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홍콩 40

첩혈쌍웅(블루레이)

오우삼 감독의 '첩혈쌍웅'(The Killer, 1989년)은 소위 오우삼 스타일의 집대성이자 최종 완성본이다. 이 작품에는 흰 비둘기, 쌍권총, 휘날리는 긴 코트자락, 슬로모션으로 재현되는 느린 액션, 성당 등 그의 상징처럼 쓰이는 각종 아이콘들이 모두 등장한다. 이런 아이콘들이 현란한 총격전과 어우러져 나름대로 스타일리시한 액션물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홍콩 느와르는 정점에 선 이 작품 이후 쇠퇴기로 접어든다. 남자들의 우정과 복수라는 천편일률적인 주제에 기대다보니 차별화할 수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액션 밖에 없는데, '첩혈쌍웅'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액션을 다 드러냈기 때문.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홍콩 느와르의 영광과 쇠락을 함께하는 아이러니컬한 작품이다. 그만큼 이 작품에는 1980년대에 대한..

라르고 윈치

'라르고 윈치'는 대학에서 정치경제를 전공한 장 반 암므의 원작 소설에 필립 프랑크가 그림을 더해 1989년 펴낸 프랑스의 그래픽노블이다. 출간 이래 20년간 16권의 시리즈가 출간돼 유럽에서 꽤 인기를 끌었다. 제로미 살레 감독의 '라르고 윈치'(The Heir Apparent: Largo Winch, 2008년)는 이를 토대로 만든 영화다. 내용은 하루 아침에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의 후계자가 된 청년이 기업을 장악하려는 보이지 않는 세력과 싸우는 이야기다. 제작진의 의도는 주인공인 라르고 윈치를 007 제임스 본드처럼 키워 적당한 액션과 모험, 여자가 곁들인 시리즈를 만드는게 목표다. 하지만 영화는 감히 007 시리즈에 견주기 힘들 만큼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무엇보다 액션에 ..

타락천사 (블루레이)

킬러는 오랫동안 함께 일한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더 이상 사랑을 이어갈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여인과 마지막 약속을 한다. 여인은 망부석처럼 앉아서 기다리지만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애잔한 노래가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당신을 잊었어. 모든 것을 잊어버렸어. 살아갈 의미 조차 잊어 버린 채 나 자신도 잃어 버렸어...' 왕가위 감독의 스타일리시한 영화 '타락천사'(1995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관숙이, 셜리 콴이 부르는 노래 '망기타'(忘記他)이다. '그를 잊었다'는 뜻의 제목이 말해주듯 이 노래는 가슴 시린 이별가이다. 영화 속에선 두 번 등장한다. 한 번은 킬러인 여명이 파트너인 이가흔과 이별할 때, 또 한 번은 여명이 이가흔을 잊기 위해 거리에서 만난 막문위와..

중경삼림 (블루레이)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1994년)은 참으로 독특한 영화다. 두 편의 에피소드로 나뉜 이야기는 연결되지 않는 듯하면서도 스쳐지나가는 인물들과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라는 노점 카페를 통해 교묘하게 연결되는 특이한 구조를 갖고 있다. 서로 남남이지만 사회라는 틀 안에서 보이지 않게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인간 사회의 축소판 같다. 전작인 '아비정전'의 흥행 실패 이후 데뷔작인 '열혈남아' 스타일로 회귀한 이 작품은 '열혈남아'에서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그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홍콩 반환을 목전에 둔 불안한 홍콩 사람들의 심리를 반영하듯 청춘 군상들의 흔들리는 사랑을 '열혈남아'에서 보여준 스텝 프린팅과 핸드헬드, 형광등 조명, 뮤직비디오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딱 떨어지는 음악과 영상의 조합으로 풀어낸..

일대종사 (블루레이)

원래 쿵후(功夫)는 무엇이든 열심히 배워서 숙달하는 것을 말한다. 쿵후의 시조는 16세기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인도에서 온 선승 달마대사가 꼽힌다. 멸청복명의 쿵후 중국 소림사에 당도한 달마대사는 성격이 완고해 승려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근처 동굴에서 9년을 혼자 살았다. 70세 노인이 돼 소림사에 돌아온 달마대사는 승려들이 수양 중에 조는 모습을 보고, 수양만 하다가 체력이 부실해진 승려들을 위해 신체를 건강하게 할 수 있는 동작을 고안했다. 그것이 바로 쿵후의 시작이다. 물론 쿵후는 출발이 그렇듯, 싸움 동작도 포함돼 있지만 무술이라기보다는 생명력의 근원인 기를 기르는데 목적이 있다. 주먹으로 말아쥔 오른손을 쫙 편 왼손 바닥에 붙이는 쿵후식 인사법은 원래 해와 달을 상징한다. 바로 한자의 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