기 내 자식이 아니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된 부모가 겪는 이야기다. 갈등은 그 이후부터 시작된다. 병원의 잘못으로 아이가 바뀐 것을 알았지만 이제 와서 과연 친자식을 데려올 것인 지, 지금까지 잘 기른 아이와 남남처럼 냉정하게 헤어져야 하는 지 고민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친자식을 모른 체 할 수도 없고, 낳은 정 못지 않게 기른 정도 크다는데 이를 떼는 것도 쉽지 않다. 감독은 부모가 겪는 갈등을 통해 여러가지를 묻는다. 우선 핏줄이 당긴다는 말이 무색하게 친자식인지 아닌 지도 모르고 6년을 보낸 부모를 통해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명제가 과연 맞는 말인 지 되묻고 있다. 아울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