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안경 (블루레이)

울프팩 2012. 1. 11. 23:16
세상사에 지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늘어져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볼 만한 영화가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안경'(2007년)이다.
한적한 섬에 휴가를 온 여인이 언뜻보면 괴짜같은 마을 사람들과 조용히 동화돼 가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가만히 앉아 명상에 잠기듯, 때로는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멀거니 창 밖을 보는 것처럼 편안한 느낌을 준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은 이를 '젖어들기'라는 대사로 표현했다.
주변 환경에 젖어들고, 사람들에 젖어들어 있는 듯 없는 듯 그런 평온함을 말한다.

그만큼 영화는 와르르 쏟아지는 웃음이나 드라마틱한 사건 없이 너무도 무심하게 흐른다.
다행히 코드가 맞다면 이를 여유롭게 즐길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주는 일상성이 오히려 생경하듯 뜨악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만큼 나오코 감독은 전작인 '카모메 식당'보다 더 평이한 일상을 풀어 놓는다.
'카모메 식당'에서 낯익은 코바야시 사토미와 모타이 마사코가 또다시 등장하는 바람에, '카모메 식당'과 연작처럼 보이기도 한다.

종이에 물이 스며든 것인 지, 물이 종이를 적신 것인 지 구분하기 힘든 경계에 선 작품.
이를 통해 긴 호흡으로 세상을 보게 만드는 것이 바로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힘이다.

1080p 풀HD의 1.78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아쉬운 화질이다.
전체적으로 해상도가 떨어져 지글거리고 일본 타이틀 특유의 뿌연 영상이다.

DTS-HD 2.0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오히려 화면에 집중하게 만든다.
부록으로 제작과정과 극중 유머러스한 체조, 1시간여에 이르는 단편영상들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일본 남쪽의 작은 섬인 요론섬에서 촬영. 평화로운 영상만큼이나 엔딩 타이틀에 차분하게 흐르던 노래가 참 좋다.
극중 팥빙수 할머니를 연기한 모타이 마사코가 우스꽝스러운 체조를 하고 있다.
3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출연했던 개 조차도 도를 터득한 듯 평온해 보인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페르소나가 된 코바야시 사토미와 모타이 마사코.
영화는 민박집과 바닷가 팥빙수 집 등 공간조차도 한정적이다. 안경이란 제목처럼 등장인물들이 모두 안경을 쓰고 있다.
팥을 끓이는 비법을 "서두르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모타이 마사코의 대사에 이 영화의 메시지가 녹아 있다.
나오코 감독 특유의 안정적이면서 차분한 앵글이 돋보이는 휴식같은 영화다. 블루레이 타이틀의 색상이 좀 더 명료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