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 감독이 만든 느와르 '거룩한 계보'(2006년)는 참으로 어정쩡한 영화다.
내용은 폭력조직을 위해 목숨바쳐 일해온 주인공 동치성(정재영)이 자신을 버린 조직에 복수하는 이야기다.
장진의 페르소나인 정재영을 비롯해 정준호, 민지환, 이한위, 신구, 윤유선 등 쟁쟁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주먹질이 오가고 피가 피를 부르는 대결 속에 허망하게 쓰러져가는 인간 군상의 비극적인 모습은 영락없는 느와르다.
그렇지만 장진 특유의 개그식 대사와 SF 만화같은 황당한 설정이 날줄과 씨줄처럼 얽혀있다.
장진은 작정하고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쉬운 영화를 만들었다고 얘기한다.
이를 그는 "어눌한 타협"이라고 표현한다.
그렇지만 결과가 성공적인지는 의문이다.
판타지도 아니요, 코미디도 아니고 100% 느와르도 아닌 이 작품은 장진의 팬들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 어느 한 쪽도 만족시키기 힘든 어정쩡한 영화가 돼버렸다.
느와르라는 장르 영화를 선택하고도 장르의 공식이 아닌 자신의 스타일에 지나치게 집착한 탓이 아닐까 싶다.
느와르를 만들면서도 "기질이 그래서 그런지 결코 진지해지고 싶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니 작품이 어정쩡하게 돼버린건 당연한 결과인 듯 싶다.
1.8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영상은 화질이 괜찮은 편이다.
살짝 이중윤곽선이 보이지만 우리 영화치고는 색감, 샤프니스 등이 잘 나왔다.
DTS를 지원하는 음향은 소리의 이동성과 방향감이 좋다.
다만 저음이 지나치게 강해 부밍이 인다.
<파워DVD로 순간포착한 장면들>
이 작품은 깡패, 즉 폭력을 은근히 조롱하고 있다. "깡패는 깡패일 뿐이야"라는 대사 속에서 장진의 폭력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조직 보스로 등장한 민지환의 나이는 71세. 신구와 연기 동기란다.
주인공 동치성의 부모로 나온 신구와 이용이. 엄마를 연기한 이용이는 고인이 된 배우 김일우의 아내다. '웰컴 투 동막골'에서 노모를 연기했다.
익산교도소 장면은 실내, 실외장면 모두 영화 '홀리데이'에서 사용한 세트를 개조해 만든 것.
정재영이 연기한 주인공 이름은 동치성이다. 장진은 이 이름을 무지 좋아하는 모양이다. '아는 여자'에서도 동치성을 정재영이 연기했다.
연극 무대처럼 휑한 느낌이 나는 공간이 인상적.
장진식 개그가 여실히 나타나는 장면.
우연히 땅에서 발사된 총알에 맞은 F-16 전투기가 교도소 근처에 추락하면서 죄수들이 탈옥하게 되는 황당한 설정은 실소를 자아낸다.
오랜만에 영화에서 만나는 윤유선. 맨 오른쪽 탈옥수 두목 역을 맡은 이상훈은 MBC 성우출신이다.
군산 해안 간석지 근처 제방에서 촬영한 장면. 그림이 좋다.
이 영화는 어릴때 친구인 세 남자의 각기 다른 운명을 그렸다. 어찌보면 영화 '친구'같다.
감독이 영화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너를 위해서 죽을 수 있어. 내 친구니까"였단다. 그게 이 영화의 주제다. 그런데 아무래도 접근법이 어설프다. 제대로 된 느와르를 기대한게 잘못이었던 듯.